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호]언더우드 선교사의 흔적 『찬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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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의 타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교회와 선교단체에서는 언더우드 선교사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와 세미나를 열고 있다. 또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일생과 사역들을 정리하며 그가 한국교회사에 끼친 영향력들을 돌아보고 그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 각 분야에 많은 흔적과 업적을 남긴 그의 헌신이 지금의 한국과 한국교회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배음악 6월호에서도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교회음악에 끼친 영향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언더우드 선교사는 7월 1일 185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3세가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81년 뉴욕대학교를 졸업, 1884년까지 뉴브런즈윅 개혁교회 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884년 조선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선정되었으나 당시 조선은 갑신정변으로 사회가 혼란하였기 때문에 조선 선교를 잠시 미루고 일본에 머물러야 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마가 복음서를 번역한 이수정(李樹廷)에게서 한국어를 배우며 조선 선교를 준비하였다.
그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감리교 선교사였던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와 함께 인천에 입국하였다. 입국 당시 그는 조선 정부로부터 선교활동을 허락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조선어 문법책을 영어로 집필하였으며, 그 후 성서 번역 위원회 초대 위원장, 대한기독교서회 회장, 한국 기독교 교육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예수교학당, 서울 구세학당,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였다.
최초의 공식 선교사로서 그는 우리나라 첫 개신교 교회 새문안교회의 전신인 정동교회를 세우고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며 교회 연합운동을 지도하는 등 조선의 정치, 종교,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국 최초의 찬송가 악보집 『찬양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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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출판한 한국 최초의 찬송가 악보집 『찬양가』

언더우드 선교사의 열정은 한국의 교회음악과 일반 음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입국 전 한국에 자생적으로 설립되었던 교회공동체인 ‘의주교회’, ‘소래교회’에서는  예배드릴 때 중국 찬송가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중국어 음으로 혹은 한글식 음역으로 찬송을 불렀다. 이처럼 한국교회 초기에는 서양의 찬송가와 중국어 찬송가가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불렸고 필사하여 예배 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초기교회 예배와 전도에 있어서 한국어 찬송가 편찬은 한국어 성경 편찬에 버금가는 의의와 필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1892년 『찬미가』를 시작으로 한국의 본격적인 찬송가 시대가 시작한다. 『찬미가』는 한국 최초의 찬송가로 감리교 존스 선교사(George Heber Jones, 1867-1919)와 로드와일러 선교사(Louisa C. Rothweiler, 1853-1921)가 공동으로 출판하였다. 여기에는 총 27곡의 번역찬송가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악보가 없는 가사판이다. 이후 언더우드 선교사가 1894년,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였던 알렌 선교사(Horace Newton Allen, 1858-1932)와 함께 악보가 수록된 한국 최초의 찬송가 악보집 『찬양가』를 출판하였다. 본래 계획은 성경 번역과 마찬가지로 연합찬송가를 감리교와 함께 만들려 했지만 찬송가의 내용 조정이 필요해지면서 연합찬송가 편찬이 지연되었다. 한국에서는 찬송가 편찬 재촉이 이어졌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먼저 『찬양가』를 출판했다.

『찬양가』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인쇄됐고 서울 삼문출판사에서 발행됐다. 모두 117편의 찬송이 4성부 악보와 함께 실려 있다. 이 찬송가집의 특징은 영국과 미국 계통의 찬송가 외에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가 7편(또는 9편)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가들은 질적인 면에서 우수하지 못하고 단순하며 소박한 것들이었지만 언더우드가 처음부터 한국인의 작품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 저작 찬송가 일곱 곡 중에서 저자가 밝혀진 것은 제93장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했네>이다. 이 찬송가는 백홍준 장로가 작사한 것이며 그 외 여섯 곡은 작사가 미상이다.

