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예배갱신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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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제적 임재”는 많은 개신교 교단들의 예배에서는 잃어버린 요소입니다. 성경적으로 알려진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경의와 헌신의 표현이고 그의 백성가운데서 그분의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에 처음으로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듣는 사람은 사도바울이 말하는 고린도교회에 참석한 불신자같이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가운데 계신다.” 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고전 14:25) 그러나 우리의 예배모임은 참석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의 공동체 내의 인도자들이나 단체들의 발표를 그저 관람하거나 경청하는 “프로그램”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예배의 성막은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의식을 회복하는 모델을 제공합니다.

많은 개신교 공동체 내에서의 현대예배갱신은 주의 만찬(성체성사 혹은 거룩한 영교)의 구심적 역할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눅 22:19)고 하신 예수의 말씀에 응하여 더 자주 성찬예식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환영할 일인데 반하여 대부분의 개혁교회는 비정식 성찬예식의 신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천주교처럼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의 요소들 속에 임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성변화”(전실체 변화)를 통해 보인다고 이해하는, 즉 그 요소들이 표면상의 모양을 유지하는 동안에 그 떡과 포도주가 주의 실제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것으로 봅니다. 복음주의 공동체에서는 주의 만찬의 초점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반응으로 예배자 각 개인의 진지한 자기성찰에 두려고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성만찬이 헌금시간에 의식적 효과를 주는 정도의 형식적 의식절차로 낮추어지기도 합니다.

다윗예배 모델은 주의 만찬의 상황을 “주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심”(시 22:3)으로 “나타내시는 그의 임재”의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주의 만찬상의 봉사는 지배적인 세상의 문화와 악의 세력으로 힘을 얻는 우리에 대하여 죄책감을 일으키는 율법의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드러냄으로 경험됩니다.(골 2:13~15) 그런 맥락에서 축제는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신 자신의 피의 “새 언약”을 보증하는 만찬이 되는 것입니다.(고전 11:25) 예배자들은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출 24:11) 하는 시내산의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그러한 축제에는 성경적인 장엄함이 있는데, 즉 그 축제적 장엄한 의식은 시편에서 비춰진 대로(시 24:7~10, 68:24~26) 언약궤의 행차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식적 예배는, 역사적 기독교의 관례를 따라 주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주의 만찬에 모이고, 공동체와 세상에서의 섬김을 위한 흩어짐의 순서를 통해 나아갑니다. 다윗의 예배에는 이에 상응하는 순서가 있는데 찬양의 점진적 진행은 주께서 오시며혹은 나타나시는시간으로 인도됩니다. 다윗예배의 성막의 분위기는 찬양과 경배의 행위를 통해 주께 충성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함께 즐거워함인데, 성경이 그것을 감사드리세라고 부르는 그 언어의 기독교적 언어인 성찬(유카리스트)의 원래의 의미가 됩니다. 다윗 스타일 예배의 나타나시는 임재와 성만찬 의식의 결합이 수렴성예배”, 즉 예식적 형식과 카리스마 형식의 조화를 실행하는 회중들 속에서 오늘날 실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시온산 위의 장막에 제정한 예배형식의 매우 독특한 특성인 조직과 즉흥성 그리고 형식과 자발성의 성경적 결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온의 예배의 축제적이며 다채로운 분위기는 대부분의 개신교 예배에서 떨어져 나갔고 전적으로 전통적인 예배순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즐거운 것이 될지는 몰라도 참여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참석자는 예배자이기보다 더 방관자적입니다. 혹은 예배시간은 정적이고 지루하고 장황한 말잔치가 될 수 있습니다. 상황을 그려보면, 사람들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그 광경은 참석자들에게 헌신의 부족을 질타하는 부정적 표현일 수 있으며 혹은 더 개방적인 교파의 경우에는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죄책감 해소여행을 마련하라는 열변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장막에서의 예배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백성과 함께하심, 그들에 대한 언약적 사랑의 기이함을 축하하는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즉 “오, 야훼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인간의 죄와 기브온에서의 모세의 제사에 연계된 속죄의 강조는 시온의 예배의 주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모델을 적용하면 예배자들은 단순한 여흥이나 권고나 정죄의 수혜자들로 부터 주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벧전 2:9)으로 변화합니다. 그것은 또한 “대 회중”(시 26:12, 68:26)으로서의 공동체 축제의식의 단체차원의 예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윗의 모델을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는 회중 교파의 배경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리스마적 회중들은 더 많은 형식과 의식 그리고 예배의 구조를 개발하여 모든 기독교 예배의 역사적 예배행위가 회중이 성찬상에 모일 때 절정으로 인도되는 순서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한편 대부분의 복음주의교파 회중들은 정식예전과 즉흥성 모두를 맛보는 것이 필요하고 “예언적” 표현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또한 예배시간은 교육의 시간만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윗의 예배는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만나서 그들과 언약을 맺는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시기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주류 개신교 교파들의 도전은 예배의 성경적 기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과 문화적인 의제보다 성경적 예배에 중점을 두는 것,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실제적이며 예전적으로 볼 수 있는 헌신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식적 혹은 다른 전통 성만찬 예식교파들의 교인들은 자신들의 예식이 성경적 모델들과의 연속성에 있어서 더 큰 의미가 우러나도록 허용할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예배의 “우리의 전통”은 이차적인 것이지 일차적인 가장 중요한 주안점은 아닙니다. 모든 교파들은 하나님의 예배에 춤, 안무, 음악적 표현, 배너(기치), 그리고 다른 모양의 예술에 대한 헌신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시온에 세운 예배는 기독교예배에 새로운 활력의 표현을 요구하는 현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축제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며 또한 사악함과 소외됨과 죽음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사역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축제는 다윗의 구약시대 속의 신약예배의 특징들을 적용함으로써 크게 풍성해집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께서 까닭 없이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신 것이 아닙니다.

20141126_150531_541김영국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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