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교회 음악인가, 기독교 음악인가 – 양정식교수(서울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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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정의에 대한 소고 -?교회음악(Church Music)인가, 기독교음악(Christian Music)인가

매학기 수업을 통해 교회음악에 입문하는 학생들에게 ‘교회음악’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더불어 보다 폭넓은 수용을 전달하는 과정은 늘 책임과 연구가 뒤따르는 자리였다. 그동안의 많은 교회음악 서적들이 교회음악을 히브리(Hebrew) 음악이나 그리스(Greek) 음악, 또는 교회가 세워져 발달해 온 중세로부터 역사적 기원과 출처를 찾고 논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본 소고에서는 성경말씀을 기반으로 하여 교회음악을 ‘찬양과 경배(Praise and Worship)’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아울러 ‘기독교음악(Christian Music)’이라는 보다 폭넓고 명확한 정체성 확립을 위한 실제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실재 수업에서 사용하는 원서나 번역서의 교회음악적 기원을 다룬 서적들은 교회가 세워진 기간을 통해 교회음악적 개념과 이해를 그 출처로 두고 있다. 찬양은 창조주의 성품과 구속사에 대한 하나님께로의 반응이다. Barry Liesch, People in The Presence of God-Models and Directions for Worship, (Mi: Zondrvan Press, Grand rapids, 1988), 36-48.

소망하기는 이런 접근과 연구를 통해 교회음악의 개념적 이해와 정체성을 숙고하는 데 보다 성서적이고 목양적 관점에서의 깨달음이 있어 많은 사역의 현장에 이해와 적용이 있기를 바란다.

찬양(讚揚), 찬미(讚美), 찬송(讚頌)과 경배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의 경우에 ‘찬양(Praise)’과 ‘예배(Worship/Service)’란 단어로 통합되어 통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음악(Church Music)’을 정의하는 데 앞서 우리가 정서적으로 이해하는 개념적 접근을 잠시 정리하고 논지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우선은 “교회음악”이란 단어가 한국사회에서는 가장 넓게 포용되는 단어란 사실이다. 아마도 기존에 교회음악인을 양성하는 교육장소로 각 교단 산하의 신학교의 학과 명칭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교회음악의 정의를 찾기 위해 찾아본 사전적 의미들조차 교회음악의 명확한 정의보다는 다양한 음악 장르 중의 하나로 분류한 정도다. New Grove, Ameri Grove, Harvard Music Dictionary 등 권위 있는 사전들조차 그 의미나 개념을 정의하기보다는 음악적 장르 중에 하나로 분류를 하고 있을 뿐이다.

교회음악을 보다 포괄적으로 대체할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인가 ‘예배음악(Worship Music)’이 곧 ‘교회음악’인가 등 이러한 명제들은 수세기 거듭돼 온 학문적 논쟁인 ‘예배(Worship)’인가 ‘예전(Liturgy)’인가에 대한 상관된 적용이 필요하다. 로빈 리버, 조이스 짐머맨, 『예배와 음악』, 허정갑, 김혜옥 역, (서울: 연세대학출판부, 2009), 5-6,243-265.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되는 사실은 위의 각 단어들의 어원적 이해이다. 예배의 어원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구약의 샤하(???), 아보다(?????)와 신약의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εω),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ια)들과 찬양의 어원으로 폭넓게 적용해 온 구약의 할랄(hallel), 야다(yadah), 바락(barak) 또는 신약의 아이네오(aineo)는 모두가 행위를 동반한 사역형 동사들에서 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은 예배자들의 행위 즉 삶을 동반한 일체의 반응이 함께 사용될 때 그 뜻과 의미가 온전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교회음악’의 역사적 시발점이 교회의 존재 유무에 있다면 그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교회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셰이커, 형제단, 구세군 같은 다양한 전통과 유대적 전통을 가진 민족적 접근이 용이하지 않기에 그 포용성과 수용성이란 측면에서 한계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교에서 선호하지 않는 개신교적 개념인 ‘교회음악’을 ‘예전음악’음악이란 개념으로 사용한다면 상반된 반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학적 연구와 학문적 수용성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보다 신앙적이고 성서적인 관점에서 적용 가능한 절충안으로 가장 적절한 용어를 ‘기독교 음악(Christian Music)’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교회음악의 이러한 용어적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통용되는 것은 많은 경우에 그 행위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이다. 즉 교회음악을 하는 사람, 이끄는 지도자와 같은 관계성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기독교 음악’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교회음악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가장 잘 대신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음악의 개념적 이해와 확립은 성서적인 것을 배제할 수 없으며 구속사적 역사성을 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 음악’은 무엇인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구약의 계시와 예언, 그리고 제사의 자리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음악인가? 아니면 신약이 말하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하나로 모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봐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기독교음악이란 어떻게 이해돼야 하는가? 학문적인가, 신학적인가, 아니면 신앙적으로 인가? 신약성경은 기독교 찬양의 세 가지 범주를 시(Psalm)와 찬미(Hymn), 그리고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 등으로 소개하면서 찬양의 단계와 절차를 제시한다.

