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호]믿음이 현실이 되는 예배가 되려면?

0
680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불러 현실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가 말하는 연금술사와도 같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히 11:1에서 말하는 ‘믿음의 현실화’는 단지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어떤 목회자의 주장처럼 ‘긍정적인 마음’에서 비롯되는 일도 아니다. 이러한 사상은 대부분 인간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이 움직이신다고 믿는 주술적 신앙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당신의 영광을 이루기 위해 인간에게 믿음과 소원을 주시므로, 인간이 그 이상을 품고 그림을 그려내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현실 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일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하에 계획된 영광의 현실화이며 인간은 그 일을 위해 쓰임 받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예배 인도자가 예배 때 그리는 영광의 청사진은 주술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이상을 품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는 이를 위해 먼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소원으로 품게 된 그 비전을 현실화될 때까지 날마다 청사진을 그려나가야 한다. 나는 예배 인도자가 그리는 믿음의 청사진이 실상으로 열매 맺는 것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1) 이상과 현실, 그 경계에 서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개념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어쩌면 예배팀에게 있어서도 현실이기보다는 좀 더 초월적인 이상에 가깝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굳이 형이상학자가 아니라면 인간은 누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크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인도할 때 필요한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현실 가운데 초월적 이상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그러한 기대가 없는 예배는 마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 달리고 있는 쳇바퀴 안의 다람쥐의 행동과도 같다. 얼마나 기대하는가에 따라 얼마나 변화할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힐송교회의 찬양인도자였던 달린 책은 예배 인도를 할 때 지녀야 할 기대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당신의 믿음의 부족함만을 내세우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 기대만큼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믿음을 가장 중요한 우선으로 가지고 나온다면 예수님이 움직이신다.”

예수님은 “악한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더더욱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라는 진리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초월적인 이상이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예배는 예수님이 직접 그 일을 이루시도록 하는 믿음의 예배이다. 하나님은 솔로몬 왕에게나 여호사밧 왕에게나 예배 속에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들을 행하셨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예배란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재창조적 행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배 인도자는 언제나 초월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예배 인도자 자신을 포함하여 함께 예배드리는 회중들의 삶에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2) 가장 큰 이상 품기

예배 중에 초월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현실로 적용되는 상상을 하는 것은 예배 인도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단 얼마나 큰 이상을 품을 수 있느냐의 기준은 예배 인도자의 믿음의 크기에 달려있을 뿐이다. 사실 예배 인도자와 예배팀은 초월적인 이상이 현실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상상을 할 때 그 이루어지는 이상을 굳이 인간이 해낼 수 있을 만한 범위에 제한시킬 필요가 없다.

예배 인도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에게나 교회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크고 거룩한 이상을 품는 만큼 현실은 그 이상에 가까워질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처럼 예배 인도자는 이상이 현실에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해 그 상상력이 ‘미친 사람’과 같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호주 힐송교회의 달린 책은 “만일 당신의 꿈이 엄청나게 크고 그것이 당신의 삶에 도저히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꿈이라고 보장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날마다 교회가 도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상은 무엇인가? 아마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교회를 이루어나갈 우리에게 가장 바라셨던 일이라면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큰 이상은 예배 중에 태평양 바다가 갈라지거나 태양이 멈추거나, 산이 들려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죽은 시체가 살아나는 종류의 기적들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의 하나가 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배 사역자 탐 크라우터는 교회가 하나 되는 일이 가장 기초이자,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가고 계신다는 개념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가르침이며, 성경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함께 하나로 만들어 가신다는 동일한 개념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 가장 첫 번째 기적인 ‘포도주 사건’을 비롯하여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사건, 축귀 사건, 오병이어 사건 등을 행하실 때 말씀 한마디로 그 일들을 이루셨다. 말씀 한마디로 현실을 거슬러 초월적 역사를 이루신 이분은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가? 이는 유일하신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말씀 한마디로 그 일들을 어렵지 않게 이루어내신 예수님마저도 가장 어렵게 여기신 일이 있다면 바로 교회가 하나 되는 일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장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분은 이전에 말씀으로 엄청난 초월적 사건들을 행하시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도 한마디의 기도로 기적을 이루신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이 ‘하나 되는 일’을 위해서 네 번이나 동일한 내용으로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구하고 계신다. 이는 지금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 이전에 말씀 한마디로 기적을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충분히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왔던 기적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잠시 떠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 있어서 가장 큰 기적은 바다를 가르거나, 귀신을 쫓거나, 오천 명을 단 번에 먹이시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일들이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이 믿음으로 한마음을 품고 나아가는 일이었다. 그 기적은 예수님께 있어서도 단순한 기도 한 마디가 아닌, 간절하고도 반복적인 패턴의 기도를 필요로 할 만큼 중요하고 큰 기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부활 후 하나님 우편까지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그분의 기도 내용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만약, 예수님이 지금도 기도하시는 내용이 “아버지여, 아버지의 교회가 날마다 사업이 번창하여 온 세상을 다 사들이게 하옵소서!”이거나, “아버지여, 교회가 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마다 세상 모든 병원의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영안실에 있는 시체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증명하게 하옵소서!”이거나,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자녀가 세상에서 머리가 되어 모두 지도자로 성공하게 하옵소서!”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모든 천상의 피조물들이 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보좌 앞에 계신 예수님이 하실 만한 기도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네 번 이상 기도하셨지만 결국 그것이 가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셨던 ‘교회의 하나가 되는 일’을 위해 아직도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예배 인도자가 예배를 통해 품을 수 있는 가장 큰 초월적인 이상이 바로 ‘교회가 하나가 되는 일’이다.

그것은 같은 의미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건강한 모습으로 세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배 인도자는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일, 즉 하나가 되는 작업을 위해서 늘 ‘연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배의 곡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교회가 치유를 통해서, 때로는 믿음의 확신을 통해서, 때로는 복음 전파의 결단을 통해서 하나 됨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앤디 파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가르침, 예언, 전도, 목회 등 사람을 세우는 은사 중 많은 것들이 예배 인도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예배 인도자에게 부어진 또 다른 중요한 은사는 예배를 통한 치유의 은사다. 나는 오늘날 예배 인도자들이 음악적 능력과 이러한 핵심적인 성령의 은사들을 엮어서 교회를 세우고 강건하게 하는 것을 본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가치에 기준을 두고 예배를 드린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확신을 얻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개인적인 신앙의 도전과 은사의 확신이 예배 중에 일어난다. 그 모든 개인적인 가치에 대한 열매는 결국 그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로써 흠이 없는 건강한 공동체 즉, 교회의 하나가 되는 일을 위해 더 나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고웅일
고웅일 목사님2
영남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전 풍성한교회 찬양디렉터로 사역했던 그는 한국, 미국, 중남미에서 다년 간 한인교회 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교회적 상황에 따른 예배사역의 노하우들을 터득하였으며, 그 외에도 중국, 일본 및 중남미 지역을 다니면서 각 나라 언어로 선교 집회 찬양을 인도해왔다. 『꿈꾸는 예배 인도자』 의 저자이며, 현재 미국 샌디에고(San Diego)에 거주하며 코워십미니스트리(koworship.com)을 통해 지역교회들의 예배팀 성장을 돕고 있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