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이사야 6장: 성경적 예배의 창문 ? 1. 이사야 6장과 이스라엘 예배의 신의 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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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주님의 임재 속의 예배는 많은 성경적 문헌을 위한 전반적 바탕을 만들어냅니다. 성경의 지배적인 신학적 관심은 주님과 그의 백성과의 언약입니다. 언약의 의식은 본래 예배의 행위이므로 성경적 계시의 상당부분이 예배의 배경에 반하여 일어나거나 예배에 사용되기 위하여 주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원리의 많은 실례들이 언급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예언적 문헌의 본보기인 이사야 6장에 기록된 만군의 주를 위한 대변인으로서의 소명에 대한 이사야의 서술에 집중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선지자들은 공동예배의 상황 속에서 그들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이사야 6장에서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에 대하여 반응하는 선지자의 아마도 가장 명확한 본보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의 하나님의 영광의 형태를 취합니다. 이 재료의 출처로 “황홀적”비전의 가능성을 참작할 수 있지만 “문어적” 비전을 다루고 있음에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선지자는 성전예배에 참석하여 주의 성령으로 자신에게 계시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비전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형태와 충격으로 승화되지만 이사야의 이미지는 성전과 기구와 건축물의 실제 예배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장은 예배의 시각적 청각적 측면을 통해 전달된 주의 영광의 계시에 대한 이사야의 개인적 응답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 예배의 신의 현현

이스라엘 축제예배의 정점은 제사드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현현 혹은 여호와 영광의 현시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이스라엘의 예식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오시고(신 33:2, 시 50:3, 80:2), 나타나시고(시 102:16), 비취시고(신 33:2, 시 50:2), 그 얼굴을 비취시고(시 31:16, 16:1, 80:3,7,19) 라고 선포되는 그 순간, 그때가 축제의 정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아마도 십계명의 의례적 암송 중에서 그의 백성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시는 야훼 하나님으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 힌트는 시편 50:7, 16 그리고 81:10의 언어에서 발견됩니다. 예배자는 그러한 순간에 여호와의 영광 ㅡ 하나님의 존재의 질량을 감추는 빛나는 덮개(히브리어 카보드는 영광, 경의, 질량, 무게를 의미함)ㅡ의 임재 안에 있는 자신을 감지했습니다. 이사야가 “여호와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말할 때(사 6:1) 그 기본 개념은 여호와의 광채와 영광입니다.

성전예배의 시각적 모습은 또한 여호와의 영광을 인식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그러한 모습 중 하나는 스랍들과 함께하는 언약궤의 존재였습니다. 이 스랍들은 고대의 왕실이나 신의 권위의 상징으로 인간의 얼굴과 사자와 같은 날개 달린 생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다(삼상 4:4; 왕하 19:15, 사 37:16, 시 80:1, 99:1) 하기도 하며 시편 18:8에서는 그분을 그룹을 타고 나시는 현신으로 묘사합니다.

보통 언약궤는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성소 안에는 대제사장이 속죄의 날(레6)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약궤를 성전에서 옮겨 여호와의 즉위의 상징으로 다시 성전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경우에는 이스라엘의 축제예배가 언약궤의 의식 행렬을 포함하여 통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습에서는 몇 개의 시편 용어를 설명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시 24:7에서의 외침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같은 것입니다. 만군의 주라는 표현은 분명히 여호와의 언약궤의 이름이었는데 그의 원수들과의 싸움에서 보이는 자신의 리더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민 10:33-36, 삼상4:3, 4) 이사야가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언약궤의 시각적 임재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진, 불, 연기의 형상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과 연관됩니다. 이 형상은 시내산 현현 (출19:18)에서 발견되며 시 18:7-15절 같은 데서 상세히 설명됩니다. 시 97:2, 3절은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불이 그 앞에서 발하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신 4:24, 히 12:29)로 비유됩니다. 이런 모습은 이사야의 비전에서도 발견됩니다. 이사야는 6:4에서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는 성전예배의식에서 향의 연기를 마음에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그는 또한 성전 앞에 놓여있던 제단에 핀 숯을 언급합니다.

그 불의 이미지는 또한 스랍들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 속에 전달됩니다. 우리는 이 수수께끼의 존재의 본성에 관하여 오직 추측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스랍이라는 용어는 히브리 원어 s-r-f “타오르는”에서 나온 “타는 존재”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비전에서 스랍들은 여호와를 섬기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는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시 104:4, 히 1:7) 하지만 이 비유적 묘사의 배경은 아마도 제단의 불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같은 단어가 민수기 21:6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 “불뱀”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스랍들은 불 같은 뱀 모양의 생물들로 언급한 것 같습니다. 이 불뱀으로 인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모세는 놋뱀을 만들었고 왕하 18:4을 보면 우리가 아는 대로 개혁의 히스기야 왕(715-687 BC)은 백성들이 그 놋뱀을 향해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사야의 비전이 있던 때에(웃시야 왕이 죽던 해 740BC) 그 놋뱀이 성전에 있었을 것이며 이사야의 스랍들의 묘사의 가시적 배경으로 쓰였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서로 창화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교창, 응답송, 혹은 찬미처럼 들립니다. 그것은 어쩌면 성전 음악인들이 성가대들로 나뉘어 서로 화창하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성전음악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이지만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이러한 교창의 노래가 이스라엘 예배의 일환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20141126_150531_541김영국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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