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호]내 주는 강한 성이요 585장

0
1019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은 세계교회가 지키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독일의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성교회 건물 정문에 ‘95개 조 논제’를 못 박은 날이 바로 1517년 10월 31일이거든요.

루터는 독일의 아이스레벤(Eislewen)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만스펠트의 라틴초급학교를 나와 형제단학교(Frate harren), 아이제나흐의 라틴학교를 거쳐 유럽 최고의 학부인 엘보트 대학 문학부에서 공부한 후 엘보트의 어거스틴파의 수도원에 들어가 24세에 신부가 되었고, 1510년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대학에서 로마서 강의를 하였는데, 당시는 로마 교황인 레오 10세가 베드로 성당 건립 모금을 위해 면죄부(Indulgence Taxes)를 판매하는 등 교회 부패가 절정에 이르던 때였지요. 루터는 성경 말씀에 정면 배치되는 가톨릭 교회의 정책을 보다 못해 드디어 최고 권력자인 교황에게 정면으로 정치적, 신학적 공격을 퍼붓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가톨릭에선 우리 개신교도를 ‘항의자’란 뜻으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하지 않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은 루터의 개혁사상을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루터는 ‘만인 사제직’의 신학으로 교인은 누구나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성경은 성직자와 특권층만이 볼 수 있었고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은 성직자들이 읽어주는 것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찬송 역시 성직자와 성가대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일반 회중들은 청중에 불과했지요. 루터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으로 말씀하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으로 응답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루터는 신구약 성경을 13년이나 걸려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라틴어로 예배드리는 ‘라틴어 미사’는 지식층의 사람들을 위해 그대로 존속시킨 채, 서민층과 농민들을 위해서 그들의 특수성에 맞도록 ‘독일어 미사’(Deutsche Messe)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독일어 미사에서 성가대와 회중이 음악을 적절히 나누어 부르게 하였지요.

루터는 문학과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회중들이 노래하도록 직접 자국어인 독일어로 된 회중 찬송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코랄’(Chorale)입니다. 그는 37편의 코랄을 만들었는데, 그 중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를 비롯한 9편은 창작한 찬송이고, 나머지는 예부터 불려 내려오는 라틴어 자료를 번역하거나 개혁 이전의 찬송을 수정하거나 시편 등 성경의 여러 부분을 인용하여 만든 것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종교개혁의 성공을 두고 하나님의 섭리에 다시금 감동합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때가 차매’(갈 4:4)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했는데요, 예수님께서 오시기에 앞서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 통치와 더불어 헬레니즘 문화와 언어의 통일, 로마가 뚫어 놓은 길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준비된 것도 바로 그 ‘때’라면, 루터의 종교개혁도 ‘때가 차매’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성경이 잘 번역되고 찬송이 작곡되어도 인쇄되어 반포되지 않으면 어느 세월에 그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인쇄술이 발명되었기에 성경을 찍어내는 대로 회중들이 볼 수 있었고, 찬송을 찍어내는 대로 회중들이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복음 찬송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터는 심오한 성경의 교훈을 단순하면서도 분명하게, 그리고 힘 있게 찬송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평민들의 언어라 할지라도 구원의 진리를 침투력 있게 신앙 고백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죠. 루터가 45세 되던 1529년 여름, 범즈(Worms)의 재판정에 나가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시편 46편 내용을 기초해 이 찬송가를 지어 그의 동료들과 함께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 땅의 마귀가 저 범스 재판정 지붕 위의 기왓장처럼 들끓더라도 진리로 이길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이 같은 코랄은 루터교 예배에서 ‘교회 칸타타’(Church Cantata)로 발전하여 이후 J.S.바흐에 이르러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기게 되었는데요. 바흐는 ‘종교개혁의 전투가’인 이 힘찬 코랄을 주제로 하여 종교 개혁을 위한 <칸타타 80번>을 작곡했습니다.

 

김명엽찬송교실3
연세대학교 성악과 및 동대학원 교육대학원,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추계예술대학교 성악과,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한국합창지휘자협회 이사장, 언더우드기념 새문안 음악교육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서울시합창단 단장, 서울바하합창단, 남대문교회 시온찬양대, 한국장로성가단 지휘자,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