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예배음악이 만난 사람들 ? 정유성 목사(베델한인교회, 프뉴마워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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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정유성목사님이 미국에 계신 관계로 온라인으로 진행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예배음악: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배음악이 시작되고 기획될 때부터 함께해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최근 목사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올 하반기 교회에서의 계획, 개인적 계획 등 어떤 부분이 준비되고 있으신지요.

정유성 목사: 지난 상반기에 몸무게를 많이 줄였습니다.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멀리하고,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운동을 하면서 굳이 필요 없는 부분들을 내어 보내면서 즐겁게 건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가을이 되면 지금 섬기는 베델한인교회에서 11년 사역을 채우게 됩니다. 한 교회에서 전임목회자로 10년 이상은 사역해 보고 싶다는 신학교 시절의 바람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셈입니다. 이제는 담임 목회를 통해서 더 집중력 있는 목회와 예배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중입니다.

정유성(베델한인교회)(베델한인교회에서의 사역모습)

예배음악: 한 교회에서 11년이나 사역하실 수 있었다는 부분이 참 특별하다고 느껴집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통해서 더 자세히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언제 처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셨으며 어떤 동기로 신학을 공부하시게 되셨는지, 특별히 예배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 그리고 미국에서의 사역을 결심 또는 시작하신 동기와 시점들이 궁금합니다.

정유성 목사: 주님을 영접했던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1학년 초에 경험했던 한 장면을 통해서, 제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했던 것이 사역자의 길로 부르신 첫 걸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친구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던 광인(狂人)이 저를 보면서 “이! 예수쟁이야!” 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교회를 다니지 않던 친구가 깜짝 놀라면서 저 미친 여자와 아는 사이인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했고, 친구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앞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입술로는 많이 고백했었지만, 믿지 않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한 광인의 입술을 통해 새겨주신 그 장면은, 일생 지워지지 않는 제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진한 ‘조우(遭遇)’가 되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께 제 일생을 온전히 바치기로 학창시절에 헌신했는데 어떤 길들이 있는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는 학교가 신학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신학교에 들어가서 내게 허락하신 소명과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 말씀을 전해야겠다’ 는 신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리던 그림은 제게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메시지를 나누고, 그 메시지에 곡조도 붙여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예배 사역은 받은 은사에 따라 순종하며 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된 마스터 키(Master Key)였습니다. 대학원에서도 예배학으로 Th.M을 전공했고, 이론과 현장, 선교단체와 지역교회의 찬양과 예배를 균형 있게 하는 부분에 늘 관심을 가졌었고 물론 지금까지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994년에 전역을 하면서, 당시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게 되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인 예배사역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혀 다른 차원과 틀의 예배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모임을 통해서 ‘부흥 한국’ 사역의 시작점에 함께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에는 2002년에 왔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부흥한국의 북미주 투어를 통해서 미국에는 여러 차례 방문했었습니다. 광림교회를 사임하고 새로운 사역지를 찾던 즈음에, 남가주 사랑의교회와 연결이 되었고 아내와의 대화와 기도, 그리고 2주간의 인터뷰 여행을 통해서 교단과 신학교 배경을 완전히 매듭지으면서 전혀 다른 곳, 다른 교단, 다른 학연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한국교회는 교단과 출신 신학교가 아닌 은사에 따른 전문성을 통한 사역의 시대가 온다”는 확신 하나로 모든 고리를 묶고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초교파 미국교단에서 안수를 받고 지금까지 ‘교단과 신학교’를 넘어선 ‘비전과 전문성’을 향한 그리 쉽지만은 않은 여정을 걷는 중입니다.

예배음악: 교단과 신학교를 넘어선 비전과 전문성을 향한 여정을 달려오셨기에 지금의 목사님과 프뉴마 워십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프뉴마 워십과 유다지파를 만들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앞으로의 비전을 나누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유성(유다지파)(광림교회에서의 유다지파 사역모습)

