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 3 ? 사역자의 영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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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생명과 대화를 나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역자가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영적인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절대로 영적인 안일함을 허락하지 말라. 영적인 안일함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을 때, 혹은 주님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을 거부할 때 찾아온다. 이 두 가지를 마음속에 새기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다루시게 하고, 내부적으로는 나의 관심이 하나님께 있게 하라.

하나님과 책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온 마음을 다해 성육신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교회와 일치시키는 것이며, 셋째는 성경의 계시를 수단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안에서, 교회를 통해, 그리고 주의 말씀 안에서 자신을 주셨다. 이것이 주께서 주의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위해 정하신 방법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정신적, 도덕적, 영적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성찬, 곧 우리가 주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 되게 하셨다. 따라서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비밀의 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협력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6~19).

우리는 어떤 일부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생명과 관련이 없는 경건을 주의하라. 이러한 경건은 종교적인 체험의 형태를 말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한 삶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인 부분에서만 하나님께 협력하려는 경향이 있다. 소위 세속적인 것을 영적으로 만드는 일에는 협력하지 않는다.

주님께는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구분이 없으셨다. 우리가 이 경계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생명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놓고 경계와 질투의 자세로 자신이 만든 세상을 지킨다. “나는 이것저것을 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이곳에 있어야 한다” 등의 자세는 참된 사역자라면 취할 수 없는 자세이다. 그것은 매우 인위적인 자세이고 하나님의 생명이 전혀 나타날 수 없는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로는 현실의 긴장을 견딜 수 없다.

성경에는 병든 경건이란 없다. 우리의 경건은 이 세상 안에 있으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강하고 생동력이 넘치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속한 것이다. 이 경건은 어떤 부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고 승화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과 관련이 없는 경건을 주의하라. 이러한 경건은 종교적인 체험의 형태를 말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한 삶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당신의 삶 속에서 온 힘과 마음을 다해 경건에 힘쓰며 완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절대로 종교적인 사람이 되지는 말라. 가짜 종교인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자신만 심각하게 고려할 뿐이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예배의 대상은 자신의 체험이다.

하나님께 집중함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3).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자신의 종교적인 자아 의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종교적인 자아 의지를 거절하셨다. 이에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흔들어 놓으셨다. 사람은 본래 종교적으로 자아 의지적이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 집중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신의 종교적인 이상에 집중하고자 한다. 자아 의지적인 종교는 거룩한 삶이 어떠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정한다.

우리의 자아 의지적인 경향 때문에 하나님의 생 명이 우리를 통해 역사할 기회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자기중심이 될 때 더 이상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종교 체험에 매달리는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고 있는 증거이다. 우리는 믿음의 삶 가운데 이러한 자아 의지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단지 ‘모방’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육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조성하셔서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상황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든지 아니면 겁쟁이가 되는 수밖에 없다.

만일 어떤 신자가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낼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영광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특별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낸다면, 이것이 바로 주께서 당신을 부르신 목적이며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따라서 사역자의 영적인 삶은 하나님께서 그의 몸을 통해 나타나시는 것이다.

오스왈드챔버스오스왈드챔버스

십대 시절에 찰스 스펄전의 설교를 듣고 방탕한 삶에서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그는 에든버러대학에서 예술과 고고학을 전공했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어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평생 신실한 증인으로 헌신했다. 미국, 영국, 일본에서 순회설교자로(1906-10), 잉글랜드의 클라팜신학교를 설립하고 교수로서(1911-15), 그리고 이집트에서 YMCA 군목으로(1915-17) 활발하게 사역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서 솟아난 그의 메시지는 구원의 기쁨과 구령의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을 주었다. 주옥같은 메시지를 엮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비롯해 그의 많은 묵상과 설교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영적인 감화를 크게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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