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 예배 인도자와 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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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개척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조그마한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둘째 주 토요일마다 저녁 찬양예배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저에게 고마워하시지만, 저는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많은 은혜를 받곤 합니다. 참석하는 교인 수만 생각하면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저는 그 교회 어린 찬양팀이 인도하는 찬양 중에 매번 눈물을 흘리며, 준비해 간 설교를 제쳐두고 그들을 통해 받은 은혜를 간증하게 됩니다.

지난 4월 11일에도 그 교회의 토요찬양예배를 위한 설교 제목을 로마서 12장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of Worship)로 하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신체적 예배 행위에 대한 실제적 문제들을 다루려고 준비하였습니다. 미국 루터교회에 세를 들어 예배드리는 본당이 수리 중이었기 때문에 그날 저녁예배는 조그마한 교실에서 드리는 예배로, 몇 명이 안 되는 교인들이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그 날도 찬양팀의 열정적인 찬양과 기도를 통해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나 다른 대형교회의 예배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깊은 감동을 받고 설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날 저녁에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찬양과 경배의 예배를 교인 수와 예배실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열성을 다해서 드렸으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또다시 준비해 간 설교원고를 제쳐두고 제 간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먹던 깡 보리밥이 생각난 겁니다. 한국전쟁 직후, 부잣집 아이들은 비싸고 귀한 쌀밥을 먹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값싼 보리밥을 먹던 때입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부잣집 아이들은 대부분 연약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건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하얀 쌀밥을 먹는 부잣집 아이들의 도시락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그 교회의 어려운 환경과 현실에 적용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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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모든 사역의 목회자들이 성경적 모델로 삼고 있는 다윗에게 소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를 어떤 환경 속에서 훈련시켰을까요? 보리밥의 환경이었을까요? 아니면 쌀밥의 환경이었을까요? 저는 그 교회 찬양팀과 성도들에게 여러분은 지금 영적 보리밥을 먹고 있음을 감사하며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을 다윗처럼, 고독과 무명과 지루함의 훈련과 열악한 환경의 현실을 극복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길을 따라 갈, 진정 앞서 있는 준비된 예배자들이 될 훈련장에 두시고 있다고….

끝으로 제가 사는 이곳 남가주에서, 젊은 시절 음악목사로, 뮤지컬 작곡가로, 또 저술가로 활동했고 지금도 많은 후배들을 길러내고 있는 윌리엄슨(Dave Williamson)의 간증을 소개 합니다.

“저는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예배 인도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 거의 대부분은 제가 배우고 싶고 또 해보고 싶은 것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에게는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제가 두고두고 항상 좋아하는 예배 인도자가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요엘 니콜래센입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난 때가 저의 나이 20대였던 1969년으로, 저의 첫 사역지였던 캘리포니아의 자그마한 전원 마을인 털록에 사는 6피트의 키에 사이즈가 4피트의 몸매를 자랑하는 75세 노인이었습니다. 제가 털록에 있는 몬테 비스타 채플 교회의 음악목사로 위임되기 전에 그는 그 자그마한 교회의 송 리더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배인도자”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또 한편으로 요엘은 털록시의 시장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연임되어 봉사했었습니다. 털록이란 마을은 대부분 목축업자와 농부들로 이루어진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시장이 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자리이지, 엄청난 정치적 파워를 추구하는 관직이 아니었습니다. 털록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요엘을 좋아했고 요엘도 주민 모두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그 교회의 사역자 후보로 있을 때, 예배 중에 본 요엘의 찬송 인도를 묘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크고 멋지며 사교적인 스웨덴 계통의 노인은 설교단 뒤에 서서 왼손에는 성경책을 펼쳐 들어 올리고, 오른쪽 손바닥은 하나님을 향하여 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디서 그런 자세를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예배에서 손을 드는 행위는 그분의 예배전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찬송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는데, 찬송가 없이 요엘은 삼절까지 모두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 자세와 접근법이 저에게는 좋았지만, 그를 훌륭한 예배 인도자로 만든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엘의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가 거기에 서있었을 때, 그는 시종일관 인간의 얼굴에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참되고 진심어린,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요엘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예배에 참석하고 요엘이 찬송을 인도하고 있었다면, 여러분이 어떤 기분으로 들어왔든지 간에, 그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입니다. 그것이 예배 인도자의 궁극적 정의라고 하지 않을까요?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 인물”이 지도자의 정의라고 한 맥스웰의 말처럼, 예배 인도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로 따라 들어가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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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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