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예배의 본질과 껍데기를 볼 수 있는 지혜(김명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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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앉아서 어릴 적 멋모르고 교회를 오가던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예배에 대한 기억이 주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것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본당, 소예배실, 구 본당 등’ 장소에 대한 기억과 ‘11시, 9시, 저녁7시 등’ 시간에 대한 기억으로 예배가 떠올려진다. 사회를 보시는 목사님께서 강대상 위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오르간 소리가 울려퍼졌고, 이어 성가대의 입례송이 불려지고 나면, 목사님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예배를 이끌었다. ‘지난 주간 동안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회개하며 주께로 나아가자’는 목사님의 말씀에 따라, 어린 마음에 무엇이 성경이 말하는 죄인지도 모르는 채로 죄책감이 드는 기억들을 떠올려가며 회개의 흉내를 내곤 했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세 번 울릴 때마다, 생물학 시간에 배운 조건반사 실험이 떠올라 괜시리 입안에 침이 고이곤 했고, 축도 이후 이어지는 주위 사람들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도대체 뭐라 기도하는 거지?’하며 멍하니 서 있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그 시기는, 예배에 대한 기억은 나지만,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없던 시기였다. 교회를 오갔지만 하나님은 몰랐던, 교회의 일은 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던, 예배는 드렸지만 예배의 본질과 예배의 대상을 알지 못한 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정해진 순서를 따라 몇 곡의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라 생각하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이십여년 전, 컨티넨탈 싱어즈의 미국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미국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다섯살짜리 꼬맹이가 나하고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의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구겨지는 경험이었고, 3개월 내내 한 명도 한국 사람이 없는 팀에서 영어를 써야만 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꿈에서조차 영어가 떠오를 무렵 투어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3개월을 다니며 만났던 70여개의 미국교회들과 피지, 뉴질랜드, 호주의 교회들에서 드렸던 예배와 만남들은 교회와 예배에 대한 나의 평생의 생각들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전환점이 되었다.

미국서 사역을 다니다가 주일아침이 되면 같은 팀의 멤버들은 평소에 전혀 볼 수 없었던 깔끔한 옷차림으로 나를 당황시키곤 했다. ‘Sunday dress’라 불리던 스타일, 형제들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었고, 자매들은 꽃무늬 원피스들을 입곤 했다. 교회의자에 찬송가는 있었지만, 그 책을 보며 부르는 노래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찬양은 앞에 띄워진 화면의 OHP필름에 적힌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진행이 되었다.

한 교회에서는 그랜드 피아노가 중앙에 놓여 있었는데, 한 사람이 성경책을 한 손에 들고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그 앞에 앉아 성경구절을 읽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도도 하고 또 찬양도 하길래, 난 속으로 ‘예배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려나?’ 하며 찬양을 따라부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는 한 분이 역시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걸어나와 회중 앞까지 오더니 악수도 하며 인사를 하곤 무엇인가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슨 순서지?’하며 한참을 듣다가 그제서야 그 분이 이미 설교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도 있다.

피지의 한 교회에서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80명의 성가대가 춤을 추며 찬양하기도 했고, 헌금시간에는 찬양이 이어지는 동안 한 사람씩 강단 쪽으로 걸어나가서 자신의 헌금봉투를 계단에 두고 무릎꿇어 기도한 후 돌아오는 감동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서로 교제하고 돌아가라는 목사님의 말이 끝나고 실제로 이십여분간 서서 돌아가며 껴안고 입을 맞추며 인사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충격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면 수십 장을 써내려갈 만큼의 경험들이 있었는데, 그 경험들이 나에게 주던 깨달음은, ‘내가 이전에 예배라 생각했던 것들은 예배의 본질이 아니라 예배의 껍데기였구나’하는 것이었다. 가는 곳마다 부르는 노래가 달랐다. 예배마다 순서가 너무도 달랐다.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입고 나오는 옷도 나라에 따라 달랐다. 야외에서의 예배도 있었고, 학교 강당에서의 예배도 있었다. 수백년 된 교회 건물에서도 예배했고, 이제 방금 완공한 멋진 신형건물에서도 예배했다. 흑인과 예배하기도 했고 원주민과 예배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예배드리고 나니, 무엇이 껍데기이고 무엇이 본질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을 본질이라 생각하며 고집피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본다. 제한적인 개인의 경험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자꾸 지엽적인 것들을 고집하니 예배의 생명력이 사라지고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쪼록 주께서 모두에게 지혜를 하락하셔서 본질과 껍데기가 선명히 보여지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란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영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회복되는 예배, 영혼이 자유케 되며, 권세가 선포되고, 부활의 능력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예배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기억하자! 예배는 시간과 장소와 의식에 대한 것을 넘어서, 성경의 계시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삶의 주권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온 인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에 반응해 드려지는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매트 레드만이 불렀던 ‘Heart of worship’의 가사를 한 번 묵상해보는 것도 이러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같다.

3김명식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 졸업, 서울장신대학교 음악신학박사과정중에 있으며 전 컨티넨탈싱어즈 대표를 역임 현재는 국제기아대책기구 음악대사, 빅퍼즐 뮤직&스토리의 대표,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의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예수바람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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