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 예배음악이 만난 사람들 – 김준희 교수(백석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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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 마음이 참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시려 노력하신다는 모습을 느꼈는데요. 교수님의 신앙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나누어주세요.

구지 말하자면 저는 4대째 이어지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오시면 항상 가시기 전, 저를 조용한 방으로 불러서 기도해 주셨고 친정어머니 또한 한결같은 새벽기도의 여인이셔요. 아버님은 10년 전 돌아가셨는데 유품을 정리하다가 말씀묵상 일기장을 보게 되었어요. 요즘 말로 큐티 노트인 셈이지요. 저도 아버님을 따라 큐티 노트를 씁니다. 부모님께서 삶으로 말씀을 가르쳐주셨다면 유치부 선생님으로 부터 성경을 잘 배웠어요. 유치반 선생님이 대학생 언니였는데 그 때 공과공부했던 내용들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섬기는 것이 어린 눈에도 보였어요. 교회에 가는 것이 즐거웠어요. 토요일 밤에는 교회에 갈 때 입을 옷을 가지런히 머리맡에 개켜놓고 잠들고 조그마한 죄를 지어도 무릎 꿇고 울면서 기도했네요. 제가 죄를 지으면 예수님이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고 한 말씀이 생각났거든요. 제가 믿음이 제일 좋았을 때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머리가 커지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라기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나’ 와 ‘실제의 나’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라고 할까요.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성경말씀대로 사는 그래서 주님께 칭찬받는 ‘선하고 훌륭한 나’인데 ‘실제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들었어요.

갈라디아서 2:20을 알게 되면서 ?그런 마음이 더욱 커졌지요. 이 구절이 목에 가시 하나 걸려있는 것처럼 늘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어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예수님을 믿는다하면 그렇게 살아야하는데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라고나 할까요? 나이에 비해 좀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자신을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 누구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늘 마음 한 구석이 외롭고 힘들었어요. 나중에야 그 외로움의 자리가 성령님의 자리임을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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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걸렸던 또 다른 구절은 요한복음 3:16절이었는데 ‘하나님이 왜 나를 그토록 사랑하실까?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면서 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믿기는 하지만 마음에는 잘 와 닿지 않으니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주님께 죄송한 마음도 있었어요. 그냥 그런 채로 얼핏 모범생처럼 중고시절 보내고 대학도 가고 졸업도 하고 ?결혼도 했지요.?그러다가 진우엄마로 불리던 유학생 새댁시절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성령체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나의 사랑하는 딸아
나의 사랑하는 딸아
나의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
내가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
내가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기도하던 중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어요. 그 순간 “아, 하나님의 사랑은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급의 그런 사랑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연인의 그 어떠한 사랑 고백보다 뜨겁고 생생해서 눈물을 쏟으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요즘 제가 자주 연주하는 ‘어느 구경꾼의 회심’이라는 시도 쓰게 되었지요. 말로는 참 표현하기 힘든데 그렇게 온몸이 뜨거워지도록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 하시고는 갈라디아서 2;20 의 고민도 해결해주셨어요.

