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호] 예배음악이 만난 사람들 ? 피아니스트, 작곡가 안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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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에 대한 간단한소개와 최근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궁금합니다. 그리고 내년 계획 등 앞으로 어떤 부분을 준비하고 있으신지요.

예 저는 단국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Master of Church Music(교회음악석사)학위를 수학하고 University of North Texas(북텍사스주립대학원; Texas소재)에서 Doctor of Musical Arts(음악박사)학위를 피아노연주 전공으로 Musik Hochschule in Vienna(비엔나국립음악원, Austria)에서는 Diplom & Magister(디플로마와 마기스터)학위를 작곡전공으로 수학했습니다.

7년전부터 찬송가를 피아노독주로 편곡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100여곡을 썼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추려 예솔출판사에서 악보를 출간했는데요. 앞으로도 찬송가를 계속 편곡을 할 것이며 아마도 평생 지속할 작업일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시편을 오라토리오 형태로 작곡하는 일에도 손을 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150편 가운데 45편정도를 마쳤는데 150편 모두를 다루는 워낙 방대한 일인지라 이 역시 평생 지속될 작업일 것입니다. 2016년에도 지난 수년간 그랬듯이 보람, 긍지, 열정을 갖고 이 두 가지 작업에 몰입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음악을 공부하신 것과 교회나 예배음악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강원도 홍천군의 한 깊은 산골마을에서 개신교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문명의 혜택이 없던 곳으로 어린시절의 음악교육은 전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2세경 부모를 따라 대전으로 이사온 후 음악가의 길을 걷기로 한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와 절친한 한 목사님께서 집을 찾아와 며칠 머무셨는데 그분께서는 음악애호가이셨는지 휴대용전축과 클래식음반 몇장을 가지고 오셔 틈틈이 음악감상을 하셨습니다.

그때 난생 처음 (서양)음악을 들었으며 그 신비함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그때의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감상하실 때 곁에 바짝 붙어 경청하며 아버님과 함께 외출하시면 그틈을 타 전축을 틀어 종일토록 음악을 들었습니다. 베토벤의 엘리자를 위하여,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리스트의 사랑의 꿈,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 생상의 백조….등등.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아버님의 교회에서는 반주자가 없어 어려운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인 제가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것을 아신 아버님께서 어린 저에게 예배반주를 시켰습니다. 피아노가 아닌 풍금이었죠. 저는 그같은 기회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바이엘, 체르니 대신 찬송가반주로 음악교육에 입문한 셈입니다. 아버지와 교분이 깊었던 미국선교사 헨리 와이머의 주선으로 미국 남침례신학대학원에 유학하여 교회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한국의 예배음악사역의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진단하고 계시는지요?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하며 또 장점을 어떻게 살려갈 수 있을까요?

다일공동체의 최일도목사님께서 언젠가 한 기독교방송에 나와 하신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은 요건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예배시간에 성가찬양을 순서에 꼭 넣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가대찬양이 예배시간에 있어야 한다는 귀절은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 성가찬양이 없다한들 예배가 덜 은혜충만해지지 않습니다” 기독교교육기관, 방송매체, 잡지에서 거론하는 성가대란 한국 교회전체를 따져 후히 잡아도 10%가 안되는 중대형이상의 교회 소속입니다. 이런 교회 성가대를 기준으로 하여 교회음악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중소형과 그 이하를 차지하는 90%의 경우 여건은 너무나도 열악합니다. 성가대원도 그렇지만 지휘자, 반주자의 예술적 기량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게다가 연습시간, 환경도 매우 불리합니다. 아마 이 후자는 대다수의 대형교회에도 적용되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저는 지난 20년간 성도수의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 평균 15명정도의 작은 성가대만을 지휘하였기에 이같은 문제는 항상 현장체험입니다. 지금 현재 봉사하는 교회의 경우는 10명입니다. 저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거론함으로서 성가대가 없는 편이 좋다란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제기하는 바는 왜 반드시 합창이어야만 하느냐 입니다. 성가찬양을 4부합창을 중심으로 하여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이라고 봅니다. 인식의 패러다임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합창이 아니라면 중창 – 보컬 듀엣, 트리오,콰르텟, 아니 독창이나 악기연주만으로도 합창에 못지않은 훌륭하게 은혜로운 연주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2배,3배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교인 수를 반영하듯 남성의 성가대원은 모든 교회에서 절대 부족합니다. 그래서 자리를 메워주고자 성가석에 앉아있는 남성대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교회음악 합창의 레퍼토리가 4부보다는 소프라노 알토, 남성으로 구성된 3부편성이 더 실제적이고 바람직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저는 제 봉사하는 교회에서 이같은 문제를 반영하여 독자적인 성가찬양시스템을 구성, 운영하고 있습니다. 왜 매주일이어야 합니까? 교회마다 자신의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 준비가 되는대로 – 격주, 한 달에 한 번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최상급의 연주가 아니라면 그래도 최선을 다해 준비된 찬양을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한 후 예배시간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최일도목사님의 지적대로 성가찬양순서 없이 예배를 드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mp3를 통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매우 뛰어난 성가연주를 손쉽게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술적취향과 기대수준이 부쩍 높아진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최상급의 아니면 최선을 다한 성가찬양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절실이 요청됩니다. 더우기 하나님께서는 흠없는 제사와 제물을 요구하시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음악가 선배님의 입장에서 음악인으로서 신앙을 지키고 음악성과 신앙의 균형을 지키는데 어떤 조언 및 권면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클래식음악이 퇴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다양한 분석이 있겠지만 판에 박힌듯한 연주레퍼토리가 그 원인 중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흐부터 R. 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의 고전만이 연주회의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반면 지난 70년간 작곡된 작품들은 좀체로 연주되지 않습니다. 공연장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음악애호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점차 박물관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요지는 18,19세기에서처럼 창작이 연주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음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저의 어린 시절 말롯테의 <주기도문>, 아담스의 <거룩한 성> 을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교회에서는 (나운영의 <시편23>을 포함하여) 세 곡만이 너무도 자주 불리웁니다. 달리 말한다면 이 곡들의 예술적 가치를 능가하는 작품이 안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클래식계에서처럼 창작이 부진하다는 반증입니다. 물론 새로이 합창곡, 독창곡이 꾸준히 쓰여지기는 하나 뚜렷이 주목을 받는 경우는 희박합니다. 기현상입니다. 불후의 가치를 지닌 위대한 교회음악이 나오려면 창작계의 분위기와 면모가 쇄신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창조,창조,창조 – 아래에서 다시 언급이 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예술(교회음악)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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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매거진에서는 교회 전 기관을 아울러 예배음악 전체를 디렉팅하고 기획하는 음악목회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음악목회자로서 사역을 준비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조언을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1장27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형상(image)이란 의미를 두고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이 분분하지만 제게는 곧 창조(creativity)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 자신처럼 창조의 능력, 창의력이 있는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창조란 어느 우수한 것을 기준삼아 이를 모방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이를 능가하려는 벤취마킹과는 전혀 비교가 안되는 인간활동에서의 가장 높은 영역입니다.

성가대지휘자로서, 반주자로서, 대원으로서, 혹은 음악목사로서 교회음악에 봉사하는 사람들은 교회음악의 개념, 성가곡 선정, 성가대운영 등등에 있어 벤취마킹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 곧 창조의 능력을 발해야합니다. 더욱 많은 교회음악인들이 창의적으로 임한다면 교회음악의 면모가 많이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창작활동을 통해 한국교회 예배음악의 더욱 큰 발전이 있기를 소망하며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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