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 바울이 추구한 찬양(1) ? 시 찬송 신령한 노래(엡 5: 19, 골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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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찬양신학에 대한 연구는 매우 빈약한 것을 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겐 찬양신학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바울도 바울 나름대로의 찬양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추구한 찬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추구한 찬양은 어떤 것인가?” 필자는 이미 본지를 통하여 바울이 가지고 있는 찬양철학이 다양성과 특수성이라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계시하신 다양성 속에서 특수성을 잃지 않는 찬양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울의 편지 중 두 곳에 계시되어 있습니다(엡 5: 19, 골 3: 16).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찬송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 19 개역개정)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찬송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 16 개역개정)

여기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3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나옵니다. 바로 “시(psalms)”, “찬송(hymns)”,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s)”입니다. 이 3가지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계시하신 특별한 찬양의 3대 요소입니다.(Donald P. Hustad, Jubilate II: Church Music in Worship and Renewal (Carol Stream, IL: Hope Publishing Company, 1993), 146-48.)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울은 이 3가지 요소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놓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것과 관련된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Donald P. Hustad, “Doxology: a Biblical Triad,” Ex Auditu, Vol. 8, (1992): 1-21.) 미국 이스턴 대학(Eastern University, PA)의 음악학 교수 콜빗(J. Nathan Corbitt)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라는 이 3가지 용어만큼 많은 목사, 신학자, 교단, 음악가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며, 분열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없을 정도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완전히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시편이란 오직 영감 된 글자(divinely inspired texts)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기독교인들은 이것들이 영의 신비스러운 노래와 방언(glossolalia)이라고 말하며, 또 다른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에 만들어진 모든 기독교 음악이라고 주장한다.(J. Nathan Corbitt, The Sound of the Harvest: Music’s Mission in Church and Culture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1998), 258.)

물론 이러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 3가지 찬양형태를 말하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을까요? 에곤 웰레츠(Egon Wellesz) 교수의 주장처럼 아마 짐작하기는 그 당시 바울의 편지를 받아 읽는 사람들은 이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수신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Egon Wellesz, “Early Christian Music,” 2, in The New Oxford History of Music, Vol. II, ed., Dom Anselm Hughe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하지만, 이러한 충분치 못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3가지 요소가 1세기 교회에서 사용된 찬양이었다는 점에는 특별히 의견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3가지 요소가 그 당시 1세기에 유행했던 찬양의 서로 다른 3가지 형태라는 점에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Barry Liesch, The New Worship: Straight Talk on Music and the Church, Expanded Edition, 37-52.) 이것을 바울 신학자 헤르만 리더보스(Herman Ridderbos)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바울 서신을 살펴보면, 여러 형태의 말씀사역 속에 낭독, 예언, 가르침, 세례와 성찬 등이 있는데, 이와 덧붙여 특별히 우리는 바울 서신들에서부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예배모임의 구성요소로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다 (골 3:16, 엡 5:19). 비록 우리가 이러한 찬양들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성격에 관해 더 상세한 정보를 갖지 않는다 해도 개인들인 신자가 준비하여 교회에서 그것을 불렀는지(고전 14: 26), 아니면 전 회중이 불렀는지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교회에 성도들이 함께 모일 때 이 노래들이 찬양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시편들”을 구약의 시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시” “찬미”와 “신령한 노래”같은 칭호까지도 엄밀히 구분될 수 없을 것이다.(Herman Ridderbos, Paulus: Ontwerp van zijn theologie, trans., John Richard De Witt, 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 485.)

그렇다면, 주후 1세기 바울이 분류해 놓은 이러한 3가지 찬양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며 또 어떻게 그 의미를 적용하며 실천해야 할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함께 나누겠습니다.

증명사진 김철웅-수정김철웅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 신학대학교 대학원(Th.M)에서 공부했고, 미국 McCormick 신학교(M.A.T.S) 졸업 후, 미국 루터교단(LCMS) Concordia 신학교에서 음악선교학(Ph.D)을 전공했다. 현재는 서울 영락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며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 외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추적! 마틴 루터도 CCM 사역자였는가?』, 『추적! 찬양도 설교인가?』, 『추적! 음악선교는 가능한가』 『추적! 유니아는 여자 사도인가?(신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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