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마 12:34,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고

그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며, 이로써 지혜를 얻어 서로를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 그 두 번째 단계이고, 마지막으로 감사함으로 위의 세 찬송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골로새서 3장 16절, 히브리서 2장 12절). 말씀이 없는 찬양은 온전할 수 없다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 음악은 철저하게 말씀 위에서 신앙의 삶으로 영적으로 그 개념을 바르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

위의 세 가지 개념으로 교회음악의 올바른 정의를 모을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가질 때 필자의 마음속엔 또 다른 다양한 질문들이 생긴다. 그중에 하나는 교회음악의 개념을 세워 가는 데 시편 속의 ‘새 노래(New Song)’(시 144:9)의 개념을 또한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새롭게 작곡되거나 편집과정을 거친 찬송을 말하는가? 그렇다면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드리는 ‘영적 찬송(sing with the spirit)’과 ‘마음의 찬송(sing with the understanding)’ 고린도전서 14장 15절은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기독교 음악은 그 음악을 다루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과 찬양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히 2:12). ‘영으로 드리는 찬양’과 ‘마음의 찬양’ 그리고 ‘신령한 노래’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와 함께 이뤄져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존 맥아더 목사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사 40:18~26)을 인용하여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또는 신학적 관점에서, 또는 성경적 관점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을 우상과 같은 하나의 형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예배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반드시 영으로서 예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 맥아더, 『참된 예배』, 한화룡 역, (서울: 두란노서원, 1982), 53-81.

아울러 히브리서 기자는 위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반응되는 삶의 연속성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우쳐준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중략)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브리서13장 1~16절).

?‘기도의 법칙이 곧 믿음의 법칙이다’란 “lex orandi lex credendi(the rule of prayer is the rule of faith)” 개념을 교회음악의 예배학적 이해라는 관점으로 적용해보면 예배는 예배자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예배는 움직이는 믿음이다’란 뜻으로 초대교회에서는 예배의 경험이 우선한다는 의미이다. Robert Webber, 『예배가 보인다 감동을 누린다』, 198-200.

공동체에서 회중의 행위는 예배의 공동체적 경험에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예배는 예배자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해이다. 이러한 개념에서의 예배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는 다음의 책자들을 추천한다.

1) 『참된 예배』, 존 맥아더, 두란노

2)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데이비드 루이스, 조이선교회

기독교 음악의 성서적 이해를 위해 한 가지 더 나누려 한다. 요한복음 4장은 수가성의 한 여인을 만나는 자리에 예배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범을 보이셨던 단편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예배자를 만나는 우물가의 사건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시각을 가지게 한다.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자리는 예배자와 예배 받으시는 분의 경계와 순서가 세상 기준 밖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오늘을 살며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점을 꾸짖으시며 하나님의 때에 창조주가 원하시는 예배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 너머에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기독교 음악의 보다 깊이 있는 정의와 개념적 확립을 위해서는 찬양을 드리는 예배자, 즉 예전적 회중(Liturgical Assembly)이라는 개념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의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조이스 앤 짐머맨(Joyce Ann Zimmerman) 박사는 예전적 주체로서의 회중(Assembly)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현대교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예배의 주체가 되는 회중을 단지 예배드리는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는 평범하고 단순한 관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예배의 모든 진행과 순서를 담당하는 실제적인 주체는 바로 회중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이 회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중의 ‘이중적 속성(a Double Attribution)’을 언급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개인적 속성과 함께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속성(屬性)이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대상으로서 회중의 새로운 이해는, 예배를 드리는 주체 안에 예배의 주체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것을 확인하는 자리를 전통적으로 성만찬과 같은 예전의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로빈 리버, 조이스 짐머맨, 『예배와 음악』, 허정갑, 김혜옥 역, (서울: 연세대학출판부, 2009), 41-66.

