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호]가장 귀한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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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어떤 계기를 만날 때 새로운 결단을 한다. 그러나 그 결심이 평생 자신을 지배하게 만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체로 결심은 용두사미로 끝난다. 그 이유는 결단을 이행하는 일에는 큰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마에스트로 J 선생의 일화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네 살 되던 해부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너무 어려 스스로 피아노 의자에 올라갈 수 없었기에, 어머니가 번쩍 들어 의자에 올려놓아야 비로소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될 때까지 어머니는 절대로 그를 의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네 살 때니 금방 피아노 치는 일에 싫증이 났고, 그래서 내려가고 싶어졌으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의자에서 내려줄 때까지는 말이다. 울거나 심지어는 떼를 써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는, 스스로 피아노와 친구가 되는 길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이웃 친구와 놀면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데, 피아노와 깊은 교제를 나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내가 교회 피아노의 건반을 세어 보았더니 흰 건반이 52개, 검은 건반이 36개였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건반을 두드려야 했고, 그것을 두드릴 때마다 반응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다양한 소리를 주의 깊게 듣다 보면 마음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그 소리들을 귀담아 듣게 되었고, 그 소리와 깊은 사귐을 가졌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일이었고, 그는 곧 그 소리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아도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깨달은 행복과 기쁨이자 결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그는 예순이 넘어서까지, 네 살 때 깨달았던 음악의 세계에 빠져 행복을 누리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음악에 푹 빠져 살아가니, 음악이 그에게 충분한 보답을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성 프란시스는 감옥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감옥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겉은 변한 것이 전혀 없었으나, 그의 마음은 달라졌다. 새로운 세상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른다. 우리의 힘과 열정, 그리고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 프란시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를 오가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12세기 말 이탈리아는 약한 도시국가였으나, 프랑스는 유럽의 최강국이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경험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프랑스라는 의미로 프란시스(=프란체스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단순한 생각으로 지어준 그 이름이, 8백 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름이요 자신의 자녀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붙여주는 이름이 되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자녀의 이름을 뭐라고 지어주고 싶은지’에 관해 설문조사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프란체스코(남아는 프란체스코, 여아는 프란체스카)’라고 응답했다. 그뿐인가? 교황들도 그 이름을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모른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서양에는 그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프란체스코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프랑스를 기억하게 하려 했던 단순한 의미의 이름, 그 이름은 이 시대 온 세상을 아우르는 놀라운 이름이 되었다. 이름의 의미, 새삼 그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성 프란시스는 그때부터 ‘하늘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가슴은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더는 평범한 삶을 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성서의 말씀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가난한 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헐벗은 자를 만나면 자신이 입고 있던 고급스러운 옷을 기꺼이 벗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집에 있는 것들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은 상인인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계기가 되었다. 성 프란시스는 집 안에 있는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들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먼 프랑스를 오가면서 땀 흘려 번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가치관의 충돌은 가정을 불화의 현장으로, 또는 싸움터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시스는 결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하늘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는 집에 있는 비단과 질 좋은 옷감을 말에 싣고 16km 떨어진 폴리노(Foligno)로 갔다. 그리고 그 모든 물건과 말까지 팔았다. 돈을 손에 쥐게 되자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깊이 고민하며 걸어가던 중 아시시에 가까워져 올 때, 길옆에 허물어져 가는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그 교회는 성 다미아노(S. Damiano)를 기념하여 세워졌지만,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교회에 들어가니 한 가난한 사제가 있었다. 그는 사제의 손에 입을 맞춘 후, 지니고 있던 돈 전부를 주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제는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얼마 전까지 프란시스가 자유분방한 삶을 살던 청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끈질긴 설득을 했지만, 사제는 프란시스의 부모를 두려워하여 돈만은 절대로 받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상황에 프란시스는 돈을 경멸하는 마음으로 창턱에 돈을 던져 버렸다. 그는 돈보다 더 좋은 지혜를 소유하고 싶어 했고, 은보다 더 보배로운 하늘의 것을 얻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돈은 하나님보다도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돈은 우리 곁에서 실질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는 사람들이 비굴해지고 머리를 조아리게 되고, 부모나 친척, 심지어는 부부까지도 상관하지 않으려 하는 세상이다. 상해하고 죽이는 일까지 머뭇거리지 않는 예도 있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돈의 막강한 힘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철저하게 돈과는 거리를 두려고 결심했다. 그런 삶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한평우 목사님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님은 현재 로마 한인 교회 담임목사로 35년째 시무하시고, EMI 유럽 목회자 연구원 창립및 원장, 유럽 Koste 후원회장, 디모데 선교회 회장및 디모데 로마 선교 아카데미 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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