서문

언더우드 선교사 『찬양가』 서문 中

 언더우드 선교사는 번역 찬송가 편찬 작업이 지닌 어려움을 『찬양가』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영문 찬송가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어려움만이 아니었다. 음악적으로는 근대적 음곡과 발성이 소개되어 있지 않거나 그런 형태의 운율과 음절 표시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 음곡 자체를 새롭게 전수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음곡에 한국어 가사를 한글로 붙여야 하는데, 여기서는 운율도 문제였고, 음절의 분철과 표기도 문제였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렇게 어려운 편집과정에서 한국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사를 번역하면서 한국말의 억양과 서양 찬송의 멜로디 사이의 장단과 고저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또한 『찬양가』는 근대초기 찬송가집으로 찬송가를 용도에 따라 구체적으로 분류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예배와 찬송천부’, ‘찬송 예수’, ‘찬송 성령’, ‘신도생활’, ‘찬송성회’로 구성되어 있다. 선교초기인 1900년까지 각 교파에서 공인된 찬송가집보다도 잘 짜인 구성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외에 예배 시 필요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 외에 십계명도 수록되어 있다.

『찬양가』는 판을 거듭할수록 분량이 늘어났다. 『찬양가』가 첫 출판된 이듬해인 1895년 판에서는 159곡, 1896년 3판 때는 160곡이 되었다. 1898년 4판 발행 때는 164곡, 1900년에는 182곡이 수록되었다.

현재 『찬양가』는 ‘문화재청 고시 제2011호, 등록문화재 #478호’로 등록돼 있다. 문화재청은 『찬양가』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의 오선 악보집이면서 최초의 악보 있는 개신교 찬송가집으로 한국 근대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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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가』(1894), 악보 1장 <거룩 거룩 ᄒᆞ다>, 오선악보와 가사를 함께 수록했다.

 

『찬양가』에 나타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교회음악관

언더우드 선교사의 『찬양가』에는 한국 입국 전부터 함께 활동한 한국인 전도자와 한국 초기교인들의 신앙고백을 담고 있어 그들의 신앙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찬양가』는 토착 전도의 결실을 수용하였고,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신앙공동체와 조선선교단체 간의 협력의 결과라는 긍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찬양가』를 통해 개혁교회의 전통에 따라 인간의 죄를 강조하며, 인간의 죄는 오로지 예수님의 힘으로만 이길 수 있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온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밝히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어떤 학설도 주장하지 않으며, 순수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 진리의 보편성을 수용하여 어떤 특정 교리에만 매달리는 편협성도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그의 찬송관과 연결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찬양가』 서문에서 신을 찬미하고 노래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음을 강조하며 찬송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의 중요한 특징임을 주장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신을 위해 찬미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이 아님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음악은 천민집단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되던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로써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한국교인들이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찬송을 기독교의 특징과 연결시키고, 찬송하는 이유를 밝히면서 찬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선 악보가 인쇄된 최초의 찬송가 악보집 『찬양가』는 한국 근대 음악사의 기초이자 획기적인 문헌이며,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음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찬양가』 안에는 한국과 한국교회를 향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헌신이 담겨 있다.
한국교회와 교회음악인들은 언더우드 선교사의 마음을 이어받아 교회음악사역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고 널리 퍼트려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문옥배, “한국교회 음악 수용사”. 2001, 『예솔』
문옥배, “한국 찬송가 100년사”, 2002, 『예솔』
서정민, “언더우드의 근대 문서운동 연구”, 2004, 연세대학교/신학논단
최재건, “[한국 기독교 초석 놓은 언더우드] (8) 언더우드와 찬송가”. 『국민일보』, 2014.08.12.
김기원, “[교회음악 이야기] 한국교회 찬송가의 시작”, 『GODpia뉴스』, 2011.12.07.
양민경, “부길만 동원대 교수 “언더우드 ‘찬양가’ 문화재 등록 기독교의 근·현대사 기여 인정한 것””, 『국민일보』, 2011.08.24.
문화콘텐츠닷컴, “교회음악의 근대전개” (http://www.culturecontent.com)
위키백과.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https://ko.wikipedia.org)

 

이병호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성악전공, 협성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하였다. 현재 서소문교회 4부 갈보리찬양대 지휘자, 화성시소년소녀합창단 부지휘자, 서울챔버싱어즈에서 사역하며 교회음악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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