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호]벼락의 공포로 영안(靈眼)을 뜬 사람 – 마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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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이제 우기로 접어들고 있다. 우기에는 낙뢰(벼락)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사고도 자주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낙뢰로 인해 매년 10만 명 이상이 피해를 본다고 한다. 2014년 낙뢰 관측 정보에 의하면 상반기에 총 25,897회 번개가 쳤고, 11,266회 낙뢰가 발생했다. 가장 많이 치는 시간대는 16시로 2,608회를 쳤고, 가장 많이 치는 달은 6월로 2,809회, 그리고 도별로는 경기도가 36,913회로 최고 기록을 보였다고 한다.

세계에는 벼락을 여러 번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미국 버지니아의 보안관 로이 설리번은 36년간 벼락을 일곱 번 맞고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또한, 섬머포드라는 영국 육군 소령은 1918년 2월, 플랑드르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낙뢰를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벼락 때문에 하반신 마비로 전역한 그는 1924년에 2명의 친구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때 다시 낙뢰를 맞았고 이번에는 그의 몸, 오른쪽 전체를 마비시켰다. 운명은 장난처럼 이어졌다. 1934년에 세 번째 낙뢰가 그를 내리쳤다. 그의 몸은 영구히 마비되고 말았다. 2년 후 죽은 그의 묘지를 낙뢰는 다시 공격했다. 낙뢰가 그가 묻힌 묘지에 떨어져 비석을 파괴했다고 한다. 우연한 일 치고는 신비스럽기까지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에는 노르웨이에서 벼락으로 순록떼 300마리가 한꺼번에 죽는 일도 있었다(2016.8.31일 일간지). 참으로 낙뢰의 힘은 강력하다. 이처럼 역사상 벼락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거나 다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오래전에 동문 목사님 한 분도 벼락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벼락으로 인해 놀라운 반전을 이룬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우리의 위대한 선배 마틴 루터다.

마틴 루터가 대학 시절 친구와 함께 부모님을 뵙고 대학이 있는 에르푸르트(Erfurt)로 가던 1507년 7월 2일, 지금도 밀밭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슈토테른하임(Stotternheim) 근처 들판에서였다.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과 낭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밀밭을 지나가면서 나눈 대화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에 관한 대화가 아니었을까. 특히 루터는 법학도였으니 잘나가는 변호사의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님의 간절한 염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가 한창 깊어질 때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천둥·번개가 일어났다. 유럽은 구름층이 낮아서 천둥소리가 얼마나 큰지, 로마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익숙할 법도 한데 지금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신학교 시절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로마의 황제들이 천둥이 칠 때면 무서워서 침대 밑으로 들어가곤 했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로마에 살아보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천둥과 벼락이 칠 때는 얼마나 굉음이 큰지 꼭 아파트가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난다. 바로 머리 위에서 벼락이 내리꽂는 것만 같다. 1507년 루터의 곁으로 지축을 흔드는 그런 벼락이 떨어졌고, 그 벼락은 루터와 함께 꿈을 노래하던 친구를 삽시간에 태워버렸다. 방금까지 함께 희망을 노래하던 친구를 말이다.
루터는 너무 큰 공포심으로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정신없이 성 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엉겁결에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서원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원을 지켰다. 그는 문학 석사를 마친 후 법대에 들어가 법률가가 되기를 소원하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에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개혁자 루터를 부르시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벼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루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벼락이 친구를 덮칠 때 하나님은 루터를 부르셨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두려움에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겠다고 서원했다고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실 때 참으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벼락이 내리쳐 친구가 사망한 자리, 그 자리를 통해 한 사람의 위대한 개혁자 루터를 하나님께서는 부르셨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은 루터가 늘 죽음에서 건져주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셨다. 그래서 개혁의 횃불을 들 때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함께하였으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벌써 죽었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있음을 보너스로 여겼다. 그렇기에 교황청의 서슬 퍼런 공격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결사반대했지만 보름스(Worms)를 향해 목숨을 담보하는 길을 갈 수 있었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에게 파문을 당했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에게 법익(法益)을 박탈당했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벌써 죽었어야 할 인생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낙뢰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루터를 부르셨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부르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람(Balaam)은 나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했다. 사건을 통해 들려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느냐, 못 듣느냐에 따라 인생은 나누어진다!
당신은 어떠한가?

 

한평우 목사님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님은 현재 로마 한인 교회 담임목사로 35년째 시무하시고, EMI 유럽 목회자 연구원 창립및 원장, 유럽 Koste 후원회장, 디모데 선교회 회장및 디모데 로마 선교 아카데미 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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