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드러머에게 있어서 스피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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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은 모두들 빠른 스피드의 연주를 들으면 흥분합니다. 그 연주자가 너무 멋지고 자기 자신도 또한 그렇게 빠르게 연주하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처음 연주자가 되고자 하는 하나의 이유였을 수 있습니다. 저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비단 드러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악기 연주자들의 강한 욕망입니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파가니니나 쇼팽, 리스트의 스피드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굳이 마다할 연주자들은 없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현대 대중음악에서 기타리스트나 피아니스트, 드러머, 심지어 베이시스트에게조차도 빠른 연주는 필수적입니다. 멜로디나 화성적인 면을 다루지 않는 드럼에서는 특히 강한 파워와 스피드가 더욱 강조되는 덕목입니다만, 누구나 빠르게 연주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빠른 연주를 위한 연습을 게을리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빠르게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도 말고 게을리 하지도 말라’는 얘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소중히 여기며, 학문에도 정진하고, 자신의 직업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다시 말하면 ‘최상의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러머에게 있어서 스피드는 갖추어야 할 덕목이며 추구해야 할 연습과제이지만 최상의 가치는 아니라는 점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이 왜 중요한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무더위를 만난 지난여름, 브라질의 리우에서는 올림픽 경기가 있었습니다. 올림픽 경기 중 스피드의 꽃은 역시 남자 100m 경기일 것입니다. 이 올림픽 경기에서 100m 기록은 ‘우사인 볼트’라는 자메이카의 선수가 오랜 기간 그 왕좌를 지키고 있습니다. 올림픽 100m 경기에서 우사인 볼트보다 늦은 기록을 가진 선수가 우사인 볼트를 제치고 우승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 경기가 가장 빠른 기록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약물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서 말입니다.) 스포츠 경기는 기록이자 점수이고, 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승리하며 또 그 승리를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왜 나를 이긴 사람을 축하해 줘야 할까요? 그것은 서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 왔고 그 결과가 올바르게 나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보다 상대방의 경기 능력이 우수할 때, 우리는 그 경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자신도 더욱 노력하여 다음번 경기에서는 그 사람을 이기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어서 (내가 사랑하는) 그 경기에서 더욱 노력할 수 있게, 즉 나의 능력을 한 단계 더 높게 만들도록 해주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 벌써 실망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매일같이 실망하는 그 얘기가 진리가 아닙니까?) 만약에 내가, 나를 이긴 사람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지 않으면 다음번에 내가 그 사람을 이겼을 때 그 사람의 축하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축하해주려 해도 내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현대에 올림픽 정신이 사라졌다고, 스포츠 정신이 훼손되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패배를 억울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경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승리로 인한 돈과 명예가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좀 심하면 상대방의 반칙이나 정정당당하지 못한 태도에 약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인생에서는 돈과 명예, 권력, 학문, 예술에 대한 사랑도 최상의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위의 모든 가치를 무가치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가치’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고 연마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그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은 보통 그 전체적인 뜻에는 동의하면서도 현실에서 어디까지가 사랑하고 연마하는 일이며 어디까지가 최상의 가치를 두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와 같은 무대에서 먼저 연주를 하는 드러머가 나보다 빠르게 연주하는 능력을 갖춘 자라면, 우리 대부분은 다음 무대에서 주눅이 들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피드라는 가치를 존중하고 그 능력을 연마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한 그 연주자에게 진정한 축하를 해줄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내가 가진 연주 능력의 또 다른 가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피드가 최상의 가치가 아니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앞 순서 연주자의 연주에 주눅이 들면서도 그 사람을 존경하며, 약해진 마음을 다잡아 자신의 음악을 실행하는 용기가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며,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최상의 가치가 아니라 음악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는 뮤지션의 태도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스포츠 경기와 음악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100m 경기에서는 스피드가 최상의 가치가 되고 그 하나의 가치를 위해 모든 선수가 경쟁하며 단 한 명의 우승자만을 가리지만, 음악은 앞 연주가 최고로 좋다고 생각되어도 다음 연주를 들으며 ‘이것도 최고로 좋은 연주’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는 점입니다. 또 뒤이은 그다음, 그다음의 연주도 또 마음속 최고의 연주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으시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음악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혹 스피드를 최상의 가치로 두고 계신 건 아닌지요?

앞의 연주자가 나보다 더 나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완전히 좌절하거나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악의 가치를 너무 편협하게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음악의 수많은 가치 중 하나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잣대를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가치를 모두 다 추구할 수는 있지만, 또 추구하는 것이 옳지만 그중 하나를 자신의 최상의 가치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음악을 대하는 가치관이 될 것입니다. 어떤 초보 뮤지션에게는 그 음악에 관한 가치관이 스피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점점 다변화하여 다른 가치관들을 많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긴 이야기를 할 수 없으므로 이 문제를 깊은 논점으로 전개하기는 곤란하여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면, 최소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고 있는가? 우리의 음악이 슬픈 음악이라도 그 슬픔의 표현을 통해 슬픔을 극복할 힘을 주는가? 아니면 더욱더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절망으로 가게 하는가? 우리가 표현하는 기쁨은 자극적인 쾌락인가? 아니면 영원까지는 아닐지라도 시대를 넘어 지속 가능한 환희인가? 그 음악은 한 번 듣고 나면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인가? 몇 번이라도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인가? 그 음악은 듣고는 싶으나 음반을 사고 싶을 정도는 아닌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음반을 꼭 사고 싶은가? (요즘은 음반을 사지 않고 음원이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호하는 추세인데도 음반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 음악에 대한 강한 사랑의 표시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는 뮤지션들(특히 우리 드러머들)의 음악에 대한 최상의 가치는 무엇인지요?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KakaoTalk_20160205_114312296김현종
서강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Musicians Institute에서 드럼과 레코딩을 전공하였다. 상명대에서 컴퓨터음악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귀국 후 96년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처음 만드는데 일조하였으며, 영화 정사, 약속, 미술관 옆 동물원 등의 OST 드럼을 연주하였다. 퓨젼밴드 RTZ, 이정선, 한상원&정원영, 이현우 등의 공연 세션을 하였고,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에서 드럼 연주를 하고 있다. 현재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Rock Drums(2003,예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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