정유성 목사: 유다지파와 프뉴마 워십은 둘 다 제가 만든 사역단체이지만 성격과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광림교회에서 청년과 찬양사역을 시작할 때 ‘광림 찬양선교단’이라는 이름의 찬양팀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이름을 가진 지역교회 찬양팀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로고를 공모하고, 교회에 적극 건의를 드려서 사례비를 받는 전문 찬양사역자 그룹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찬양팀 안에 따로 별도의 기획팀을 만들었는데, 그 팀은 ‘어떻게 하면 유다지파라는 상품(?)을 잘 팔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차원이었고 이윤을 남기는 상품판매가 아닌 ‘복음과 찬양사역의 가장 효과적인 보급과 나눔’을 위한 전략팀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처음에 부임했을 때는 15명 남짓하던 찬양팀이 댄스팀과 청소년 유다지파 사역까지 합쳐서 거의 60~7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회심’이라는 워십 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당시 지역교회 단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은혜도 경험했던 기억이 납니다. 목적은 한 가지 ‘나눔’ 이었습니다. 감리교단 안에서는 대표성과 상징성을 지녔던 교회였기 때문에, 그 교회가 가진 인력과 후원으로 수백 개의 지방교회와 군인교회에 무료로 찬양CD와 악보를 제공하는 ‘나눔’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유다지파 사역을 통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은 정확히 10년 뒤 이곳 남가주에서 다른 모양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바로 프뉴마 워십입니다. 2009년도에 지금 섬기고 있는 베델한인교회가 성전을 건축했는데 당시에는 드물게 디지털 영상과 음향, 조명과 무대가 잘 준비된 성전이었습니다. 그 성전 건축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쭉 지켜보다가 제 안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좋은 예배의 장소와 도구가 베델교회 성도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가 없다. 지역교회와 성도들에게 함께 나누어지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프뉴마 워십을 기획했고, 당시 담임목사님께는 ‘임시 허가증’을 주셨습니다. 한 번 해 보고 반응이나 결과가 충분치 못하면 그만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미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화요찬양을 1년 반 동안 매주 인도하면서 이민교회의 주중 정기찬양예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프뉴마 워십은 기획 단계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동시에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역교회의 특성상 대형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사역에 중소형 교회들의 성도들이 참석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프뉴마 워십의 주체를 베델한인교회가 아니라 ‘프뉴마 워십’으로 하고 교회는 장소만 빌려주는 컨셉으로 홍보를 했습니다.

정유성(프뉴마워십)
(프뉴마워십 예배 후 단체사진)

기본적으로는 한달에 1번 집회를 하는 것으로 하고, 집회가 끝난 시간동안에는 동영상과 음향소스를 다듬어서 유튜브(Youtube)에 올리고 무료 CD를 만들어서 홍보하기도 하고 전도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 포인트가 적중했습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를 시즌 1로 해서, 총 15번의 집회를 가졌습니다. 매번 집회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추가 녹음 없이 실황소스만을 다듬어서 만든 CD와 DVD는 집회 때 들어온 헌금 안에서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무료로 발송을 했습니다. 그렇게 무료발송으로 한국과 유럽, 호주와 아프리카, 북미주에 보낸 CD와 DVD가 수천 장에 이르고, 유튜브에 올라간 60 여곡의 찬양 영상은, 2015년 7월 현재까지 약 8000명의 구독자와 5백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유다지파 때부터 그려지고 있는 ‘나눔 사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해 드렸듯이 내년부터 담임목회지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목회사역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그 교회와 다른 지역교회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프뉴마 워십 시즌 2’가 시작되기를 기도하며 소망하고 있습니다.

예배음악: 말씀하신 ‘잘 팔고 나누기 위한 전략’ 현재에도 없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분들이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예배음악사역의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진단하고 계시는지요?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하며 또 장점을 어떻게 살려갈 수 있을까요?

정유성 목사: 제가 ‘진단’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경험한 사역의 경험의 범위 안에서 몇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예배음악 사역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수용 속도가 빠르고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비단 예배음악이라는 틀 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국민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의 예배음악사역이 한국‘인’의 예배음악사역이기 때문에 수용 속도와 민감도가 높다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행이 스타일이 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과 호주, 영국의 유명한 사역자들과 그들의 찬양곡, 예배 스타일이 한국에 빠르게 수용되고 분별과 분류의 철저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분별하게 도입되는 부분을 많이 우려하는 편입니다.

카피는 아무리 똑같이 해도 100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한국에서 사역하시는 한 담임목사님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예배와 찬양에 대해서 뒤쳐진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열리는 유명한 사역단체의 찬양인도자 세미나에 본 교회 청년을 파견했다는 것입니다. 다녀온 이후에 멘트도 세련돼지고, 찬양팀의 음악도 뭔가 더 고급스러워진 것 같기는 한데, 오히려 그 교회 성도님들과의 거리는 훨씬 더 멀어지고 더 ‘공연’ 같아졌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고 교회 전반에 걸친 인식변화와 성장이 필요하겠지만, ‘브랜드 화(化)’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예배음악사역은 ‘브랜드 화(化)’에 대한 지역교회와 사역단체들의 철저한 고민과 연구, 그리고 실천을 통한 결과물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은, 그러나 ‘다름을 위한 다름’이 아니라 현장과 상황에 완벽하게 조화되고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그런 ‘브랜드 화(化)’가 예배음악 사역을 이끌어 가는 리더들과 특히 지역교회 담임목회자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배음악: 상황과 현장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예배음악매거진도 그것을 위해 다방면으로 기획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역의 선배 입장으로서 예배음악을 공부하고 사역을 준비하는 학생, 사역자들에게 준비해야할 부분에 대한 말씀과 사역에 대한 권면을 부탁드립니다.

