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예배음악의 경건성과 축제성을 함께 회복해야 한다 – 이상일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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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필자는 한국에서 다양한 교단의 백여 개 교회 예배에 참석해 보았다.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도 서로 사용하는 음악이 많이 달랐고, 그에 따라 예배 분위기도 많이 달랐다. 같은 교단에서도 예배음악과 예배 분위기가 놀라울 정도로 완전히 다른 교회들이 있다. 한 교회 안에 시간대 별로 예배 형식과 예배음악이 다른 경우도 많이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른바 ‘전통적인’ 예배와 ‘현대적인’ 예배(혹은 ‘열린예배’)를 마련하는데, 이 두 가지 예배의 가장 큰 차이는 예배음악에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예배는 교회의 전통, 주된 연령층의 취향에 대한 고려, 그리고 문화를 보는 관점 등에 의해 결정되었겠지만, 그 내면에는 예배신학의 차이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예배는 경건성을 지향하고, ‘현대적인’ 예배는 축제성을 지향한다. 예배신학의 차이는 또한 강조하는 하나님의 성품의 차이를 보여 준다. 경건성을 지향하는 예배는 초월적인 하나님, 즉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계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축제성을 지향하는 예배는 내재적인 하나님, 즉 우리와 가까이 함께 하시고 친밀하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주로 나이든 세대가 초월적인 하나님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젊은 세대가 내재적인 하나님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 관(觀)의 차이가 예배음악의 차이로까지 연결되어서, 사용하는 노래와 악기에 영향을 미친다.

예배음악이 경건해야 하는지 축제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교인들 사이에 논란과 갈등을 겪는 교회들이 있다. 이것은 단지 오늘날의 문제이거나 한국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펄전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음악부서를 전쟁부서라 불렀다. 미국의 어느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룬 모든 주제들 중에서 가장 논쟁이 컸던 주제는 낙태나 포르노 등이 아니라 음악이었다고 한다. 예배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는 기능을 해야 할 예배음악이 오히려 예배자들을 갈라놓고 예배가 전쟁터가 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 예배음악이 경건해야 한다는 입장과 축제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차례로 살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겠다.

예배음악은 경건해야 하는가, 축제적이어야 하는가?

1) 경건해야 한다

교회에서 경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도대체 경건이란 무엇인가? 어느 사전에서는 ‘경건’을 “초월적(超越的)이거나 위대(偉大)한 대상(對象) 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狀態)에 있음”이라고 정의한다.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경건’을 “하나님이 베푸시는 온갖 유익들을 아는 데서 생겨나는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그를 향한 사랑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를 뜻한다.”(1559년판, 1.2.1)라고 적고 있다. 위의 두 정의로부터 경건의 근본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임을 알 수 있다. 이 경외심이 예배의 기초이다. 하나님의 임재에 잠길 때 하나님에 대해 경외심을 느끼고 그 앞에 엎드리는 모습이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경건한 예배음악이라 말할 때에는 엄숙하고 무게 있는 예배음악을 일반적으로 뜻하는 것 같다. 칼뱅은 제네바 시편가 서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경박하거나 경솔해서는 안 되고, 장중함과 위엄을 갖도록 항상 주의해야만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식탁에서나 가정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연주하는 음악과 하나님과 천사들이 임재하는 중에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예배음악의 경건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들이 보기에 소란스럽고 경박한 예배음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예를 들어, 어느 장로교단의 총회장이 2009년 말에 발표한 담화문에는 다음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주일 예배회에 찬송은 무시되고 설렘과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저속한 리듬 음악인 현대복음송을 열광적으로 부르고 감정적인 흥기가 고조되어 박수치고 춤추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D. G. 하트(Hart)와 J. R. 뮤터(Muether)는 예배를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드려야 하며, 경건함은 축제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예배음악의 경건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기쁨을 표현하는 행위에 조심스럽고, 기쁨의 감정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것 같다.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강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예배에서 기쁨의 감정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기쁨의 감정이 없음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거듭 명령한다(시 2:11, 100:2, 빌 4:4, 살전 5:16 등).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건한 예배를 추구하는 몇몇 교회들의 예배는 엄숙함이 지나쳐 숨을 제대로 쉬기도 곤란함을 필자는 경험했다. 예배당 시설도 훌륭하고 예배음악도 훌륭했지만 예배자들의 표정과 전체 분위기에서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성희의 말처럼, “조용한 것이 반드시 경건한 것은 아니며, 시끄러운 것이 반드시 경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외식은 자유롭고 열광적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축제적인 경건”이라고 부른다. 음악과 인도자의 말로써 인위적으로 기쁨의 감정을 일으키려는 것은 잘못이지만,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즐거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2) 축제적이어야 한다

