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 사역자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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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권위의 측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1:23)

사역자는 위로부터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에 충성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당신은 순종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효력이 없다. 권위는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미신적으로 따라서는 안 된다. 과거에 교회와 성경의 권위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권위가 아니라 강제성을 띤 외적 권위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한다.

외적인 권위를 무시하십시오. 왜 그러한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까?”

그러나 사람이 위로부터 거듭나 영적인 사람이 되면, 그 순간부터 성경은 그의 삶과 마음의 절대 권위가 되어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된다. 그의 양심은 오직 성경의 절대적인 법에 따라서 분별하기 시작한다. 성경이 인용되면 즉각 그의 직감이 말한다.

그렇다. 이것이 분명한 진리이다.”

그는 성경으로부터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한다. 이와 같이 사람이 위로부터 거듭나면 새로운 내적 기준을 가지게 되는데, 이때 이 내적 기준의 유일한 객관적 기준은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복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의 핵심을 다룰 수 있는 용어들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역자들은 진리 및 진리에 관한 용어들을 내팽개치고 있다. 왜 그들은 지금 이 시대의 군중을 향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서지 못하는가? 정통을 따지는 대부분의 사역자들이 가망이 없을 정도로 아무 쓸모가 없어지고, 오히려 비정통의 사역자들이 쓰임받고 있는 처지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흠뻑 젖어서 이 시대에 호소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 오랜 참진리를 분명하게 말하는 사역자들이다.

사회적인 권위의 측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8:36)

기독교는 그 근본에서 사회적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사는 것이다. 그 삶은 믿는 자들이 서로 온전한 친교를 나누는 삶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는 진정한 친교를 나눌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시작하면 세상과 정욕과 사탄은 그에게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세상 눈으로 볼 때 네가 지녀야 하는 덕은 오직 나의 제자라는 사실뿐이다.”

주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15:19)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믿는 자들은 서로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교회의 의미이다. 과거 시대에 가톨릭 교회는 권력을 쥐고 집권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권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으로 여러 종교 단체가 나왔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수많은 종교 단체를 대하게 된다. 거기에 속한 사람들은 형제 사랑을 외친다. ‘만인 형제 사랑’의 정신 위에 문명 시스템이 세워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사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들이 외치는 형제 사랑과 다른 형제 사랑을 외치면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16:2)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기독교는 중생에 의해 하늘로 올려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의 형제 우애를 근거로 한 사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8:36)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기보다 여전히 세상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경향이 많다.

인격성의 측면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17: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회에 대해 가지신 개념은 주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사람들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인격성’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에 의해 인격을 형성하는 의미를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완전한 인격성까지 자라나지 못했고, 오직 하늘로부터 거듭난 후에야 완전한 인격성을 향해 자라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가치는 우리의 인격성의 발전과 성장에 비례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아 거룩하게 된 사건과, 지금 이 땅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순종의 삶을 선택하는 사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믿고 구원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일반적인 관점은 사실 기독교의 걸림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고 있는가? 또한 자신의 모든 정신적, 도덕적, 영적 에너지를 주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의미하시는 사역자의 개념이다.

오스왈드챔버스오스왈드챔버스

십대 시절에 찰스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방탕한 삶에서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그는 에든버러대학에서 예술과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어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평생 신실한 증인으로 헌신했다. 미국, 영국, 일본에서 순회설교자로(1906-10), 잉글랜드의 클라팜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수로서(1911-15), 그리고 이집트에서 YMCA 군목으로(1915-17) 활발하게 사역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솟아난 그의 메시지는 구원의 기쁨과 구령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을 주었다. 주옥같은 메시지를 엮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비롯해 그의 많은 묵상과 설교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영적인 감화를 크게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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