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브로콜리 선데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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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도사님이라는 아저씨는 앞에 나와서도 우리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어. 아이들과 선생님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앞을 보고 있었고. 이렇게 한참을 마주 보고 있다가 마침내 아저씨, 아니 전도사님이 말씀하셨어.

이거 왜 하고 있는 거니?”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주 보며 수군거렸어. 저건 무슨말이람? 아니 주일이니까 당연히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건데 그게 뭐 어때서?

전도사님이 눈을 가늘게 찡그리더니 천천히 입을 벌렸어. “달란트 받으려고 실룩실룩 춤추는 게 과연 예배일까? 음……아니다,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너희 혹시 브로콜리 좋아하니?”

으잉? 이건 또 뭔 소리람? 전도사님은 우리를 둘러보며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

우리 주일학교는 이제부터 브로콜리 선데이스쿨이라고 할 거예요. 주일은 영어로 ‘선데이’, 학교는 ‘스쿨’, 합쳐서 ‘선데이스쿨’! 글로벌 시대에 잘 맞는 이름이죠.” 어떤 아이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우엑’ 하는 표정을 지었어.

“근데 왜 하필 브로콜리예요?” 차진수 녀석이 말했어. 차진수로 말할 것 같으면 덩치는 하마같이 커다란데 치아가 아주 특이하게 줄을 서 있어서 괴상한 교정기를 끼고 있지. 그래서 앞니 빠진 꼬마같이 말을 하곤 해. 하지만 잘난 척은 정말 끝내준다니까. 아마 밥 한 끼 정도는 안 먹어도 잘난 척을 안 하면 살 수가 없을 걸? 늘봄아파트 산다고 잘난 척, 수업 시간에는 아는 척, 또 아빠가 토요일마다 자기랑 놀아 준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그러면서 너희 아빠는 토요일에도 일하시냐며 내게 묻는데, 난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어. 토요일에 쉬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잘난 척하는 거야. 아무튼 얄미운 녀석이지. 차진수의 질문에 전도사님은 얼굴가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어.

“브로콜리가 어때서? 사실 내가 무지무지 좋아하거든.” “고작 그 이유예요? 너무 시시하잖아요.” “음…… 사실 우리 부모님께서 브로콜리 농사를 지으시거든. 농약 한 방울도 안 쓰시는 멋진 농사꾼이셔. 내 이름도 그런 정신이 반영된 거라고 볼 수 있지.” “그거랑 우리 교회랑은 상관이 없잖아요.”

차진수가 팔짱을 끼고 아주 건방진 말투로 끼어들었어. 전도사님은 뭐라 말도 못하고 뒤통수만 긁었어. 어? 이번엔 김로아가 손을 번쩍 드네? 김로아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인기는 별로 없어. 그나마 고백하는 남자애들은 줄줄이 다 차였다니까. 차진수 녀석이 잘난 척으로 먹고 사는 아이라면, 김로아는 잘난 척 자격증이라도 가진 애 같아. 무지 똑똑하게 말하면서 아는 척을 하거든.

브로콜리1

바로 이런 점에서 차진수는 김로아의 상대가 안 되지. “원래는 ‘늘봄교회 주일학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엉뚱한 이름으로 바꾼다고 한다면 그에 맞는 이유가 필요하잖아요.”

전도사님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어. 방금 전까진 이죽이죽 웃으며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말이지. 아이들도 무지 진지한 얼굴로 전도사님을 바라보았어.

“이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궁금해 하니 어쩔 수 없이 알려 줘야겠구나. 사실 브로콜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아주 엄청난 관련이 있단다.” 전도사님이 성경책을 들어 올렸어.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도사님의 입만 쳐다보았지. 우리 교회 애들이 이렇게 집중력이 좋았나? 전도사님은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말은 안 하고 우리를 둘러보며 이상한 미소를 지었어. 쥐 죽은 듯 고요했지.브로콜리2

“성경에 브로콜리가 나왔죠? 아니면 예수님이 좋아하셨거나.” 또 차진수 녀석이 벌떡 일어났어. 쟤는 아무튼 알아줘야 해. 전도사님도 김샜다는 표정이었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아니야. 브로콜리와 성경의공통점은 바로…….”

진수를 째려보던 아이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전도사님을 쳐다보았어.

내 옆에 앉은 아이는 침을 꼴깍 삼켰어. 이상한 미소만 짓던 전도사님이 드디어 입을 열어 말씀하셨어.

몸에는 진짜 좋은데, 너희는 도무지 먹지를 않지.”?

헐! “에이~ 그게 뭐예요!” 대단한 걸 기대했던 아이들은 난리가 났어. 그 시끄러운 통에 전도사님은 킬킬거리며 유유히 교육관을 빠져나갔어.

“다음 주에 보자. 안뇽!”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다음 주엔 안 나올 테니

9월, 18호에서 계속

장보영
양념치킨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장보영 선생님은 중앙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새침데기 아가씨처럼 지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재롱둥이, 울보, 떼쟁이, 말썽꾸러기 등 30여 가지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예수전도단 예배 팀에서 섬겼고, 지금은 어린이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며 ‘싱잉앤츠’라는 밴드에서 재미있는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림책 『더 스토리박스 바이블』 시리즈와 『나는야 특별한 오리』 등 다수의 책에 글을 썼고, <예수 내 인생의 횡재> 등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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