[42호]카피의 기술2 – 멘토와 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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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 나는 곡의 카피를 통해 그 곡의 진정한 영성을 함께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그 곡을 충분히 소화해 낼 만큼의 100 : 100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곡의 카피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멘토를 두는 것의 중요성을 소개함과 동시에 카피의 또 다른 형태가 될 수 있는 레슨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멘토 카피하기

예배인도자들이 자신의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멘토(Mentor)라는 말은 트로이 전쟁 때, 오디세우스가 아들의 교육을 맡겼던 스승의 이름에서 유래된 말이다. 멘토의 의미는 선생, 정신적 지지자, 후견인, 상담자이며 인생의 경험에 있어서 대상자의 모델이 되는 누군가를 뜻한다. 즉, 예배인도자가 당장 눈앞에서 자신을 지도해줄 만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닮고 싶은 또 다른 예배인도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멘토가 될 수 있다. 예배인도자는 그 사람을 멘토로 삼아 그가 해왔던 사역의 스타일에 묻어있는 영적, 기술적 흐름들을 그대로 모방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의 예배 인도 스타일을 닮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 ‘좋으신 하나님(You are good)’을 작곡한 이스라엘 휴튼(Israel Houghton)의 예배 인도 스타일을 좋아한다. 물론, 아직도 그의 수준에 못 미치는 나 자신의 모습에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지만, 나에게는 도달하고 싶은 목표인 만큼 아직도 올라갈 길이 남아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내가 그렇다고 아직 한국 교회에서는 적응이 더 필요한 그의 흑인 가스펠 특유의 창법이나 뮤지션의 코드 진행을 그대로 가져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닮고자 하는 분야는 부분적으로는 그의 음악적 기술이기도 하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는 그가 인도하는 영적 분위기이다. 예배인도자는 늘 자신이 추구하는 예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멘토를 찾고, 그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멘토를 찾을 때 중요한 점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단계성이다. 생각해보라. 어릴 때 그렇게 닮고 싶었던 사람에 대해 지금도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대부분은 어릴 적 환상에서 벗어나 그보다 더 나은 누군가의 삶을 동경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삶의 경험과 수준이 나아지면서 점점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변화이다. 예배인도자가 멘토를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로, 처음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 사람의 스타일을 모방하면서 나의 스타일 또한 그 사람처럼 변화되어 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나은 누군가를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간 멘토로 삼았던 대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더 발전했거나 그로 인해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예배인도자로서 멘토를 정할 때는 첫째로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단계에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시간을 두고 달려갈 때 꼭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은 목표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닮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좌절되지 않게 만드는 단계에 있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만의 멘토이다.

 

레슨도 카피다

한 실험자가 벼룩을 탁자에 놓고 손으로 쳤는데 벼룩은 자신의 키보다 몇백 배나 높은 곳까지 뛰어올랐다. 그래서 그는 한 무리의 벼룩을 투명 유리 덮개에 넣고 탁자를 계속 쳤다. 처음에 그 벼룩들은 계속 뛰어오르면서 유리벽에 부딪혔지만, 시간이 지나자 벼룩들은 더 이상 뛰지 않고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유리 덮개를 뺀 후에도 그들이 더는 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높이 뛰면 안 된다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았다. 그들은 능력을 갖추고 있고, 뛸 수 있는 환경이 다시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다시 일으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당신을 찬송하기 위함’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명이자 목적이다. 만약,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는 목적을 주신 이가 인간에게 그 찬송을 올려드릴 만한 능력을 주지 않으셨다면, 예배인도자인 우리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속여 온 사기꾼을 높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명이자 목적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하나님을 예배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명료하고도 분명한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그것은 태어날 때만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또 모든 아이들은 음악이 나오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며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골고루 나누어주신 ‘예배의 은사’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들만의 관심사로 인해 음악과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은사를 계발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노래에 자신이 생기지 않고 그저 혼자서 간간이 불러보는 정도의 실력으로 살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노래 실력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치 뛰어오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벼룩처럼 말이다.

음악에 관한 레슨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음악적 능력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특히, 예배팀이 누군가로부터 음악 레슨을 받을 때는 최소한 그 교육하는 사람의 능력만큼 뛰어오를 수 있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레슨을 받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과 태어날 때부터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배인도자는 예배팀이 계속적으로 자신들 안에 있는 음악적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레슨이 필요하다는 데 대한 강조는 예배인도자들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때때로 싱어들을 레슨받게 하는 예배인도자가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계발하려고는 하지 않는 경우를 본다. 만약 예배인도자가 그러한 선택을 할 때 자신이 그 싱어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췄거나 그들의 계발된 모습에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만한 실력이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자존심 문제라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경우 예배인도자는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야 한다.

 

                                 고웅일
고웅일 목사님2
영남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전 풍성한교회 찬양디렉터로 사역했던 그는 한국, 미국, 중남미에서 다년 간 한인교회 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교회적 상황에 따른 예배사역의 노하우들을 터득하였으며, 그 외에도 중국, 일본 및 중남미 지역을 다니면서 각 나라 언어로 선교 집회 찬양을 인도해왔다. 『꿈꾸는 예배 인도자』 의 저자이며, 현재 미국 샌디에고(San Diego)에 거주하며 코워십미니스트리(koworship.com)을 통해 지역교회들의 예배팀 성장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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