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블랜디드 워십(Blended Worship)의 학문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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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랜디드 워십은 신학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물줄기의 합류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다. 첫 번째 물줄기는 20세기에 이루어진 예전갱신운동이다.1 예전갱신운동은 예전과 전통을 중시하고 성찬을 회복시키는 등의 공헌을 했다. 더 나아가 공동체성의 회복이라던가 자국어 사용 등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역할이 크다. 초대교회예전의 회복을 통해 보편적교회가 보유해야할 기준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그 신학적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순환은 예전회복운동이 많은 교회들에게 도전과 자극이 된 것은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문화적 현실에 맞는 다양한 예전들의 등장이 현대에 있어서 오히려 두드러진다고 평가한다.2

여기서 두 번째 물줄기인 소위 카리스마적 갱신운동(charismatic renewal movement)의 등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미국의 호프채플, 갈보리 채플, 빈야드 등으로 대변되는 뉴패러다임 교회운동이 태동했고 1980년대를 넘어 새들백과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들이 등장한다. 열린예배 혹은 구도자예배(seeker service)는 기독교의 영향이 점차 감소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감성적이며 문화적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거부감 없이 예배에 접근하여 기독교의 메시지와 문화를 접하고, 시청각적 자료를 활용하며, 어두웠던 분위기를 탈피하여 축제로서의 예배를 회복했다. 웨버는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을 역사적 예배(historical worship)과 현대적 예배(contemporary worship)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고, 토마스 롱(Thomas Long)은 이러한 두 물줄기사이의 갈등을 히폴리투스와 윌로우 크릭사이의 “예배 전쟁”이라고 원색적인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즉 전통의 회복에 있어서 하나의 전형으로 인식하는 로마 감독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주후 215년)과 윌로우 크릭을 대비시켜 설명한 것이다. 수많은 예배학자들은 각자의 전통에 따라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둘 사이의 화해와 배려를 자기 나름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평가한다. 블랜디드 워십은 바로 그러한 신학적 예전적 다양성 속에서 조화와 공존을 위한 하나의 소중한 이정표로 제시된 것이다.

블랜디드 워십의 신학적 정의와 의미

블랜디드 워십은 많은 예배학자들 뿐 만 아니라 일선 목회자들, 예배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예배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공하고 그들을 이전 보다 폭넓은 대화의 장으로 초대하였다. 소위 예전과 상징, 그리고 예술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교회는 블랜디드 워십의 영향으로 보다 비형식적이며 개방적인 자세로 성도들의 참여를 독려하게 되었고, 현대적이며 비예전적교회들은 교회의 역사와 전통의 가치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물론 모든 교회들이 블랜디드 워십이 주장하는 긍정적인 공존의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예배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전통에 다른 요소들이 섞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그 이유일 것이다. 블랜디드 워십은 단순한 “섞음”으로 합체나 변종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블랜디드 워십의 정의를 인용해본다.

블랜디드 워십은 역사적, 전통적, 현대적, 그리고 세계적인 예배의 표현들을 융합하고 지역적, 세대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성도들에게 연합된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고 격려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찬양의 모자이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3

위의 정의에 의하면 블랜디드 워십은 역사, 전통, 문화, 지역을 아우르는 통섭적 예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예배의 원형을 찾는 일종의 복고주의나 과거에 대한 신학적인 연구와 검증만으로 바람직한 예배를 성취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4 구도자 중심의 예배 역시 보편적 적용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예배공동체 마다 그들 나름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융합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신학적, 예전적 기준이 필요하다. 쉬메만(Schmemann)이나 맥스웰 존슨(Maxwell Johnson)과 같은 신학자들은 정형화된 예배의 형식과 전통에 내재된 오르도(ordo, 규범)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나 제임스 화이트(James F. White)는 예배의 항구성과 다양성을 문화적 상황의 측면에서 바라보았다.5 그에게 있어서 과거의 예전적 전통은 존중해야할 역사임과 동시에 극복해야할 과제다. 이렇듯 수많은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결국 블랜디드 워십의 절대적인, 유일무이한 신학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역사적 전통과 그 결과물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세계교회협의회 신앙과 직제 위원회가 1982년 리마에서 발표한 『세례, 성찬, 사역』(리마문서)과 같은 에큐메니컬 문서가 한 예가 될 것이다. 예전의 공통분모를 찾고 그 안에 담겨있는 깊은 신학적 의미들과 예전의 본질적 요소들을 음미하는 것은 성숙한 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한재동은 성경, 세례, 성찬감사, 중보기도, 그리고 종말적 모임(교제)를 예배의 본질적 요소로 제시한다. 6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본질적 요소”라는 신학적 개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예배의 순서”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세례”라는 “본질적 요소”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거행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예배 순서로서의 세례는 그 형식에 있어서 얼마든지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블랜디드 워십의 신학적 전제가 담긴다. 블랜디드 워십은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순서”와 오늘 발견되는 “순서”를 그릇에 담아 뒤섞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질적 요소”에 담긴 신앙의 고백을 공유하되 그 형식에 있어서 개방성을 갖는 것이다. 즉 블랜디드 워십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목표를 갖고 문화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만들어가는 속성을 지닌다. 앞서 인용한 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불변의 원칙을 따라 각각의 조각들이 제 모습을 잃지 않는 모자이크를 만들어내는 일이 바로 블랜디드 워십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구지 가장 가까운 신학적 개념을 찾는다면 블랜디드 워십은 창의적 재해석(creative reinterpretation), 본질을 추구하는 상황화(contexualization), 나아가 성육신화된 예전(Incarnated liturgy)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랜디드 워십의 예전적 기준과 적용

