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호]찬양에서 경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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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에서 경배로(From Praise To Worship)』
저자 : 하워드 래친스키(Dr. Howard Rachinski)
Northwest Music Ministers Conference Chairman
Music minister @ Bible Temple, Portland, Oregon
번역: 김영국

우리가 찬양의 절대성을 이해할 때, 더 높은 경배의 차원으로 들어갈 것을 확신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서 놀라운 즐거움과 성숙함이 있는 총체적인 예배의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찬양이란 무엇이며 경배란 무엇인가?

 

_두 종류의 찬양

성경에서 찬양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원어로 ‘halal’ 인데, 이것은 ‘소리가 확실한, 빛나는, 보여주는, 자랑하는, 소란스럽게 우직한, 열광, 축하하는’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찬양은 혼(soul)의 표현이다. 혼은 우리의 마음(mind)과 의지(will)와 감성(emotion) 그 자체이며 이 세 가지 요소가 직접적으로 모두 관련되고 또한 포함된다.
시편기자 다윗은 그의 예배의 시에서 계속하여 우리의 혼(soul)이 주님을 송축하고[“내 영혼(soul)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103:1).” ], 주님을 자랑하고[“내 영혼(soul)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시34:2.)” ], 주님을 찬양하게 되어 있다고 선포한다[“할렐루야 내 영혼(soul)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146:1)” ].
이 혼(soul)의 표현은 다음의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인 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명백하게 나타난다.

• 노래하기 –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시47:6,7).”
• 손뼉 치기와 외침 –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시47:1)”
• 손을 들어 올리기 –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34:2).”
• 굽혀 절하기와 무릎 꿇기 –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95:6).”
• 음악적 표현 – 시150편

 이러한 표현의 찬양은 자발적(spontaneous)이며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비록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의 반응과 표현에는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즉각적이고도 자발적인 찬양이 우리에게서 터져 나오지 않는 경우와 상황을 우리는 경험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느낌에만 근거하여 행동하거나 반응함으로써 찬양의 또 다른 면에 있는 진정한 의미와 축복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자발적 찬양이 멈추는 곳에 희생적 찬양(sacrificial praise)이 있다.

 

자발적 찬양(Spontaneous Praise)

다윗은 시103편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때문에 주를 찬양하라고 우리를 권고한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시고
•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며
•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 인자와 자비로 우리에게 관을 씌우시며
•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신다.

 그 은택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감정적으로 마음이 요동칠 것이다. 우리의 느낌과 감정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여,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찬양으로 돌출된다. 그러므로 자발적 찬양은 우리의 감성에서 탄생된다. 우리는 주를 찬양하고 싶다고 느끼며 감정적 반응에 휩싸이게 된다. 그 기분은 쏟아져 나오는 물처럼 우리에게서 터져 나온다. 자연적인 찬양은 즐겁고 감성적이며 흥분으로 넘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로 인해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 특별히 감성이 풍부한 한국교회의 회중들에게 억제된 이 감성적이며 자연적인 찬양이, 자발적으로 마음껏 회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희생적 찬양 (Sacrificial Praise)

그러나 먼저 언급한 대로, 찬양하고 싶은 느낌이 사라져 버리는 때는 무엇인가? 히13:15절은 하나님께 항상 찬미의 제사(sacrifice of praise)를 드릴 것을 우리에게 권면한다. 희생(sacrifice)이란 단어는 도살, 죽임, 살해의 행동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반대되는 우리의 감정들을 죽이고 그런 우리의 느낌들을 살해하도록 우리를 권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찬양하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때가 바로 우리가 성경 말씀에 순종하고 찬미의 제사를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희생적 찬양은 우리의 감정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희생적 찬양은 우리의 의지(will)에서 생겨난다.
시편에서 제일 많이 반복되는 구절이 “I will(내가 하리라)” 이다(200회 이상). 다윗의 찬양에서 요점과 열쇠는, 우리가 찬양하고 싶은 때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희생의 영역에 들어가고 있을 때도 찬양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즉 의지로 기꺼이 우리의 느낌을 도살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나는 주를 찬양하겠다. 비록 내가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라도 “I will praise Him!”. 비록 환경과 상황이 내가 찬양하도록 움직여주지 않더라도 ‘I will praise Him!”(시56, 57).
이런 찬양의 관점은 너무 중요하고 강력해서 우리가 찬양의 더 위대한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며, 하늘의 음악장으로 임명되었던 천사(스랍) 루시퍼가 할 수 있었던 찬양보다
더 위대한 찬양의 영역으로 들어갈 길을 열어준다. 에스겔 28:12-19절과 이사야 14:12-14절은 루시퍼(Lucifer-히브리어로 ‘heylel’, 즉 찬양이란 단어의 파생어)가 완전하게 창조되었고 완전한 길로 행하였었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완전함에서 벗어나 불법(죄악)이 그의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나를 높이겠다. 나는 창조자의 자리에 오르겠다.” 며 오만의 자기감정과 자신의 느낌대로 행하였고 순종과 겸손, 희생적 찬양의 마땅한 자리와 길로 들어가기를 거절하였다. 그 결과는 추락과 파멸과 멸망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되는 것은 오늘날 ‘희생적 찬양’ 을 이해하고 그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윗과 그의 찬양과 경배의 예배팀처럼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겠다.’ 고 다짐하며 의도적으로 완전함의 영역 안에서 성숙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적 찬양과 희생적 찬양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찬양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시2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의 찬송 중에 임재하신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응답의 결과로 우리가 찬양의 영역에서 경배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경배의 영역 (The Dimension of Worship)

찬양이 혼(soul)의 표현이라면 경배는 영(spirit)의 표현이다(주: 고전 14장 15절의 영으로의 찬미는 worship song으로 이해된다). 경배 속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친밀한 교제(communion)가 일어난다. 경배는 히브리어로 ‘머리 숙임, 엎드림, 낮춤’ 의 의미인 ‘샤카(שׁחה)’ 이고 희랍어로는 “입맞춤, 흠모, 경외”의 의미인 ‘프로스쿠네오(proskuneo)’ 이다. 경배는 육체로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경배는 혼으로도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4:24). 우리가 진정한 자발적 희생적 찬양을 할 때, 하나님은 순전하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그의 임재를 감지하는 영적 차원의 교재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 초월의 순간에 우리는 거룩한 땅에 있음을 알게 되어, 세상과 나는 간곳없이 구속한 주만 보인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께 경배드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방법으로 나타내 주신다. 하나님의 영과의 친밀한 영적 연합의 결과로 우리 영혼에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는 예배의 경험은, 우리의 진정한 찬양의 결과로 이루어지며 그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예배의 축복이다. 이렇게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의 임재로 가는 길이 되어 왔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고 그분을 위하여 여러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위대하신 창조주의 임재 속에 거하도록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은 오직 진정한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이다.

 

                        김영국
김영국 목사님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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