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이사야 6장: 성경적 예배의 창문 ? 2. 예배자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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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의 응답

하나님 집의 실제적 예배에 대해 이사야가 본 비전의 가능한 배경은 그 광경과 소리와 건축 환경의 풍부한 이미지와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가 우리 앞에 설정해 놓은 것은 성전과 그 예배의 순서의 실제적 설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주의 성령이 예배의 행위 중에 그에게 임하심에 대한 선지자 개인적 응답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경적 모델로서 오늘 우리의 예배를 재구성하는 어떤 방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사야의 경험이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경험될 수 있는 예배의 내적변화와 분위기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예배의 외적설정은 중요하며 우리는 건축과 예배장소의 시각적 및 청각적 측면에 대해 매우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예배는 외부적 설정이 무엇이든 간에 “신령과 진리의 예배”이고 이사야는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에게 예배는 보좌에 높이 들리신 경외와 찬양의 주제인 하나님의 위엄의 비전에서 시작됩니다. 스랍들의 찬송은 그분의 거룩하심과 그의 영광의 우주적 압권을 경축합니다. 예배의 첫 동기인 “여호와는 광대하시고 극진히 찬송하리로다”(시 48:1)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개념에서 와야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축하하는 데서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위엄을 대할 때 우리는 또한 우리의 무가치함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부르짖습니다. “화로다 나여,….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사 6:5) 그는 예배자로서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백성들의 죄도 깨닫게 됩니다. 찬양과 경배로 주 앞에 나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행하여야 할 일입니다.(히 12:21) 그것은 우리의 개인적 무가치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의 전체 구조의 죄와 부패를 고백함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ㅡ 잘못된 가치와 거짓된 인식이 우리의 삶에 침투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표현할 수 없는 부정한 입술이 되게 하는 우리의 사회를 말입니다.(롬 1:18)

그러나 시편 130편 4절은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라고 말씀 합니다. 제단에서 가져온 핀 숯을 입술에 대므로 이사야는 정결케 됩니다.ㅡ그것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의 희생을 통한 믿는 자를 중재하는 용서와 정결을 묘사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네 죄가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6:7) 예배는 사죄함, 즉 사랑의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삶의 갱신을 가져옵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 한 번 고백되고 제단에 바쳐진 죄성의 우리 자아는 그분과 더 가까이 함께하는 데 방해되는 장벽을 제거하며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때 이사야와 함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6:8). 예배는 사명, 즉 왕을 섬기기 위한 부르심을 의미하며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완성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헌신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것은 우리를 소유하시고 계시는 그 거룩하신 분은 우리를 잘못 사용하시지 않으리라는 신뢰에서 나온 헌신입니다. 오직 예배만이 이것을 알게 합니다. 거기에 응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빌 2:13)을 발견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무감각하고 반응이 없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6:9~11) 그러나 이 심판까지도 십분의 일 혹은 한 그루터기일지라도 하나님의 왕국의 궁극적 회복을 위한 그분 계획의 일부입니다.(6:13) 살아계신 하나님의 비전은 그분의 임재 안에서 예배를 통해 늘 갱신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고전 15:58)

예배는 정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살아있습니다. 예배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사야의 비전은 일련의 분위기나 움직임을 통하여 대면, 고백, 성결, 사명, 헌신, 확신 같은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데려갑니다.

그것은 예배의 효율성을 결정하는 예배의 순서나 실제적 배경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예배에 유용한 보조물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차이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가 원하시는 곳에서 우리를 소유하시기까지 하나님의 성령께서 예배의 움직임을 통하여 우리를 데려가시도록 우리가 허락하는 정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20141126_150531_541김영국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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