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코워십미니스트리(KOWORSHIP) 대표 고웅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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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의미와 목적으로 삼고 지금까지도 충성으로 헌신하시는 코워십미니스트리의 대표 고웅일 목사님을 만나봅니다. 고웅일 목사님은 한국과 미국, 중남미에서 15년 이상 예배인도자로 사역하면서 다양한 교회적 상황에 따른 예배사역의 노하우를 터득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아시아와 중남미지역을 다니며 각 나라의 언어로 선교집회 찬양을 인도하셨습니다. 현재도 지역교회의 예배세미나를 인도하시고 예배팀을 훈련하는 강사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배음악 ‘찬양팀을 위한 한마디 강의 – 찬양팀 인도자’에 기고위원으로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유익했던 목사님과의 인터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해외사역 관계로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배음악. 먼저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하시는 목사님과의 인터뷰 기대가 됩니다. 먼저 저희 예배음악 구독자님들께 간단한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웅일 목사. 안녕하세요! 항상 수십 번씩 실수해야 하나를 겨우 배워서 아는 부족하고 부족한 종 고웅일 목사입니다. 저는 늘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교회에서나 각자의 예배자리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여러분들이 진정 하나님의 대사들이라고 믿습니다.

예배음악. 인사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신앙고백을 듣고 싶습니다. 예배사역 현장에서 헌신해야겠다고 다짐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웅일 목사. 사실 저는 학창시절 많은 방황을 하다가 19살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되었고, 난생처음으로 교회에서 청소년부 특송팀을 맡아 매 주일 한 곡씩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스무 살 초반에 담임목사님의 권유로 예배찬양을 인도하게 되었는데, 당시 저는 혼자서 피아노 반주자 한 명과 함께 찬양인도를 시작했습니다.
첫 시작은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예배인도 중 잦은 실수를 통해 저는 점점 저 자신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매 주일 예배인도가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주일 저녁 찬양예배인도에 대한 긴장감 탓에 아침부터 예배가 끝나는 밤 시간까지 물 한 모금이나 밥 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기를 수년을 했습니다. 매 주일 예배인도 후 만족함보다는 실수했던 부분이나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에 대한 생각에 매여 다음 날은 종일 두통약을 먹으며 앓아누워 있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저도 예배인도에 대해 아무런 비전도 소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저는 매일 밤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을 먹기 전에 항상 한두 시간 정도 혼자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골방의 예배가 그 어느 예배보다 하나님과 제가 이전보다 더 진실한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로 골방에서 2시간이나 3시간 정도 기타를 맨 채로 찬양을 하다 보면 때때로 아무런 감격도 느껴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최고로 일으키는데 그러다가 아주 짧게 몇 초 정도라도 하나님의 강한 임재가 느껴지면, 마치 이전 2시간 이상의 순간들 모두 하나님의 임재였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를 1년 정도 하면서 제 안에 한 가지 강한 소원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예배 찬양을 인도할 때 늘 부족하고 실수 많은 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임재만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영광스러운 예배의 경험이 이제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예배할 때 일어나길 원했던 간절한 소원이 지금껏 제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얻게 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골방의 예배가
그 어느 예배보다 하나님과 제가 이전보다 더 진실한 관계로
들어가게 되는 통로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배음악. 15년 넘게 예배사역을 해오셨습니다. 참 많은 사역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짧게 소개해주실 만한, 기억나는 사역이 있으셨나요?
