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그 밖의 서신들과 계시록 : 예배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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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말미에 나오는 책들은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서신 모음입니다. 예언서라고 부르는 요한의 계시록조차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바울 서신과 비교해 볼 때 일반적으로 이 문헌은 발전 후기 단계에 있는 교회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저자들은 특히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왜곡된 교훈과 새로운 믿음에 적대적인 외부 당국으로부터의 핍박 등 교회를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이 문헌의 정확한 기간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주변 문화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유대인 공동체는 내부적인 커다란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대격변은 로마제국에 저항하는 봉기로 이어지고 A. D.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곤경에 빠진 배경에서 후기 신약 저자들은 교회가 꾸준한 방향을 유지하며 다가올 시련에 대비하도록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 저자들이 복음의 진리에 집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유다는 그의 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울 것”(유 1:3)을 촉구합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중심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변형(벧후 1:16-18)에서 보았던 그 영광을 회상하고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의 나타내신 바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목격에 호소합니다(요일 1:1-2). 그러한 증거는 자연적으로 예배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교회에 “왕 같은 제사장과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 불러내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찬양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벧전 2:9-10). 요한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응답에 초점을 맞추고 그러한 사랑은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에 대한 헌신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실제적인 맥락에서 권면하고 기도와 찬양과 치유를 격려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단호하게 언약 속에서 우리의 예배의 방법을 설정합니다. 독생자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히 1:3) 만물이 그에게 붙들린 바 됩니다. 옛 언약의 종교적 기관인 성소와 제사장직과 제사는 그의 보다 큰 사역을 가르치는 그림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는 죄의 값을 치르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희생제물로써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입니다. 우리의 반응은 믿는 자들과 정규적으로 함께 모이고, “찬미의 제사”(히 13:15)를 하나님께 늘 드리는 일을 포함하는 경건하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시내 산에 이른 것이 아니고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에 도달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왕국에 두시기 위하여 더 웅대하고 장엄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며 행동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를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성서 전체가 마무리되는 계시록에서 더욱 강렬하게 취해지는 비전인 하나님의 임재 속의 예배의 정점의 단편을 우리에게 미리 제공하여 줍니다.

요한의 계시록은 만왕의 왕의 권위에 대항하며 그의 증인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심판의 극적인 전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최고의 예배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대적들의 반역과 궁극적인 패배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장엄하고 엄숙한 일련의 예배의 행위와 병행하여 진행됩니다. 이런 의식은 히브리 선지자들의 환상과 언어가 인용되어 행해집니다. 그러나 이 의식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함께 찬송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죽임당하신 어린양”(계 5:12)인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보좌에 둘러 선 네 생물에 의하여 시작된 이 예배는 모든 세대에 걸친 언약공동체의 지도직을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들에 의하여 계속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제사장들 전체, 그리고 모든 족속과 방언과 나라들로부터의 수많은 무리들(계 5:9-10), 그리고 하늘의 천군천사와 모든 생물을 포함하며 확장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이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권위를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는 땅의 악한 권세인 용과 짐승에 대한 거짓 예배와 대조를 이룹니다. 이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박해한 음녀로 묘사된 부정한 도시의 멸망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이 본 마지막 비전은 언약의 집행과 통치에 대한 성경적 표현인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에서의 예배의 완성된 정점을 보여줍니다. 그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들의 반역으로 손상된 하나님의 창조는 어린양의 성실한 신부로 묘사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예배하는 공동체 안에서 갱신과 회복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계21:3)라고 외친 한 음성의 선포한 대로 이제 그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이 하나님과의 회복된 예배와 교제 속으로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지금 생명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을 초청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계 22:17).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들에서 묘사된 예배는 초대교회에서 발전되고 있던 관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요약하여 주신 예배의 방법을 추구할 때 우리를 인도하도록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비전일까? 아마도 둘 다일지 모릅니다. 계시록에 기술된 예식은 분명히 역사적인 기독교 예배의 형태와 내용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계시록의 예배는 하나님의 충실한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필요가 아닌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생존하시는 존재와 탁월하신 위엄에 초점을 맞출 것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예배의 방법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면서 계시록은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정으로 예배의 책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김영국
김영국 목사님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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