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호] 영적 진단, 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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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사역하기를 원하는가?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0:15)

복음의 사역자는 보냄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선택해서 사역자의 길을 떠나면 안 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결정에 따라 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

그러나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구 때문에 사역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요구에 의해 사역자가 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실 구원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도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라.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 나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며 무능하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하셔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가? 혹시 감상적으로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둘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거룩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보냄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안일함을 느끼는 곳으로부터 주님께서 우리를 끄집어내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보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것이라고 전혀 기대조차 못하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사역자로 보내시기 전에 먼저 자신을 철저하게 탐색하게 하신다. 그 후 바울이 말한 것을 이해하게 하신다.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후 13:4)

종종 사역자의 삶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의 사역자는 주님이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깨달을 뿐 아니라 자신의 철저한 부적절함과 자격 미달을 깨닫는 자여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일했는데, 어느 날 철저히 실패로 마치게 된다. 그러면 사역자는 완전히 부서지고 깨어지며 낙심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부터 서서히 역사하기 시작하신다.

“네 수고가 무너진 것을 토대로 내가 너를 나의 사역자로 온전케 만들겠다. 이제 일어나 먼지를 털어라.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말해주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사역자로 사용하시기 전에 철저하게 우리를 비천한 자리까지 몰아가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주님, 제게는 선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뭔가를 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때가 많다. 현대인들의 인내의 부족이 기독교 사역에도 틈타 들어오더니 이제는 사역자들마저 주께서 그들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91:1)

아무도 당신에게 전능자의 그늘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줄 수 없다. 당신 자신이 그곳을 찾아야 한다. 전능자의 그늘을 찾게 되면 거기에 머물라. 주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는 어떠한 악도 당신에게 발생할 수 없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당신이 얼마나 심도 깊은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사역자로서 얼마나 잘 준비되는가가 결정된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깊이는 감정이나 느낌 또는 특별한 때와 장소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얼마나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주님과 깊은 시간들을 보냈는가와 관련된다.

당신의 영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것도 허락하지 말라. 주님과의 사귐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삼가라. 또한 바르게 살지는 못하면서 바른 말만 하는 자리에서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사역자는 가장 심각한 위선자로 비쳐질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보다 몇 개월 전 또는 몇 년 전에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잘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함으로써 쓸데없는 말을 삼가게 된다. 대신 가장 높은 곳에 계신 그분을 만나는 비밀 장소와 시간을 더욱 마련하게 된다.

이 시대에 아주 슬픈 일은 종종 사역자들이 사역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훨씬 더 못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사역자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보다 더 많은 짜증과 걱정과 초조함을 나타낼 때가 있다. 이는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심판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벧전 4:17)

베드로는 고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이 어디에 있는가? 내 몸속에 있다(고전 6:19). 하나님의 자녀로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아버지께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종종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있다. 이때 주께서는 당신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벧전 4:19)

고난은 징계 및 훈련을 위해 필요하다. 훈련되지 못한 미성숙한 성도가 징계를 받게 되면 그것을 멸시하거나 그 징계가 사탄으로부터 왔다고 말하기 쉽다. 하나님께서 꾸짖으실 때 절망 하고 쓰러지거나 땅굴을 파고 숨기도 한다. 그러나 징계를 받을 때 히브리서 기자의 말을 기억하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12:5)

고난의 또 다른 경우는 주께서 고난을 당하심같이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우이다 (5:8 , 고후 1:5)

이러한 모든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도록 해야 한다. 즉, 고난을 거부하지 말고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수천 가지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결과적으로 아무런 영적 성장을 얻지 못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자라면 주님의 그늘 아래서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주님의 그늘 아래서 당신은 매일 하나님의 연단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회초리를 피해가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심같이 고난을 당하면 우리는 바른 길에 서 있는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3)

 

우리는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종종 ‘고난’이라고 하면 신체적으로 받는 것이나 하나님을 위해 뭔가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이러한 개념은 아주 미천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가 겪는 고난을 통해 우리는 자신에 대한 모든 권리를 주께 양도해야 한다. 그러할 때 고난 가운데서도 언제나 기쁨과 평강과 만족이 찾아온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표면에만 머물게 된다. 이러한 기쁨이나 평강과 만족은 고난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완벽하고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자리까지 가려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해야 한다.

오스왈드챔버스오스왈드챔버스

십대 시절에 찰스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방탕한 삶에서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그는 에든버러대학에서 예술과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어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평생 신실한 증인으로 헌신했다. 미국, 영국, 일본에서 순회설교자로(1906-10), 잉글랜드의 클라팜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수로서(1911-15), 그리고 이집트에서 YMCA 군목으로(1915-17) 활발하게 사역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솟아난 그의 메시지는 구원의 기쁨과 구령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을 주었다. 주옥같은 메시지를 엮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비롯해 그의 많은 묵상과 설교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영적인 감화를 크게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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