고웅일 목사. 저에게는 고통이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재밌을 얘기를 하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년 전도사 시절 저는, 넓어지는 이마사이즈 때문에 혹시나 결혼을 못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1년 정도 성도들 몰래 가발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가발 선전을 하던 배우 이 모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새로운 자신감을 얻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으로 변해갔고, 예배찬양을 인도하기 위해 회중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강단 위에 올라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일예배 찬양을 인도하기 위해서 저는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물론 그때도 저는 머리숱이 갑자기 많아진 멋진 전도사로서 단에 서서 30여 분 정도를 열정적으로 찬양했습니다. 문제는 그때였습니다. 찬양이 끝난 후 통성기도를 시킨 후 저는 찬양을 인도하기 위해서 메고 있었던 일렉 기타 스트랩을 목 뒤에서부터 잡아 올리다가 그만 가발을 같이 잡고 당겨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끼던 기타를 땅에 내던지고 바로 가발을 썼지만, 제 눈에는 순간, 여기저기서 눈을 뜨고 기도하다가 저와 눈이 마주치면서 급하게 눈을 감고 더 힘 있게 기도하는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에서 내려와서도 통성기도는 계속되었고, 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저로서는 그 순간이 제가 살아있는 마지막 날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가발을 벗는 것이 제 영혼도 살고, 사역도 살고, 교회도 사는 길이라고 판단하였고, 이윽고 ‘사탄의 왕관’을 벗고 당당하게 아름다운 사모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음악. 많은 한국 예배인도자분들이 한국의 경배와 찬양예배의 역사를 30여 년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사이에 예배의 모습과 형식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경배와 찬양예배 흐름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고웅일 목사. (먼저, 저는 제 답변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며 결코 확실한 정의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경배와 찬양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경배와 찬양, 즉 현대적 모던워십(Modern Worship)과 전통예배의 관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성가대를 통한 예배 찬양의 도입은 과거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굉장히 역동적인 에너지가 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와 문화가 차츰 변하면서 교회는 서구의 모던 워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많은 교회들은 굳이 적지 않은 예산을 매 주일 예배 때 마치 합창단 공연의 한 형태처럼 회중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만 찬양하는 성가대에 투자하기보다는, 오히려 회중들이 함께 소리 높여 참여할 수 있고 또 다양한 모임에서 쉽게 공동체의 예배와 참여를 일으키는 현대적 예배 스타일에 투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교회가 한 가지 불편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교회는 이제 과거의 전통적 방식의 예배를 무조건적으로 배제하기보다는 전통방식을 놓치지 않는 상황에서 열린 예배의 도입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를 가늠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즉, 혹시나 모르는 결과에 대한 제도적 장치로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상태에서 현대적 예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의 예배는 이제 한 예배 형식 속에 과거의 방식과 현대적 방식이 각자의 독특한 색깔을 고수한 체 어색한 동거를 해야만 하는 기이한 형태를 띠게 됩니다.
최근 들어서는 적지 않은 교회가 과거의 예배 방식을 지원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전제하에서 시작하거나, 시작을 하더라도 막대한 재정적 투자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최근 알게 된 몇몇 교회들의 경우 과거 예배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중단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현대적 예배 스타일을 더욱 살리기 위해서이죠.
현대적 예배 스타일에 집중한다? 저는 현대 교회가 과거의 스타일에 고집하는 것보다 문화의 흐름에 따라 새 옷을 입는 것에 전혀 반기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린 예배라고도 하는 현대적 예배 스타일만 고집하다 보면, 교회는 그 또한 하나의 전통이나 형식으로 남아버릴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즉, 하나의 전통적 흐름에 대한 반기로 새로운 형태를 수용하지만 그 또한 새로운 형태의 전통화가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현대적 모던 워십은 과거의 형식을 벗어나 현대적 문화에 맞게 재설정된 열린 예배 형식이지만, 이제 현대교회에서는 이러한 열린 예배조차도 하나의 전통적 형식이 되어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경배와 찬양이 한국교회에 도입된 지 30여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유행성 고착화 현상이 벌써 시작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한국교회 예배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배음악. 한국 교회음악은 양질의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와 반대로 문제점들도 적잖게 보였는데요.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을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웅일 목사. 요즘 제가 가장 많이 연구하고 있는 부분이 한국교회 예배찬양의 미래입니다. 과거 30여 년 한국교회 찬양예배의 흐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굳이 나누어야 한다면 저는 전통적 예배(Traditional Worship)-열린 예배(Contemporary Modern Worship)-혼합형 예배(Fusion Worship)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만약, 교회가 예배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하신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에 대해, 과거의 방식을 100%로, 모던 워십을 100%로 규정한다면, 그 영향력은 200%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은혜가 반감되는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과거와 현대가 연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과거의 전통만 생각하고 현대는 현대적 예배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현대교회는 전통적 예배형식에 익숙한 세대와 모던 워십에 익숙한 세대가 함께 공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의 음악적 독특성을 무리하게 다 살리려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제 한국교회는 과거와 현대적 예배가 혼합된 형태의 예배스타일을 추구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컨트래디셔널 예배(Contraditional Worship)라고 정의해보았습니다. ‘컨트래디셔널’이라는 단어는 현대적 예배스타일의 대명사인 Contemporary의 ‘Con’과 전통예배스타일의 ’Traditional’을 합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는 전통예배 형식은 전통예배대로, 열린 예배형식은 열린 예배대로의 독특한 성격을 고수한 채 나아가는 어색한 연합이 아닌, 예배 찬양 중 일정 부분이라도 함께 어우러져 예배하는 진정한 협력체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예배를 성공적으로 잘 드리고 있는 미국교회 중에 버지니아 주에 소재한 Thomas Road Baptist Church가 있습니다. 이들의 예배는 성가대가 찬양예배를 콰이어로 돕고 찬양예배 후 자신들만의 특별찬양 순서도 도맡아서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진행이 예배의 흐름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은혜 가운데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미국 내 교회들은 과거와 전통이 자연스럽게 혼합된 형태를 살려서 예배드리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한국교회에서 이러한 형태의 예배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교회들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음악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현대교회가 시도하기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음악. 좋은 해결책과 모델을 제시해 주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저서 『꿈꾸는 예배 인도자』에는 예배사역에 대한 목사님의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는 예배인도자들이 책의 내용을 사역 현장에서 어떻게 접목하면 좋을까요?