정유성 목사: 사역이라는 말 안에는 내 일이 아닌, 하라고 하신 일을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제가 늘 입버릇처럼 후배 사역자들이나 예배 강의를 할 때 하는 ‘어린 나귀의 예화’처럼, 자신들이 받는 박수와 칭찬, 격려와 환호는 100% 내 등 위에 타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그저 말수를 줄이거나, 늘 부족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그런 수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겸손은 적극적으로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 있는지를 인정하는 작업이고, 주도적으로 내게 주어진 그분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누구에게나 유명해지고 싶고, 알려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얼마만큼, 어디까지 쓰임 받을 것인가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달려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찬양 작곡가들이 ‘고형원’이 되기를 꿈꾸지만, ‘고형원’은 한 명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정유성’을 집중하십니다.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를 찾아가는 길은 예배음악을 공부하고 사역을 준비하고, 또 지금 사역하고 있는 모든 예배음악 사역의 길 위에 서 있는 분들이 고민하고 또 준비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믿습니다. “겸손하게 내게 주어진 길을 발견하고, 내가 감당할 분량 안에서 충성과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여러분께 드리는 작은 충언입니다.

예배음악: 저희 매거진에서는 교회 전 기관을 아울러 예배음악 전체를 디렉팅하고 기획하는 음악목회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음악목회자로서 사역을 준비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조언을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유성 목사: 맞습니다. 저도 아주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전 기관을 아울러 성가대와 오케스트라, 찬양팀과 예배팀을 조율하고 기획하고 이끄는 ‘음악 목회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저도 못 이룬(?) 부분이라 감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더더욱 음악목회자로서의 사역을 준비하시는 학생들께 자신 있게 드리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현장이 가진 특성과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진 찬양에 대한 선입관(성가대와 찬양팀 / 음악전공자와 비전공자) 때문에 대학교육 기준에서 어떤 모양이든지 음악을 전공하는 것은 음악목회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과정입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예배학은 공부했지만, 그래도 신학만 전공을 하고 음악 수업은 찬양과 예배의 현장 안에서만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베델한인교회 음악목사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전통예배음악과 현대예배음악을 다 아우르는 사역자가 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음악과 신학 공부’에 최선을 다하시고, 반드시 ‘졸업’을 하시라고 조언 드리고 싶습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앞으로 음악목회자의 비전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음악수업을 통해서 기초와 자신감을 얻고, 반드시 신학수업을 통해서 말씀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사역의 틀을 잡으셔야 한다고 강권 드리고 싶습니다.

예배음악: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는 많이 아우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광림교회와 베델한인교회에서 찬양대와 솔리스트들과 연합하여 곡을 쓰시고 발표하신 내용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예배음악과 현대예배음악를 아우르려는 예배음악매거진의 기획팀에게 조언 및 권면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성가킋
(광림교회에서 찬양팀이 찬양대와 함께 연합하여 찬양드리는 모습)

정유성 목사: 위의 질문 말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래서 예배음악 매거진의 기획과 나아감이 기대가 되고 응원을 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예배음악과 현대예배음악이 계속해서 공존과 공생으로 나가야 합니다. 물론 몇몇 교회와 사역들은 한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잡아 나가기도 하지만, 거의 대다수 한국교회는 두 요소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가 기획팀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하면 잘 섞을까? 섞일까? 에 대한 ‘아우름’의 사역과 동시에, 건강한 예배신학과 교회신학을 기초로 하는 최고의 전통예배음악과 최고의 현대예배음악을 따로 또 같이 ‘세워줌’의 사역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사역을 모두 책임지고 리드할 수 있는 좋은 ‘음악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 안에 넘치도록 많아지기를, 격려해 주시고 힘주시고 세워주시고 깨워주시는 그런 ‘기획팀’이 되시기를 맘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예배음악: 목사님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귀한사역에 매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정유성 목사: 감사합니다

정유성사진변경

정유성
감리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유다지파’와 ‘부흥한국’에서 사역했으며 〈물가운데 지날때에도〉,〈하나님 눈 길 머무신 곳〉을 비롯하여 여러 곡을 작곡했고, 미국 얼바인 소재의 베델한인교회에서 9년째 사역 중이다. 2009년부터 프뉴마 워십(www.pworship.com) 사역을 시작하면서, 찬양과 예배의 현장을 유튜브와 무료 발송사역을 통해 활발하게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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