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호] 다윗왕의 신약의 예배 ? 7. 초대교회는 자신을 다윗의 회복된 장막으로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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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예배는 예식이나 의식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에 대한 자연스로운 자발적 반응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 예배는 모세의 희생제물의 제도처럼 이스라엘의 후속 세대에 전달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에서 도덕적이며 영적인 쇠퇴의 시기에는 다윗의 찬양과 경배는 없어져 버렸고 게다가 나라가 배교와 우상숭배에 빠진 지도자들을 따랐을 때에는 전 희생제사 제도가 폐기되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의로운 왕이 개혁을 시작하고 야훼의 예배로 돌아 올 때에는 언제나 다윗의 장막의 규범을 따르는 예배가 동반되었다. 아사왕 때에는 언약이 갱신되었으며 유다 백성은 “큰 소리로 부르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무리가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다(대하15:14-15).”? 어린왕 요아스가 왕위에 오르고 여호와의 예배가 제사장 여호야다로 말미암아 회복 되었을 때, “국민들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불며 노래하는 자는 주악하며 찬송을 인도하는지라(대하23:13)”

개혁의 히스기야왕은 “레위 사람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의 명한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하셨음이라 (대하29:25).” 히스기야는 다윗이 지시한 예배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하였다. 백성은 노래하는 자들이 찬양 할 때에 경배하였고 왕은 그 노래들이 다윗과 아삽의 시로 할 것을 명령하였다 (대하29:25-30). 왕 요시야는 히스기야 왕처럼 이방신단을 헐어버리고 유다의 위대한 개혁을 단행하였는데 그 결과로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을 다윗의 원래의 예배팀이었던 다윗, 아삽, 헤만, 여두둔이 규정하여 명한대로 인도자들로 삼았다 (대하35:15).
스룹바벨이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기위해 바벨론 포로에서 왔는데 에스라3장10-13에서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에 레위인들과 아삽자손들이 나팔과 제금을 들고 외치며 노래하여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였다(스3:10). 느헤미야도 국가정화와 언약의 회복과 예루살렘 성벽재건을 위해 포로귀환을 인도하였는데 성벽봉헌에서 레위인들에게 다윗과 솔로몬의 명을 좇아 다윗의 악기들을 사용하여 노래하며 감사케 하였다 (느12:27-46).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두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게하였다(느12:46).”

다윗의 장막에서의 예배의 중요한 특징은 그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언약궤 바로 앞에서 드려졌다는 것이었다. 모새의 성막에서는 언약궤는 성막 내부의 깊숙한 곳에 있어서 일년에 한번 만 대 제사장만이 볼 수 있었다. 다윗은 레위인 만이 언약궤를 옮겨야 하는 규정을 지켰지만(대상15:2), 그 언약궤를 백성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두었다. 언약궤 바로 앞에서 드렸던 그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들이며(벧전2:9) 하나님의 임재에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신약예배를 예시하였다. 이것은 다윗의 장막을 교회로 해석한 야고보의 견해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행15:16)’ 하나님은 사실상 시온의 찬양과 경배를 사랑 하셨으므로 주의 예언적 말씀을 통하여 다윗의 예배의 제정을 명하셨다. 야고보는 아모스의 예언(암9:11)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윗의 회복된 장막임을 믿는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이 예언적 진리를 초대교회에 직접 적용하였다. 사도바울이 쓴 에베소 1장의 교회의 삼위일체의 찬양사역은 다윗의 장막의 연속적 찬양을 상기시킨다.

 

김영국김영국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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