중세초기의 많은 교부들의 기록들 가운데 음악이 가지는 영향력을 인정했으며 말씀을 전하는 가장 훌륭한 매개체로 음악만한 것이 없음을 강조하면서 예배 안에 역할과 기능적인 부분을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교회음악의 개념적 이해를 돕는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다. 구교를 대표하는 천주교나 예전성을 중시하는 교회-루터교, 성공회, 정교회 등-에서는 교회음악은 분명히 예배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예배를 돕는 도구(Secondary part)의 역할을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중세의 교부-어거스틴, 암브로시우스 등-들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 (From Modern Catholic Dictionary/catholic culture.org – accessed on October 1, 2013)

중세의 수세기를 이어져 내려온 예배와 찬양의 통전성은 초대교회로부터(from the Early Churches) 예배의 공동체성 회복이란 모든 것을 통용하여 너와 내 것이 없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초대교회의 예배는 개인주의적 예배와 개인체험 위주의 신앙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 ‘함께’와 ‘같이’라는 예배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리고 교회사로부터 정결화(Purification)되고 차별화(Classification)된, 즉 신학과 교리적으로 검증된 예전성과 형식의 회복을 말한다. 참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오랜 교회의 역사 속의 예배는 잘못된 교리와 올바르지 못한 신학으로 배움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선동하거나 현혹하던 때에 성서 위에 바로 선 예배를 주장하며 검증된 예배의식과 절차를 강조해야 했다. 신앙생활로부터 예배의 특성을 회복한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사,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을 이루시기까지의 역사를 담아야 한다. 이것이 예배와 찬양의 본질이다. 이 본질 위에 개념을 세우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양이 교회와 같은 특정 장소 만에 아닌 매 삶의 여정 전체를 통해 요구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애가 개개인의 신앙생활과 접목되어 경험되는 다양한 모습들을 바르게 표현해 내도록 반응하는 것으로 그 역사를 이어가야 하겠다.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며 도약해야 할 시점에서 교회음악의 개념적 이해와 정리는 모든 교회음악인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교회음악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학문적 접근에만 주목하지 않았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성서적인 관점을 간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필자는 ‘교회음악이란’ 소고의 주제와 관련하여 한두 가지 제안과 권고를 담아 결론을 대신하려 한다. 먼저 서두에서 ‘교회음악’의 용어적 개념을 대신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로 ‘기독교 음악’을 제언하였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연장선상에서 기독교 역사 전체를 포함하는 보다 구체적인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단어이기에 교회음악을 용어적으로 올바르게 개념 정립하며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반드시 재고되고 통용돼야 할 용어라 하겠다.

교회음악의 개념정립을 위해 교회음악의 행위자와 예배 안의 역할과 기능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교회음악의 합리적 적용이 없이는 온전한 개념을 정립할 수 없기에 교회음악인들이 사역현장에서의 개개인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위치를 회복하고 성서와 역사성에 기반을 둔 통전적(holistic) 가치를 재정립해야 필요가 있다. 교회음악의 올바른 이해와 해석을 위한 또 하나의 접근 과정은 종교개혁에 기반을 둔 독일의 대표적인 교회음악인 코랄(Choral), 영국 성공회의 독자적인 문화적 수용과 민족적 표현양식을 대표하는 앤섬(Anthem), 그리고 미국의 부흥의 시대와 성장에 기반을 둔 복음송(Gospel song) 등은 그 동안 한국 교회의 가장 중심에서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레 우리의 찬양이 되었다. 성서에서 비춰 본 예배의 통전성(holistic)이란 역사적 관점과 함께 전통과 동시대의 문화적 수용이란 관점을 함께 놓고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한국 기독교 역사와 다양한 시대적 사회성을 반영한 교회음악의 바람직한 개념 정립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과 가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겠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르쳐 주신다. 교회음악이란 이런 계명을 수행하고 전하는 데 가장 성실한 예배자들의 마음(integrated heart)에서 시작되어 공교한 손(skillful hands)을 통해 사용될 매개체가 돼야 할 것이다. 미래의 예배는 고대의 예배, 즉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예배의 현재적인 재현이란 개념으로 예배와 음악을 예시하며 정리하였던 웨버 박사의 글을 통해 ‘21세기 교회음악이란’ 이름의 짧은 소고의 결론을 삼으려한다. Robert E. Webber., “Ancient-Future Worship”, BakerBooks, 2009, 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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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교회음악학사(B.A.)와 신학사(B.A.)를 복수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회음악지도자과정(Diplm.) 졸업 후 도미하였다. Westminster Choir College에서 교회음악석사(작곡/지휘전공)를, Claremont Graduated University에서 교회음악박사(지휘전공) 학위를 받았다. 신학교육은 Wesley Theological Seminary(M.A.), Newbruswick Theological Seminary(M.Div.), Southern Theological Baptist Seminary(M.Div.) 과정을 각각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성실한 마음 공교한 손』(2011/예솔), 『예배자를 위한 작편곡법』(2013/워십리더코리아), 『예배자를 위한 음악통론』(2015/워십리더코리아)과 번역서로 『영향력 있는 예배인도자』(2011/예솔), 『웨버의 예배이야기』(2014/워십리더코리아) 등이 있다.?현재 교회음악과 학과장으로 섬기면서 예배와 음악, 교회음악, 찬양사역과 관련된 과목들을 통하여 제자들을 양육하며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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