사전에 의하면, ‘축제’라는 말은 본래 “축하와 제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러면 예배는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가? 로버트 웨버(Robert E. Webber)는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축하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매주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화려한 축하 시간이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축제의 특징 중 핵심적인 것이 참여와 기쁨이다. 20세기 말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진 현대 예배곡은 회중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몸도 사용하면서 자유와 기쁨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배가 축제로서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교회만 보아도 최근 30년 동안에 예배의 형식과 음악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가! 특히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예배에서는 찬송가를 거의 부르지 않고 찬양팀의 인도에 맞춰 몇 십 분 동안 현대 예배곡을 부른다. 손을 들거나 손뼉을 치는 것은 기본이고, 제자리에서 뛰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나 축제적인 예배음악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많이 있다. 첫째, 회중찬송을 인도하는 찬양팀이 뿜어내는 전자음향이 지나치게 크고 회중의 소리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회중찬송의 주체는 회중인데 찬양팀의 소리가 너무 크면 회중이 콘서트의 관객처럼 소극적으로 변하기 쉽다. 둘째, 축제적인 예배음악의 대부분이 경쾌한 노래이다. 심지어 가사 내용은 참회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인데, 노래 리듬과 드럼 비트 때문에 경쾌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 예배에는 슬픈 노래도 필요하고 느린 노래도 필요하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잊을 수 있다. 가까이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강조하고 찬양의 기쁨과 자유를 지나치게 표현하다 보면 하나님을 친한 친구처럼 너무 허물없이 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법궤를 손으로 만진 것 때문에 웃사를 죽게 하실 정도로 거룩하고 두려우신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경건성과 축제성의 균형

그러면 예배음악은 경건해야 하는가, 축제적이어야 하는가? 바람직한 예배음악은 경건성과 축제성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어느 한쪽 면만 있으면 바람직한 예배음악이라고 할 수 없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 2:11)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는 경외심과 더불어 기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초월적이시면서 내재적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휘에 잠겨 엎드려 경배하기도 하고 기뻐 춤출 수도 있어야 한다. 예배에는 대조적인 면이 있다. 기쁨이 있는 반면에 참회도 있고, 노래가 있는 반면에 침묵도 있고, 선포가 있는 반면에 속삭임도 있고, 일어서기가 있는 반면에 엎드림도 있다. 시편이 보여 주는 예배에는 이러한 모든 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예배음악을 기준으로 ‘경건한 전통예배’와 ‘축제적인 현대(열린)예배’로 나눠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예배가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안에서 경건하면서도 축제적인 예배여야 한다. 예배를 음악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예배를 상품화하는 것이고 예배 참석자들을 소비자로 보는 것이다. 예배를 음악 취향에 따라 둘로 나누는 것은 교회 공동체에도 해롭다. 이들은 함께 모여 찬송하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 함께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다양하게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따라 예배음악도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한 음악과 악기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은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찬송가를 부르고 오르간을 사용한다고 해서 예배가 죽는 것이 아니고, 현대 예배곡을 부르고 밴드가 큰 소리를 낸다고 해서 예배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지난 이천 년간 축적된 예배음악의 보물이 있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 새것들이 추가되고 있다. 이 풍성하고 귀중한 보물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전해진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새 보물이 좋다고 옛 보물을 송두리째 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와 반대로, 옛 보물만으로 만족하여 새 보물을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분별력을 갖고 “새것과 옛것을”(마 13:52) 그 보물창고에서 꺼내 회중과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시대와 지역과 음악 양식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한 예배음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을 선정하는 이가 특정 음악의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예배 순서에 적합하면서도 탁월한 음악을 찾으려는 자세와 그런 음악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살전 5:21).

음악을 통해 예배자들이 하나가 되고 예배가 풍성해지길 기도한다.

(이 글은『월간목회』2010년 11월호에 실린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글 개재를 허락해주신 월간목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상일?이상일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회음악과와 신학대학원을 마친 후 미국 Southwestern 신학교에서 (M.M./Ph.D.)과정을 마친 후 2009년부터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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