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호] 브로콜리 선데이스쿨 – 7. 마음속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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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학원에 가자마자 기욱이에게 찾아갔어.

“비밀은 바로 ‘집중’에 있었어. 집중! 예배 시간에 딴 생각 안하고 집중하는 게 진짜 예배인 거야. 너 예배 때 딴 생각하지?”

“음, 그렇긴 하지. 근데 딴 생각 말고 무슨 생각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냥 하나님 생각?”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 예배 시간 내내 마음속으로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이렇게 중얼거려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 저 예배 잘 드리죠? 떠들지도 않고 장난도 안 쳤어요’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영어 말하기 대회를 앞두고 학원에서 회화 시험을 보기로 했어. 사실 나는 영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나는 한국 사람인데 왜 미국 사람을 흉내 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엄마와 선생님의 잔소리 폭탄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해 보기로 했어.

나는 기욱이와 짝을 지어서 대화문을 아예 달달 외워 버렸지.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아주 멋지게 영어 실력을 뽐내고 들어왔어. ‘이만하면 칭찬해 주시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내 발음이 이상하다고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셨어.

“꼭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는 것 같은데? 사투리 스피킹 대회 나가면 일등 하겠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어. 나는 기분이 아주 별로였어. 한국 사람인 내가 영어를 해 봤자 미국 사람만큼 되겠어? 나는 알파벳 ‘C’자가 쾅 찍힌 종이를 받았어. 집에 가서 엄마 앞에서 다시 말한 뒤에 사인을 받아 오래. 엄마가 이걸 보시면 비싼 돈 내고 공부 제대로 안 했다며 혼내실 텐데.

교회에 가니 차진수와 일당들이 음악에 맞춰 아주 멋진 춤을 추고 있었어. 그러다 우리가 들어오니까 음악을 딱 꺼 버리는 거 있지?

“우리 잠깐 쉬자.”

진수가 우리를 힐끔힐끔 보면서 말했어. 저쪽 구석에서는 로아가 굳은 얼굴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

왜 이렇게 늦게 와? 집에서 동영상 보고 연습은 해 봤어?”

“학원 수업이 늦게 끝났어. 그리고 연습은…… 많이 못했어.”

“그게 자랑이야? 만날 나 혼자만 다 해 오고, 나만 먼저 와서 기다리고……. 너희 정말 너무해!”

로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어. 기욱이와 나는 깜짝 놀라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지. 우리가 늦어서 이렇게나 많이 속상했나? 로아에게 미안했어. 우리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연습했어. 헷갈리고 잘 되지 않아도 불평 한마디 안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이제 집에 가려는데 교육관 문을 박차고 한 아이가 들어왔어.

“누, 누나! 어, 엄마가 당장 집으로 오래! 나, 난리 났어, 지금.”

로아의 동생 로민이었어. 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로민이는 말도 더듬고 행동도 뭔가 어설퍼. 그런데 누나를 닮았는지 무지 똑똑하다고 들었어. 한 번 본 건 거의 다 외운다나.

“내가 알아서 할게. 너 먼저 가, 로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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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의 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어. 아파트 입구 앞에서 헤어지려는데 로아가 입을 열었어.

“저기……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 아냐. 우리도 잘못했는데 뭘.”

기욱이와 나는 손사래를 쳤어. 그러자 로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

“사실은 내가 교회 나오는 걸 엄마가 반대하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교회냐면서. 여기 오기 전에도 화를 심하게 내셔서 난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싶었어. 그래서 너희한테 도리어 화를 낸 거야.”

콧대 높은 김로아도 나름의 힘든 일이 있구나. 우리 엄마도 나한테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한다면……. 하아, 얼마나 좋을까? 로아가 계속 말했어.

“그렇지만 나는 늘봄교회가 좋아. 여기 나오면서 하나님이 나를 보살펴 주신다는 걸 믿게 됐거든. 엄마 때문에 속상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분명 들어주실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너네도 날 위해 기도해 줘야 돼. 알겠지? 그럼 잘 가!”

오늘따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 준 김로아는 금방 저편으로 달려갔어. 마음속의 비명이라……. 마음속으로 외치면 그 소리는 누가 듣지? 하나님이 들으시나?

“로아는 진짜 예배를 드릴 준비가 된 것 같네.”

어느새 뒤에 유기농 전도사님이 와 계셨어.

“또 엿들으셨어요?”

“또? 저번엔 교육관 들어가는데 너희 얘기가 들린 거고, 오늘은 퇴근하다가 로아 얘기가 들린 거고. 뭐 잘못됐어? 아마 하나님도 다 듣고 계셨을 걸?”

전도사님은 우리를 향해 씩 웃어 보이고는 앞서서 걸어가셨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워서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어. 그런데 어째서 로아가 진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셨을까?

마음속의 비명 때문인가? 나도 오늘 영어 시험 때문에 좀 힘들었는데 이 마음을 속으로 외쳐 볼까? 하나님이 들으실지도 모르잖아.

그러다가 문득 내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해서 고개를 휘휘 젓고는 미래빌라 입구로 뛰어갔어.

12월, 21호에서 계속

글 : 장보영
양념치킨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장보영 선생님은 중앙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새침데기 아가씨처럼 지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재롱둥이, 울보, 떼쟁이, 말썽꾸러기 등 30여 가지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예수전도단 예배 팀에서 섬겼고, 지금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며 ‘싱잉앤츠’라는 밴드에서 재미있는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림책 『더 스토리박스 바이블』 시리즈와 『나는야 특별한 오리』 등 다수의 책에 글을 썼고, <예수 내 인생의 횡재> 등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그림 : 박연옥
그린이 박연옥 선생님은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느끼는 밝고 행복한 마음들이 이 책을 읽는 모든 어린이에게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시지요. 대표작으로는 《햄버거가 뚝!》, 《주인공은 나뿐이야》, 《아홉 살 선생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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