고웅일 목사. 저는 예배인도에 대한 저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책의 내용을 써내려갔지만 그 내용들이 한국 교회 내 모든 예배인도자의 상황에 똑같이 적용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꼭 예배인도자들 각자의 개성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마다 예배팀에 지원하는 정도나 팀의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책에서 이러한 부분들을 최대한 고려해서 제가 지금껏 여러 예배인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해결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만약에 예배인도자분들 중 누군가가 제 책의 내용 중 한 부분에서 지금껏 당신이 해왔던 방식이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리라 판단하는 부분이 있다면 굳이 제 주장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책이 모든 예배인도자가 꿈꾸고 있는 예배를 일으키기에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내용이 적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모든 예배인도자들이 다 공감할 수 있고 ‘No’라고 말할 수 없는 책을 쓴다면 아마 책의 내용은 그저 성경적 이론으로만 구성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시중에 널려있는 이론 중심적 서적이 아니라, 예배인도에 가장 핵심적인 이론 부분을 다룸과 동시에 실제적인 사역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내용들에 더욱 초점을 두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껏 사역 현장에서 예배인도를 하면서 생겨난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에 지쳐있는 예배인도자들에게 저 나름대로 그 문제들을 극복한 예배인도의 노하우를 소개하면서 이들이 어느 정도 고민의 해결점을 찾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배음악. 지금도 교회 안에서는 예배인도자를 꿈꾸고 준비하는 예비 예배인도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사역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예배인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고웅일 목사. 현대에 들어서 교회 안에 예배인도자를 꿈꾸는 예비 예배인도자들이 생겨나는 일은 참으로 반갑고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예비 예배인도자들에게 예배인도자가 되길 희망하는 일이 결코 빛나는 선택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예배인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신다면 최소한 예배인도 사역을 하기 전이나 하는 동안에 최소한 다음 두 가지 고통이 즐거움이 되어야만 합니다.
첫째는 골방에서 지내는 고통입니다. 그것은 군중의 인기를 피해 나 혼자 은밀한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시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장 큰 능력이 죽은 자나 죽어가는 자들을 살리는 기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기를 피해 ‘골방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는 것입니다. 공생애 전부터 시작된 골방의 예배가 겟세마네 언덕까지 지속되었던 그 영적 능력이 바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나를 맞추는 고통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어릴 때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장성해지면)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인도자가 되는 것은 더욱 장성한 분량의 믿음이 요구되는데, 이를 위해 이들이 반드시 부딪히는 부분이 때때로 교회의 영적 상황에 자신의 예배인도 스타일을 맞춰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요청과의 갈등입니다. 그것은 예배인도자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이 될 수도 있고, 선곡의 스타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확신하는바, 만약 모든 예비 인도자들이 이 두 가지 고통을 감수할 만한 마음의 그릇이 준비되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선택을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저는 모든 예비 예배인도자들에게
예배인도자가 되길 희망하는 일이 결코 빛나는 선택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배음악. 큰 도전으로 다가오는 목사님의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목사님의 사역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웅일 목사. 저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한 예배인도자들처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무언가 계획을 했을 때 함께 도와 그 일을 일사천리로 이루어낼 수 있는 자발적인 동역자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단체를 끼고 사역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매주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콘티에 대해 고민하고 겨우 사역해나가는 한 사람의 예배인도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만한 대단한 사역계획도 없고, 또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의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받았으니, 제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예배사역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계획하는 부분을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는 현재 제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 지역을 중심으로 코워십미니스트리(KOW)를 통해서 한인교회의 예배팀 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기회가 닿는 동안 크고 작은 미국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의 예배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한국교회에 적용할 만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현재 계획 중에 있는 부분이지만) 앞으로 미국교회와 함께 중미 지역에서 선교적 예배를 시도할 예정입니다. 사실 이 일을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제가 과테말라에서 1년 반 정도 선교사역을 할 때,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교회에서나 작은 교회에서나 현지 단기선교를 오면 다들 자신들의 관점에서 볼 때 괜찮고 은혜로운 찬양곡들만 번역해 와서 몇 곡 부르고 돌아가는 경우들을 보면서, 저 또한 과거의 단기선교를 그런 수준으로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적이 있습니다. 중미권 사람들은 대부분 심성이 매우 착하고 단순하므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받을 때 쉽게 마음을 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크게 공감하는 언어와 이들의 음악적 성향과 영적 상황을 제대로 알고 곡을 선정하는 것이 선교적 예배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저는 예배도 선교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그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장 적합한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배음악.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도전과 위로가 되는 귀한 말씀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사역을 저희 예배음악 모든 가족들과 더불어 기도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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