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찬송은 보조물이 아니라 예배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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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브리서 13:15)

‘찬송 샌드위치(hymn sandwich)’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배 순서에 ‘예배에의 부름-찬송-기도-찬송-설교-찬송-봉헌-찬송-축도’같이 찬송이 순서 사이에 있기 때문에 ‘찬송 샌드위치’라는 용어가 생겨났습니다. 찬송을 여러 번 부르다 보니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순서로 착각하고, 바쁘면 한 절만 부르고, 시간이 남으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찬송은 순서를 메우기 위한 보조물도, 예배를 꾸미기 위한 장식품도 아닙니다. 찬송은 예배의 핵심입니다.

찬송에 대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들의 잘못된 찬송관에 있습니다. 찬송을 예배의 보조수단으로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음악을 통해 어떤 환경으로 이끌어 가려는 오류를 낳게 합니다. ‘조절’이라는 ‘교활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므로 예배의 본질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게 유도하다 보니 당연히 찬송의 목적을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간주하게 됩니다.

심지어 찬양대의 찬양은 설교를 돕기 위한 보조 행위 정도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예배요소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예배를 촉진시킵니다. 이러한 생각은 예배의 보조가 예배 행위를 유도한다는 말과 다릅니다. 예배 행위를 또 다른 예배 행위와 연결 짓는 일이 예배에 어떤 최고점이 있다는 생각을 막아줍니다. 오히려 진정한 예배에는 예측 가능하고 계층화된 최고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예배순서는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설교와 찬양의 방향은 다릅니다. 설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찬송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찬양이 설교를 위해 존재한다든가 무엇이 무엇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예배 순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기도가 찬양을 위한다든지, 봉헌이 설교를 위한다든지, 찬양이 설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봉헌, 설교,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준비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자리를 정돈하면서 찬송하겠습니다.”
“아직 예배시간이 남았으니 찬송이나 부릅시다.”
“시간이 없으므로 1절만 부르고 목사님 축도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특송 하시겠습니다.”

예배를 기다리며 부르는 ‘준비찬송’, 자리 정돈을 목적으로 하는 ‘정리찬송’, 통성기도의 분위기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을 ‘배경찬송’이라 말합니다. 특정일이나 절기의 예배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특별히 준비하는 찬양을 ‘특송’(하나님께 드리는 데 특별과 보통이 있겠습니까?)이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찬양의 본질을 잊어버린 잘못된 표현입니다.

물론 음악의 기능은 심리적으로 예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찬송을 단순히 분위기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분위기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영적 심리의 기능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엄격히 말해 예배와 찬송은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와 찬송은 똑같이 “신령과 진정”(요 4:23, 고전 14:15)이 요구되듯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찬송은 예배의 본질이며,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송이 주된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은 단순한 도구나 예배를 위한 보조물이 아니라 예배의 핵심입니다.

최선의 찬양을 위하여

  1. 잘못된 찬송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2. 찬송에 대해 잘못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있습니까?
  3. 요한복음 4장 23절,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을 묵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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