네가 내 대신 십자가를 지고 ?살아낸다는 것은
네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네가 그렇게 혼자서 노력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네 안을 나의 영으로 가득 채울 때, 그 때 비로소 내가 네 안에서 활동하는 거야
그러면 너는 나의 십자가 뿐 아니라 그 어떤 인생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기도 후 눈을 떴는데 세상이 달라보였어요. 나무도 더 푸르러 보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어찌나 그리도 사랑스럽던지. 찬양에 힘이 생기고 영으로도 기도하게 되었어요. 성경의 모든 구절은 ?저를 위해서 써 놓은 주님의 편지이더군요. 그 때 만난 하나님은 제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크게 이루거나 높아지거나 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셨어요. 다만 제 자신을 원하셨어요. 그러니 저는 제 이름 앞에 무슨 타이틀을 갖지 않아도 되고 아무 것도 되지 않아도 되니 세상 것에는 욕심이 없어지고 기쁨으로 충만했어요. 저는 하나님에게만 딱 붙어 있으면 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하나님 한 분이면 족합니다.” 하던 주님을 향한 저의 첫 마음, 그 고백이 빛바랜 추억이 되지 않도록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더욱 새로워지고 견고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마치 신앙간증집회에 참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교수님을 만나주신 하나님을 그리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진솔한 고백에 잔잔한 감동이 있네요. 교수님께서는 어떤 동기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요? 음악을 공부하신 것과 신앙생활 또는 예배음악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음악가로서의 길은 어머니께서 열어주셨어요.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에 피아노 반주자가 있었는데 반주자의 여러 가지 부족한 점으로 인하여 찬양대 연습이 많이 힘드셨다고 해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내가 딸을 낳으면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더라도 꼭 겸손해야한다고 가르쳐야지 라고 생각하셨었대요. 그리고 어머니는 그 기도를 잊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결혼 후, 뒤늦게 피아노를 배우게 되셨는데 어머니의 피아노 연습소리가 참 아름답게 들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초보자의 피아노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웠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엄마의 피아노 의자에 올라가 이 것 저 것 건반을 눌러보았지요. 그런데 제가 치는 피아노 소리도 ‘어떤 노래’가 되는 거예요. 처음 눌러 본 음이 ‘도레 도레’였는데 아리랑 노래가 되더라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당시 만화영화 중에 발레리나가 나오는 만화영화가 있었는데 그 주제곡으로 아름답고도 슬픈 멜로디가 흘러 나왔어요. 나중에서야 그 노래가 ‘백조의 호수’ 중에 나오는 ‘정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음악을 듣기 위해 ?6시 만화영화 시간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는데 그 노래는 검은 건반을 섞어서 치니까 노래가 되더군요. 그 때의 그 기쁨이란…….이렇게 피아노 장난실력이 점점 늘어가자 어머니가 기특해하시며 제가 일곱 살 되었을 때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시켜주셨어요.

그렇게 일 년 즈음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저 보다 한살위인 원장님 딸이 본인은 나중에 예원학교라는 곳을 갈 거라고 자랑을 해요. 예원학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피아노도 제일 잘 치는 아이들이 시험 봐서 들어가는 곳이라고 하면서요. ?나야말로 공부도 제일 잘 하고 피아노도 제일 잘 치는데 거기를 가야하는 것 아닌가(?)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지요.

그리고는 우리 집에 전화가 나왔어요. 그 때는 전화가 있는 집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전화를 걸고는 싶은데 전화 걸 곳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114에 장난전화를 했어요. 교환언니 목소리가 들리니까 당황이 되어서 저도 모르게 “예원학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해버렸어요. 그랬더니 정말 번호를 알려 주었고 저는 심심할 때마다 예원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봤지요.

학교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전화 거는 재미로 말이죠. 그렇게 가끔씩 예원에 전화 장난을 하다 보니 국어는 몇 문제 나오는지, 산수는 몇 문제 나오는지, 시험은 몇 학년 때 보는 것인지 다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은 전화 받으시는 선생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몇 학년이냐고 묻기에 2학년이라고 하니까 공부와 피아노 열심히 하다가 6학년이 되면 또 전화하라고 하시더군요. 원서 접수기간 놓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예원을 시험 봐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서울예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강사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중매로 만나 결혼해서 함께 유학하게 되었지요. 남편이 공부하던 시러큐스대학에서 피아노석사를 하고 바로 박사를 시작하려고 할 무렵 남편의 공부에 어려움이 생겼어요. 남편이 학교를 옮겨야하는 상황이 생겼고 남편의 공부가 늦어졌지요. 6년 예상했던 미국생활이 15년이 되어버렸어요. 그 당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니 하나님께 감사한 것뿐이네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시간이었으니까요. 풀어쓰면 몇 줄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이력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하려면 이 인터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가끔 생각합니다.

그 때 어머니가 피아노를 배우지 않으셨다면?
그래서 집에 피아노가 없었다면?

