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호] 예수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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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작은 음성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 4:19)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셨다. 그때 주님의 “나를 따르라”는 초청은 확고한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 부름에 분명하게 응답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막 10:28)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베드로처럼 모든 소유와 모든 가족을 실제로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제자로 부름을 받을 때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은 죄와 세속이다. 이러한 것들을 버려야 하는 줄을 몰랐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조아리고 묻기 바란다. “주님, 왜 저는 지금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지요? 왜 허락해주지 않으십니까?”

주께서는 당신이 지금 왜 주님을 따를 수 없는지 당장 보여주실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변명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 그것만은 안 됩니다. 그것은 사실 별것 아닌데 왜 그러십니까?”
그러나 바로 별것 아닌 그것 때문에 당신은 주를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의 음성과 상충되는 생각이나 말을 결코 믿지 말라. 성령께서 당신 안에서 뭐든 감지하여 가책을 주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쫓아내라. 그 이유는 성령께서 감지해주신 것은 당신의 깊은 죄성과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그 작은 부분은 사실 당신의 전반적인 죄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죄성은 자신에 대한 권리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비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 4:34)

 예수님과 단둘이 함께한 적이 있는가? 제자들은 주님의 입술로부터 친히 진리를 듣는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질문할 수 있는 특권도 있었다. 제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께 직접 배우며 질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예수님께 직접 설명을 들으려 하기보다 유명한 주석들을 찾아다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께 나아가 직접 들을 수 있을까?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바르게 설명하는 유일한 분이시다. 성령은 사람들의 주석이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주신다. 성령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참된 의미를 식별하신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 16:13)

 성령의 해석은 결코 복잡하거나 머리 좋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해석은 언제나 심오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당신은 성령의 해석을 깨달으면서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진리이다”라고 확신하게 된다. 만일 어떤 해석이 당신에게 이러한 확신을 주지 않는다면 주석 읽기를 당장 멈추라. 그 해석이 주님의 것인지 아닌지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라. 머리로 따지려 하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께 물으라. 만일 주님께서 당신을 아직 기다리게 하시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관한 분별과 영적인 성품은 언제나 비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제자에 대한 한 가지 원칙으로 끊임없이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마 7:24). 불규칙적으로 주의 말씀을 듣는 자는 한쪽으로 치우친 비정상적인 성도가 되기 쉽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구원 및 죄사함, 그리고 여러 치유 사역의 반짝이는 체험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가 옳으니 나를 좇으라.”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높이라”고 하신다. 모든 것을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고 배우라. 주의 말씀을 통해 계속적으로 교훈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친히 들으라. 성령께서 당신을 가르치시도록 하라. 꾸준히 행하라.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순종함으로 제자가 되라. 절대로 당신의 체험이 당신의 삶을 인도하지 못하도록 하라. 체험이란 단지 그 체험을 주신 주님을 더 알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을 알기에 힘쓰며 끊임없이 배우는 자가 되라. 그러면 진리가 항상 당신 앞에서 열릴 것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지 못하시는 인간의 문제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계속적으로 조심스럽게 걸음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현대 문명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정신병자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문명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문명은 인간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수천수만 가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문명을 세워간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시스템은 언젠가 고철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때 인간 들은 주님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저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주를 따라야 한다고 심각하게 말씀하셨는지 그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주님은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엄격하게 말씀하신다. 오늘도 주의 부르심과 문명의 혜택의 소리는 서로 큰소리를 내며 맞부딪힌다. 산상수훈을 읽어보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눅 12:31)

 이 말씀을 지금 당신의 삶에 적용해보라. 이 말씀은 정신병자의 말이든지 아니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은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근본적인 진리에서 왜곡되어 있다. 그 책의 내용에는 주님께서 친히 이루신 중생에 관한 메시지가 무시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닮아보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절망 가운데 마치게 된다. 사람의 자연적인 속성으로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할 때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생명이 없으면서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만이다. 오직 그러한 삶을 살았던 주님의 생명을 소유해야만 그러한 삶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벧전 2:21-23).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주께서 우리 안에 넣으신 생명에게만 해당한다. 구속의 놀라움은 주께서 순종하려는 자들에게 주님 자신의 성향을 넣어주실 수 있다는 점이다.

 

오스왈드챔버스

십대 시절에 찰스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방탕한 삶에서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그는 에든버러대학에서 예술과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어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평생 신실한 증인으로 헌신했다. 미국, 영국, 일본에서 순회설교자로(1906-10), 잉글랜드의 클라팜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수로서(1911-15), 그리고 이집트에서 YMCA 군목으로(1915-17) 활발하게 사역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솟아난 그의 메시지는 구원의 기쁨과 구령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을 주었다. 주옥같은 메시지를 엮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비롯해 그의 많은 묵상과 설교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영적인 감화를 크게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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