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 찬송가 가사를 통해 묵상하는 성경말씀 – 2.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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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01장과 예수님의 말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찬송가 305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원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찬송가 310장>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익숙한 이 두 찬양 속 가사에 담긴 신앙고백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다. 스스로 계신 분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 스스로 계신 분이시기에 가능한 은혜! 스스로 계신 분 때문에 받게 되는 은혜! 이 두 찬양은 그 벅찬 주권적 은혜를 노래하고 있다.

찬양의 가사내용은 정말 진리다! 정말 우리는 모른다! 왜 하나님께서 이 쓸데없는 자를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구원해 주시는지 정말 모른다. 그런데 그 놀라운 사랑을 받고 나니 그 은혜 받은 사람의 영혼 속에 믿어진 것이 있다.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저 천국까지, 끝까지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한다는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사랑해 주시는지 도무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우리 영혼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할까? 그것은 오로지 스스로 계신 주권자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지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가능한 대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뭐가 부족하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이 대답엔 답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모른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대답 외에는 찾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이유 외에는 아무 원인도 찾을 수 없다. 그 구원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에게 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특별한 일이나 업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 결과가 바로 은혜 받은 사람인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방적인 주권적 은혜를 받고 그 은혜 가운데서 그 은혜를 누리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그저 그 은혜 때문에 생긴 벅찬 감격과 놀라운 환희와 평생의 감사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찬양사역자들은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하심과 은혜 속의 인도하심 없이는 감히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 없고 믿고 받아들이며 인정할 수도 없다. 그것은 죄악된 우리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게 된 사람을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이요 큰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 부르는 결정적 이유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4)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65)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실수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우리 인간의 의지로 “결정(determine)”해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성경을 통해 스스로 증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자연적으로 “인정(admit)”하며 믿고, 받아들이고, 수긍하여, 자신 있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우리 인간의 객관적인 동의 과정을 거쳐 민주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우리 인간의 결정이나 동의와는 전혀 상관없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로 우리 영혼 속에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주권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부터 홀로 지존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리가 그분의 주권적 은혜를 통해 저절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우리 육신의 부모도 우리가 스스로 결정 못하는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우리의 창조자 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피조물이 어떻게 감히 결정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두 <찬송가>에 담긴 가사내용은 이러한 주권적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벅찬 신앙고백이다. 따라서 성숙한 신앙생활의 기준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향한 우리 사역자들의 신앙고백이다.

증명사진 김철웅-수정김철웅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Th.M)에서 공부했고, 미국 McCormick 신학교(M.A.T.S) 졸업 후, 미국 루터교단(LCMS) Concordia 신학교에서 음악선교학(Ph.D)을 전공했다. 현재는 서울 영락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며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 외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추적!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추적! 찬양도 설교인가?』, 『추적! 음악선교는 가능한가』 『추적! 유니아는 여자 사도인가?(신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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