원장님의 딸이 자신이 예원학교에 갈 거라고 자랑하지 않았다면 ?
114에 전화를 걸어보지 않았다면?
내가 피아노와 사랑에 빠질 때 최고의 찬사를 보내준 Goodrum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
피아노와 오르간으로 주님을 맘껏 찬양하도록 격려해주신 이연길 목사님(댈러스 빛내리 교회)과
김상복목사님(할렐루야 교회)을 만나지 못했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없었다면?
그리고?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지금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겠지요. 매순간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음악의 기쁨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음악자체가 저의 목적이 되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거기에 머물지 않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을 수단 삼아주시고 저를 훈련시키셔서 오로지 푯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삼아 주심에 감사 찬양 드립니다.

역시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심을 교수님을 통해서도 알게 됩니다. 현재 피아니스트로서, 백석예술대학 교수로서, 교회음악 사역자로서 또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낸 저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여성으로서 결혼 후의 활동과 사역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육아부분도 그렇구요. 자녀가 세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얼핏 제가 매우 부지런한 사람처럼 보이는군요. 현모양처인양 보이기도하고요.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말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의 남편( 현, 전주대학교 나노공학과 교수)을 만났으니 24살이었네요. 낯선 미국에서 신혼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신혼이라고 하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 한 때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해 봤네요(웃음). 예수님 성품을 닮은 훌륭한 사람을 남편으로 달라고 기도했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하나님께 철없이 물었네요. 지금이라면 저도 좀 철이 들어서 남편이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푸나 보다하고 격려하고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 것이 잘 안 되었어요. 남편도 같은 이야기를 해요.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몰랐다고요.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요.

살림하랴, 아기 돌보랴, 밤에는 젖을 먹이느라 충분히 잠도 못자고, 그 와중에 유학생 자녀 피아노 레슨도 했는데. 남편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기가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보고는 하루 종일 집에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 거 에요. 무서운 목소리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요. 피아노는 오랫동안 연습을 안 하면 손이 둔해지는데 연습할 시간도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지요. 나를 눈물 흘리게 하는 눈치도 없는 저 나쁜 사람을 변화시켜달라고요. (웃음) 그런데 기도하다보니 저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남편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 되게 해달라고요. 이렇게 하나님은 저희 부부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셨어요.

김준희 가족사진

 

사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제가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거나 세상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길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어요. 무엇이 되어있는 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원하셨어요. 주님을 온 맘 다해 섬기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저를 원하셨어요. 아기를 주시면 주시는 대로 아기와 함께 기뻐하는지, 주신 남편을 감사하며 잘 섬기는지, 주님께서 주시는 일이 크던지 작던지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 하는지, 하나님은 효율성을 ?따지는 하나님이 아니셨어요. 그래서 구지 조언하라면 세상에서 무엇이 되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야망을 이루느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말이지요.

반대로 어떠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면, 그 일이 비록 남이 보기에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 일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요. 저 역시 지금의 활동적인 모습이 무엇이 되려고 애 쓴 결과물이 아닙니다. 아이욕심이 있어서 세 명의 아이를 주십사 구한 적도 없고요, 교수가 되게 해달라거나, 큰 교회의 반주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혹은 ,책을 쓰고 싶다고 구해본 적도 없어요. 다만 제가 하나님보다 앞서서 행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사 기도해요. 그러나 천성이 편안하고 안이한 것을 좋아하니 제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좀 강제성을 띄워주시기를 기도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하게 된 일들이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한 아이를 양육하며 그 어린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사역이나, 사회에서 수만 명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한 여성의 사역이나 그러한 것들을 줄 세워서 등수 매기시는 분이 아니시잖아요.?이 세상엔 수많은 주님의 지체가 있으니 각자 다 사명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자리에서 깨어있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느냐 어디에 있느냐보다 현재 주어진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이 부르신 곳으로 여기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물론 지혜롭게 주신 은사에 대해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고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저희 예배음악 독자 분들은 여러 모습으로 예배음악사역에 헌신하고 봉사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이 분들을 위해 교수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교회반주, 지휘, 혹은 찬양팀에 속해있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드리는 조언이라 이해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먼저, 이 사역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까 그 것을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과연 주님도 기뻐하시고 나도 기뻐하는 사역인지, 나만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하나님은 기뻐하시는데 내가 그 사역이 싫어서 피할 궁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은 관심 없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 착각하고 쓸 데 없는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훈련의 과정도 예배임을 기억하며 지속적으로 훈련하되 좌절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훈련 또 훈련하세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최선을 드리려고 노력하세요.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시고요. 혹시 교육과정에 있어 지난 과거에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지나간 것은 돌아보지 말고 현재 그 순간부터 다시 앞을 향해서 나아가시면 좋겠어요.

