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호]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59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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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30년쯤 전으로 기억합니다. 시인인 저의 친구와 함께 광나루를 건너 천호동 농가에 자리 잡은 작가 임옥인(林玉仁, 1915~1995) 교수님의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천호동이 번화가가 되어 있지만, 당시는 천연 약수가 솟고 논과 밭이 펼쳐진 한가한 농촌이었지요. 그곳은 임 교수님이 작품을 쓰기 위한 공간으로, 초가집으로 된 작업실에 넓은 마당과 밭이 매우 인상적인 전원 농가 주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찾았을 때 교수님은 몸이 편찮으셔서 누워계셨습니다. 얼마 전 유럽 여행 중에 갑자기 손이 오그라들고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임 교수님은 그곳에서 어린아이같이, 마비된 자신의 손을 움켜잡고 하나님께 떼를 쓰며 울면서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임 교수님의 기도에 즉시 응답해주셨다는 것이에요. 임 교수님은 연로하고 불편하신 가운데서도 초면인 젊은 저에게 이 같은 간증을 하시며 그때 지은 시를 읊어 주셨습니다. “나의 기도는 아기기도 / 나의 노래는 아기노래/ 말도 서투르고 어리광부리는 / 나의 기도는 아기기도/ 나의 노래는 아기노래” 감격에 찬 저는 그 즉시 이 소박한 시를 받아 적고,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동요>라는 제목으로 작곡하여 그해 「기독교 교육」지에 발표했습니다.

소설가이며 교육자인 임옥인 교수님은 함경북도 길주(吉州) 태생으로 함흥(咸興)의 영생여자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奈良)여자고등사범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모교 교사로 있으면서 농촌계몽운동도 하셨습니다. 해방 후에는 월남하여 창덕여고 교사, 건국대학교 교수, 학장 등을 역임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지요. 「부인신보」 편집 차장(1948),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1949), 월간 「부인경향」 편집장 등 활동을 하며 많은 작품을 썼는데, 단편소설로 《봉선화》, 《고영》(孤影), 《후처기》(後妻記), 《전처기》(前妻記), 《산》(産), 《젊은 아내들》, 《낙과》(落果), 《그리움》, 《구혼》(求婚) 《눈 먼 여인》, 《성탄수》(聖誕), 《피에로》, 《아화상》(阿畵像) 등과 《그리운 지대》, 《기다리는 사람들》, 《월남 이후》, 《통곡 속으로》, 《일상의 모험》, 《젊은 설계도》 등의 장편 소설이 있습니다.

섬세한 여성적인 감성과 의지라는 단선(單線)을 통해 꾸준히 작품세계의 풍요와 성숙을 실천해 온 이분의 작품들은 거의 여성적인 감상주의로 차 있고, 이는 극히 소박한 휴머니즘을 꾸준히 긍정하는 작업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분의 작품을 대해보면 여성 특유의 연정(戀情)과 부정(婦情)과 모정(母情)의 화합적인 것을 함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울 왕십리교회 권사님인 임옥인 교수님은 평생 대수술을 열한 번이나 받을 정도로 병약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몸이 걸레와도 같다고 했을까요. 그러나 평생 병고와 씨름하면서도 찬송과 기도로 극복하면서 자신은 ‘주님의 은혜로 덤으로 산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분의 간증 중에 늘 입버릇처럼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지요. “예수님은 폐품 이용에도 능하신 분입니다. 이토록 쓸데없는 육신을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매고 계속 사용하시니…”이 같이 깊은 신앙심에서 나온 감사의 찬송이 이 찬송입니다.

1967년 『개편 찬송가』를 발간하면서 대폭 우리나라 시인과 음악가의 작품을 많이 수록하기 위해 개편위원회의 위촉을 받아 만들어진 이 감사시는, 마치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 우리 눈앞에 총천연색의 경치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비록 종이에 쓰인 글씨이지만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엊그제 강원도를 다녀왔는데 오색으로 물든 가을 산을 보며 얼마나 감탄했는지… 여름에 그토록 무성하던 녹색 산들이 어쩌면 샛노랗게, 새빨갛게, 새하얗게, 황금빛으로 알록달록 물들 수가 있을까요? 시인은 이런 장면을 보고 드라마틱하게 산마다 불이 탄다고 읊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마다, 골짜기마다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며 풍년을 노래하고 덩실덩실 흥겨워 춤추는 농부들의 풍년가를 듣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광경입니까? 이럴 땐 우리 민속음악이 제격이죠. 그래서 박재훈(朴在勳, 1922~) 목사님은 국악 장단에 맞추어 ‘도레미솔라’의 5음 음계를 쓰고 있습니다. 박재훈 목사님의 찬송은 우리 찬송가에 아홉 장이나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신앙인의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를. 눈이 닿는 공간이라면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손이 닿는 구석구석, 생각지도 못했던 그 작은 일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음에 새삼 감탄하며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 아니겠어요? 한 해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도움받은 감사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며 그 대목마다 추임새를 넣어 불러보면 어떨까요? “얼~쑤”, “좋~다”라고요.

 

 

김명엽찬송교실3
연세대학교 성악과 및 동대학원 교육대학원,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추계예술대학교 성악과,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한국합창지휘자협회 이사장, 언더우드기념 새문안 음악교육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서울시합창단 단장, 서울바하합창단, 남대문교회 시온찬양대, 한국장로성가단 지휘자,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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