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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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의 주일학교 예배시간에 교사가 아이들에게 기도를 시켰다.
“우리 다 같이 하나님께 기도해요.”
아이들이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아이가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곧장 눈을 떴다. 이상하게 여긴 교사가 아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벌써 기도를 끝낸 거니?”
“예!”
“어떻게 기도했기에 이렇게 빨리 끝났어?”
아이가 대답했다.
“하나님, 제 맘 알죠?”
(<경남매일신문> 2012년 10월 16일 게재/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

아이의 기도는 정말, 정말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필자도 때론 저렇게 기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식사 기도의 내용 중 ‘하나님 맘마 땡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간단명료한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전부일까?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사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지적 정보의 전달뿐만 아니라 때로는 뉘앙스나, 감정 등의 전달이 커뮤니케이션 과정 가운데 일어난다.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음악 리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배 현장에서 어떤 일이 기대하는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필자도 때때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의 현장에서 리더로서 충분한 역량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일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에너지로서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또는 명목상으로 예배음악 리더가 요청하는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함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예배음악 리더 자신은 알고 있다. 이 도우심을 구하는 목적이 나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직 하나님과 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인지를 말이다.

예배음악 리더는 반드시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이것은 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존재론적 당위성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음악 리더로 사역을 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극적이고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예배이다.

예배음악을 이끄는 이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없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친밀함 없이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것을 필자를 비롯한 예배음악 리더들이 종종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예배음악 리더)에 대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 평가하실까? 아마 마태복음 23장 27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을 우리 눈앞에 펼쳐 놓으실 것 같다.

  1. 먼저가 먼저 되게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되지만 때때로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계 가운데 있는 것이다.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은 과정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다.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서 힘과 능력을 얻기 위해 거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귀어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다. 그리고 예배는 이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예배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관계의 핵심 영역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는 예배음악 리더들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알려준다.

눅 10장 41절에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찬양곡만 들여다보느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잊어버리진 않았는가?

음악 구성에 온 정신을 쏟고 있어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지는 않았는가?

예배음악 리더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우선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잘해보기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 수 있을까?

1) 호기심 천국이 되라

아이들은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지 묻는다. ‘왜?’, ‘이건 왜 그런 거야?’, ‘왜 안 돼요?’ 등등. 아이들은 부모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 놓는다. 왜냐하면 알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것을 알고, 모르는 것들이 신기해서 알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 잘 모르겠네요’, ‘하나님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지금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하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어라. 이 묻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 잘하는 사람을 따라가라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한 교수가 강의로 워싱턴에 가게 되었다. 되도록 강의 시간 전까지 뉴욕으로 가려고 했으나 볼일이 끝나지 않아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교수는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메리, 아무래도 강의에 늦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강의 내용을 녹음해서 그 테이프를 버스편으로 보낼게. 그리고 마지막 5분이 남더라도 강의실에 얼굴을 내밀도록 할 거야.”

교수는 녹음된 테이프를 학교로 먼저 보내고, 볼일을 끝낸 다음 급히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을 땐 강의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녹음한 강의를 들었을 터이므로 남은 시간에 질문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교수는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는 자신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 강의를 듣는 것 같아 내심 크게 흡족해하며 조심스럽게 강의실 문을 열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테이프 레코더였다.

강의실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학생들이 책상 위에 놓아둔 테이프 레코더만 있을 뿐이었다.

(『탈무드-유머편』, 서종인 편역, (서울:색채인, 2012), 71-72.)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제자는 스승을 닮게 된다. 그래서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빌 3장 17절에 사도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한다. 바울 자신은 자신이 걷은 믿음의 길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걷길 원했다.

우리 주변엔 분명히 나보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그들로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다양하고 훌륭한 방식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만약, 아주 만약에 주변에 내가 따를 만한, 하나님과 친밀함을 잘 유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동안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존재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방법을 글로 남겨놓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면 토마스 아 켐피스가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의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을 것인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스승을 만날 수 있다.

3) 기본기가 기본이다.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른 말로 바꾼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필자는 ‘영성’이란 말이 가장 근접한 표현일 것으로 생각된다. 영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하지만 필자는 영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영성은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의 깊이를 더해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삶 가운데 이루어 가는 것이다’

영성의 기본은 무엇일까? 기도와 말씀이다.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기본기는 바로 기도와 말씀인 것이다. 기본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나면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일에서건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예배음악 리더가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 깊은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본기인 기도와 말씀 가운데 사는 것이다.

글을 나가며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한 인간 내부의 하나님의 존재의 상실은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은 자아를 의존하는 자치권을 갖기를 원하였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은 자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내적 붕괴의 상태에서 에덴을 나오게 된 것이다” (정병관, 『복음혁명을 주도하는 크리스천 커뮤니케이션』(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9), 38.)

단절이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의 불가능을 말한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형상을 상실했음이 된다. 그 원인은 인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자치권에 대한 열망이었고, 결과는 내적 붕괴 상태에서 죄악의 세상 가운데로 쫓겨난 것이다.

하나님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단절 요소는 바로 ‘죄’이다. 이 죄란 녀석을 가만히 두면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단절의 상태, 하나님 형상 상실의 상태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한 죄 씻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배음악 리더들이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죄의 문제인 것이다. 이 죄는 하나님의 친밀함을 깨뜨리는 가장 주요한 적이다.

모든 예배음악 리더들이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을 누리며, 하나님의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찬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고, 찬양하는 이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가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길 바란다.

noname01황규팔
총신대학에서 기독교교육(B.A)와 신학(M.div)을 전공하고, 서울장신대학 예배찬양사역대학원에서 예배기획(M.W.M)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Liberty University에서 예배학 박사(D.W.S) 과정에서 수학 중이다. ‘Power Praise’(CCM. 단장:하정완 목사)에서 보컬로, 에즈37(예배사역자연합)에서 간사로 사역하였다. 에즈37에서는 대전찬양인도자학교 스쿨리더, 찬양인도자학교 코디네이터, 교회음향학교 스쿨리더, 찾아가는 예배찬양학교 스쿨리더 등으로 사역하였고 현재 영동중앙교회(서울논현동소재)에서 예배찬양과 예배기획, 청년을 담당하는 전임목사로 사역하며 교회와 예배 그리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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