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 천상의 예배자가 되십시오! – 곽호경 목사(나사렛교회)

0
1058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최고의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요?

그것은 아마 우리가 이 세상을 끝내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드릴 천상의 예배라 생각됩니다. 이 땅의 모든 삶의 모습들은 하늘나라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영화의 예고편과 같은 삶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요, 우리가 아침에 잠을 깨고 일어는 것은 부활의 연습입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천국에 입성하는 예행연습이 될 것입니다. 주의 날에 교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언젠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가 올 것에 대한 예고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예배는 바로 그날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밧모섬에 유배된 가운데 하늘나라의 환상, 즉 천상의 예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땅의 계속되는 환란 가운데 하나님께서 천상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초점이 무엇이어야 되겠습니까? 결국 성도에게 예배는 최후의 문제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예배하는 삶, 그 삶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요, 그것을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신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주님의 모습이 아니라 역사 끝에, 하늘나라에 가게 될 때 만나게 될 주님 본래의 모습입니다. 그 광채 나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의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찬란한 영광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너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는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층 천에 올라간 경험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도 온 유럽을 뛰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영적인 권세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졌던 이유는 자신의 마지막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즉 삼층 천의 천국을 보고 왔기 때문에 바울에게는 이 땅의 고난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땅 위 삶이 늘 흐리멍덩하고 불분명한 것은 저 위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저위가 분명하면 이 땅의 삶은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마지막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땅의 어려움을 넉넉히 이결 나갈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천상의 주님께서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신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위가 분명하면 아래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천상의 예배를 보여주신 이유는 너희가 마지막에 이렇게 예배할 날이 올 것이므로 날마다 승리하며 예배를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천상의 예배는 어떤 예배였을까요?

첫 번째, 하나님 보좌가 중심이 되는 예배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천국의 모습을 그림처럼 묘사해 봅시다. 첫째, 하나님의 보좌가 중앙에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의 모습이 벽옥, 홍보석, 녹보석 같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 아론의 에봇의 흉패에 달려있는 열두 보석처럼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와 사랑을 나타냅니다. 둘째, 찬란한 무지개가 보좌에 둘려있습니다. 셋째, 흰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쓴 이십사 장로들의 보좌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있습니다. 흰 옷은 예수님의 보혈로 회개하여 거룩해진 것, 면류관은 성화의 결과로 얻게 된 영광을 상징합니다. 넷째, 보좌 앞에는 네 생물이 있는데, 다니엘 7장, 에스겔 1, 2장의 병행구절입니다.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모습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합니다. 이 영물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섬기는 그룹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자의 모습은 짐승의 왕자로서 용기와 권위를 상징합니다. 송아지의 모습은 가축의 왕자로서 힘을 상징합니다. 사람의 얼굴은 만물의 영장으로 피조물 가운데 가장 영특한 존재를 나타냅니다. 독수리는 조류의 왕자로서 신속하게 행동함을 상징합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신속하게 섬기는 천상의 영적 존재들입니다. 다섯째, 천군과 천사들이 위치합니다.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계 5:11)고 했습니다. 셀 수 없는 천군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를 옹위하며 찬양과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아직 휴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천상예배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보좌’라는 단어입니다. 계시록에 46번 나오고, 본문 4장에만 14번 나옵니다. 보좌는 우주 만물의 통치의 중심을 말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좌는 온 우주의 중심, 만물의 초점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의 궁극적인 중심은 하나님의 보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드려도 보좌에 초점이 되지 않으면 헛된 것입니다. 예배당의 무대는 강단이 아닙니다. 성가대석도 아닙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대입니다. 예배를 보시는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제국을 호령하던 황제의 보좌를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거절화면 엄청난 박해를 당했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영원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천상의 환상을 보여주시므로 이 세상은 로마 황제가 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오늘 나의 삶도 주관하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큰 사건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것 같은 나까지도 섭리하고 계시는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거룩한 예배입니다.
8절,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자라 하고”

우리가 거룩해져야 할 이유는 거룩한 장소에 나가기 위해서요,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더럽고 추한 삶을 포기하지 못한 채 우리가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코드를 맞추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생 라합이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까? 정탐꾼을 도와준 대가로 구원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유다 방백 살몬과 결혼하여 룻기서에 나오는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다윗의 고조모가 되었고 메시아의 족보에 오른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기생 라합이 여리고 성에서 구원 받은 후에도 계속 기생 노릇을 했을까요? 그랬다면 어떻게 다윗의 고조모가 되며, 메시아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정말 거룩한 성도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인격과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면류관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10절에 보면,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하며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렸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누구입니까? 구약의 열두 족장, 신약의 열두 제자를 합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님의 보혈로 거룩하게 되어 하늘에 오른 신실한 성도들 중에 가장 하나님과 가까이 지냈던 영적인 지도자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약속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 앞에 엎드렸습니다. ‘엎드려’는 헬라어 ‘핍토’로, ‘없어진다’, ‘죽는다’는 뜻입니다. 예배의 가장 겸손한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옥으로 떨어질 존재들인데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게 되었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서 고개들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면류관을 드렸습니다. 자신들이 받은 영광을 오로지 주님께만 돌려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최상의 가치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최상의 가치를 주님께 드림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란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받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로 최고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상의 예배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세상과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 보좌가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마음과 삶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한없이 낮추는 겸손과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길 바랍니다.

곽호경

곽호경
나사렛신학대학교, 서울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시카고 나사렛교회 담임목사, 시카고 교회 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2014년 8월 귀국하여 나사렛교회에 부임. 복음으로 세상과 소통하길 원하는 교회를 외치며 목회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장인숙 사모 외 2남이 있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