세 번째로는 영성과 실력을 갖춘 최적의 스승,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선배 동료 후배들을 만나기를 위해 힘쓰고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믿으며 ?기뻐하며 또 기뻐하고! 감사하며 또 감사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 한 지체임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로 하는 것은 이토록 쉽군요. 저야말로 꼭 기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자 분들에게 귀감이 되고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질문이 끝자락으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최근 예배음악에 대해서 여러 방향에서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 예배음악의 현실을 어떻게 보시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한국 예배음악의 현실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음악은 또 다른 하나의 언어이지요. 자신의 모국어가 있듯이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이 있겠지요.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로 예배를 드릴 때 주님께 예배드리기가 수월한 것처럼, 예배음악도 그러한 면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취향의 문제, 익숙함의 문제라고만 보기에는 분명 ?위험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영적으로 민감하게 대처해야할 사안입니다. 기회가 되면 ?<예배음악매거진>에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예배 음악인들과 목사님들을 모시고 깊이 있게 다루면 좋겠어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었으면 좋겠구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예배음악의 사역가운데 하나님만이 주인공이신가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만약 예배음악 사역자 자신이 그 사역 안에, 주님이 안 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냥 늘 하는 일상적인 하나의 일이 되어 버린다면…하나님은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는 생각이 스치네요. ?전도의 길도 막힐 테지요. 하나님의 진노를 살 테지요. 은혜는 없고 은사만 남아 공허한 메아리가 되겠지요. 이 역시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질문인데요, 최근 교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이나 근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제가 계획을 짜서 사는 사람이 아니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냥 주님 주신 하루를 충실하게 살고나면 또 그 다음 계획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지나고 보니 제가 아무리 머리를 잘 써서 제 인생을 잘 계획했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은 제 인생의 시간표를 정말 잘 짜 주셨어요. 저의 달란트를 갈고 닦는 시간이 있었고요. 주님과의 골방 타임도 참 좋았어요. 광야에서의 시간도 제가 꼭 거쳐야할 시간이었고요. 세밀하게는, 아이를 키울 때는 사회활동을 줄여주셨고, 육체적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때에는 쉼도 주셨어요. 삶의 우선순위, 밸런스를 잃지 않도록 모든 여건을 최적화해 주셨어요.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니거든~”이라고 말씀하시면 또 따라야지요. (웃음) 아이들이 장성해가면서 오롯이 저만을 위한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 예전에 비해 색다른 경험도 많이 하게 하시고 사역의 지경도 넓혀 주시는 것 같아요. 당장의 색다른 경험이라면 음반을 출시하는 일인데 그동안 악보집이 여러 권 나온 반면 음반은 시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동안 여기저기에 썼던 음악관련글, 신앙관련글들도 묶어보고 싶어요. 학교에서 맡겨주신 일 외에도 외부 초청연주, 강연 등이 많아져서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깨어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리적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제가 꼭 해야 할 일과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별해야 하니까요. 하나님 뵈올 때 주님께서 저를 기뻐해주시지 않고 제가 한 일을 인정해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허무한 인생은 없을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시는 중에 주시는 마음으로 조금씩 나아가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참 귀하다고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과 가르침으로 많은 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시는 연주자이자 교수님으로 살아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려요. 귀한 사역가운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늘 함께하시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예배음악(수정)13-1김준희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음대 졸업 후 도미하여 시러큐스 대학원에서 피아노 석사를, 피바디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오르간, 하프시코드로 석사 후 과정을 수료하였다. 2000년에 귀국하여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교회음악 실기과정)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온누리교회와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피아니스트와 오르가니스트로 사역하였다. 현재 백석 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반주자를 위한 찬송가 즉흥연주곡집 1,2, 3 』, 『생생 피아노 반주법 -대화로 배우는 교회음악반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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