앞서 제기한 예배의 본질적 요소에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도구적 형식(instrumental forms)이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예배의 사중구조의 공유이다. 사중구조의 경우 하나님 앞으로 나옴(예배에의 부름)-말씀-감사(봉헌과 성만찬 등)-파송이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를 예배 안에 담아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역(은혜)와 인간의 사역(응답)이라는 기본적인 예배정의의 회복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사가 분명하게 다루어져야한다. 세 번째 형식에 있어서의 다양한 활용이다. 이 다양성은 나이, 문화, 지역, 언어 등 여러 가지 변수를 갖는다. 네 번째, 오감을 사용하도록 하는 배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예배에서의 예술과 상징의 회복이다. 웨버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예배안에서 구원 이야기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포함하는 일종의 대본 혹은 구조(Plot)를 가지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학적 조언들은 자칫 블랜디드 워십이 야기하는 어색한 동거, 혹은 신학적 토대와 역사적 형식이 결여된 예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제시된 일종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옛것이 소중하다 하여 무조건적인 복고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타당치 않다. 몇몇 예배서들에서 그렇게 낭만적인 복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향을 발견한다. 단순한 혼합에 치중하는 경향도 목격한다. 가장 비근한 예가 성가대와 찬양팀, 고전악기와 현대악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공존과 조화의 시도는 블랜디드 워십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며 모범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길게 그리고 더 넓게 보아야한다. 예배의 유구한 역사를 보아야하고 치열했던 신학적 논쟁들을 보아야한다. 역사자체나 형식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형식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의 흔적과 신앙의 선조들의 고백을 예배에 담아야한다.

블랜디드 워십은 단순한 혼합이 아니고 통전적인 전통과 시대적 상황의 대화와 병치(juxtaposition)의 복합적인 결과물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블랜디드 워십은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존재하는 색다른 형식들에 대한 배려라는 신학적 기반을 갖는다. 다양성에 대한 세대와 교단사이의 장벽을 뛰어넘는 화해와 존중의 정신이야말로 블랜디드 워십의 목표로서 타당하다. 각자의 선호하는 방식이나 요소보다 하나님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개방성이야말로 블랜디드 워십이 갖추어야할 신학적 미덕이다.?

나가는 말

블랜디드 워십은 거의 예전을 절대시하는 환원주의나 새로운 것에 대한 맹목적 추구가 아닌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개혁(reformation, 원래의 정신과 모습을 회복한다는 의미)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요소들의 무조건적 혼합이 아닌 역사와 전통을 통해 발견하는 본질적 요소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하고 검토하면서 그 신학적 토대위에 아름다운 공존의 모자이크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블랜디드 워십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on-going process)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는 예배다. 모든 신학적 작업들이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되어온 것처럼.


 

  1.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 1933-2007)의 학문적 공헌이 지대하다. 그의 저서가 여전히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Robert E. Webber, Blended Worship: Achieving Substance and Relevance in Worship (Hendrickson Publishers. 1996).
  2. 김순환, 『예배학 총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7. 이머징 예배, 유기적 예배 등의 등장도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이다.
  3. http://www.calvin.edu/cicw/microsites/worshipsymposiumorg/2008/man_a.pdf
  4. 한재동, ““예배갱신”의 내포적 의미와 그 실현범위,” 「신학과 실천」18 (2009), 18-19. 한재동은 기독교예전의 전통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5. 박종환, 『예배미학』 (서울: 동연, 2014)
  6. 같은 글, 50-54. 필자는 여기에 예배공동체의 문화도 고려대상에 넣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안덕원안덕원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으며 미국의 드루(Drew)대학교에서 석사(M.Div,1997)를 마치고 같은 학교에서 기독교 예전을 전공하여 박사(Ph.D,2004)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드루대학교에서 풀타임 교수로 4년 동안 예배와 설교를 가르쳤으며 뉴욕 한빛교회와 서 울 한우리교회에서 영어예배 담당목사로, 뉴저지 시온성교회의 담임목사 로 사역하였으며 2012년부터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대학교에서 실천신 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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