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예배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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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예배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예물이 아닌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전적 예배의 의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예배의 대상에게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배도 이 사전적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예배에 대한 커다란 오해가 오랫동안 우리에게 있어 왔다. 그것은 ‘은혜 받기 위한 것, 혹은 복 받기 위한 것’이란 것이다. 우리는 예배의 주체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시는 예배의 중심이시다. 예배에서 우리가 받는 것은 예배자인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대한 응답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예배의 주체는 예배자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며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예배의 중심이시며 주인공이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고, 보존자이시기 때문이다.

예배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나의 행위로써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나’를 구원해 주셔서 영생을 허락하셨고, 또한 이 땅을 불로 심판하실 때까지 보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배는 이미 받은 이 엄청난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내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감사의 찬양인 것이다. 이 예배에는 무언가를 더 달라고 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이것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시며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이다.

가장 이상적인 예배는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들만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이다. 그런데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이런 예배는 흔치 않았다. 일반적인 예배의 자리에는 온전한 자녀가 아닌 사람들도 늘 섞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구도자(seeker)로서 복음에 대해 배우고자 참여한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예배를 구경하러 혹은 보러 온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구도자나 예배를 구경하러 온 이들이 예배자는 아닌 것이다. 문제는 예배를 계획할 때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중심으로 계획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배자인 사람 중심으로 심지어는 예배자가 아닌 예배를 드리는 장소에 나와 있는 예배드릴 자격이 없는 이들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 벌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성장학과 예배학이 비정상적으로 결합된 때문이다. 교회는 초대교회나 지금이나 그 사명과 활동이 똑같은데, 첫째는 예배하는 것이요 (leiturgia), 둘째는 말씀선포요 (kerygma), 셋째는 교제요 (koinonia), 넷째는 영적 성장을 위한 양육이다 (education). 물론 예배에서도 말씀이 주어진다. 그렇지만 예배에서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 응답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8:19-20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명령(the last commandment)’을 주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삶은 교회의 네 가지 사명/활동의 연속이며 또한 이를 통한 영적 성장이며 복음전파이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고 또 선포하고 교제하고 양육하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그런데 매일의 삶 속에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하는 소위 성도라고 불리는 이들이 한 주에 한번의 공 예배에서만이라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예배에 말씀의 비중이 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코 말씀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예배’라고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service’라는 영어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섬긴다, 봉사한다’라는 뜻으로서 실제로는 그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Worship Service’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의 ‘예배’의 의미를 가지며, ‘Seeker Service’에서는 구도자(seeker)를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Seeker Service’는 사실은 ‘구도자’를 섬겨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집회’이지 ‘구조자 예배’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구도자 예배’ 혹은 ‘열린 예배’로 번역되어 사용되면서 예배의 개념에 큰 혼란을 야기된 것이다. 예배자가 아닌 이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교단들이 또 모든 교회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개혁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참뜻은 사람의 유전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늘 개혁해 나가고 있다라는 말이다. 개인이건 교회건 교단이건 막론하고 우리는 진정한 개혁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장우박장우 총신대학교에서 지휘전공,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 대학원 목회음악 석사(M.Div.in C.M) 지휘전공으로 수학하고 도미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음악석사(M.M.)와 음악사/지휘를 복수전공하고 University of Northern Colorado에서 음악 역사와 문헌 (Primaryt emphasis), 오케스트라 지휘 (Secondary emphasis)으로 박사과정을 수학하고 최근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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