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음악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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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도(道)를 닦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음악은 넓게는 작곡을 포함하여 모든 연주를, 좁게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도를 닦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면 사부는 ‘도의 지름길’을 알려줄 법도 한데 그저 머슴살이만 죽도록 시킨다. 물 길어오기 3년, 마당 쓸기 3년, 땔감 구해오기 3년, 경우에 따라 한 3년 정도 밥 짓기를 더 시키는 사부를 만나기도 하고 돌팔이 선생을 만나 얻는 것도 없이 1년 만에 속성 아닌 속성으로 하산을 하기도 한다.

속세를 떠나 도를 깨우치고, 도인이나 신선이 되어 보려고 산에 들어갔을 때의 각오야 오죽했을까마는 그 십여 년의 세월이 어디 그리 짧은 시간인가. 제자들 중에는 첫날 지켜야 할 수칙들을 알려주는 순간 그대로 발길을 돌리는 이도 있을 테고, 한 1년은 버텨보는 이도 있을 테고 말이다. 물 길어오는 제자들 중에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는 이가 있는 반면 요령껏 눈가림으로 빈 물통만 덜렁거리며 도장 문턱을 들락거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십여 년 동안 하라는 것을 빠짐없이 다 하기는 했지만 그저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왜 들어 왔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육체노동으로 몸만 튼실해졌을 뿐, 총기를 상실한 이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분명 물 긷는 재미를 깨닫는 이가 있다. 아름다운 오솔길, 신선하고 맑은 공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계절마다 바뀌는 숲 속의 오묘한 풍경. 그것이 곧 수련의 즐거움인 것을… 사부는 안다. 그들의 물 길어 오는 표정만 보아도. 사실은 그 머슴살이가 바로 도 닦는 과정인 것이다. 음악가(피아니스트)가 되는 길도 그와 비슷하다.

음악을 하는 것이 무슨 신선놀음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면 큰 오산이다. 초보자가 처음부터 수려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때로는 걸음마를 배우듯이 매우 느리게, 한 손씩, 때로는 한 마디를 가지고 몇 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 손끝에는 굳은살이 박이며 주먹을 쥐면 피아니스트임을 나타내는 특정부위의 소근육이 우뚝해 보일 만큼의 긴 세월이 필요하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10년, 20년에 얻을 것을 짧은 시간에 성취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들도 똑같은 시기를 거친다. 좀 더 빠르고 심오할 뿐…

피아노의 경우, 단지 한 음을 친다 해도 그 음을 누르는 각 손가락의 압력, 타건의 속도, 타건 시 닿는 손가락의 부위, 터치의 방향, 타건의 전동작과 후동작, 팔 무게의 활용여부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수만 가지의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손가락 관절 역시 섬세하게 조절되어야 하며 손끝의 감각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야한다.

피아노 치기는 소근육 운동인지라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은 잠시의 휴지기 없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악보에 표기되어 있는 수많은 콩나물(?)들과 각종 지시어들. 이것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반복훈련-지구력과 체력 그리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밑 빠지지 않은 독’에 차곡차곡 물을 채워가듯이 연습에 몰두하며 그 과정 자체를 뿌듯함과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음악가가 될 충분한 자질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피아노는 두려운 존재, 싸워야하는 존재가 아닌, 상호 소통이 가능한 친밀한 존재가 되며 음악적 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음악은 (눈보다) 귀로 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 이 된 이후에 쓴 베토벤의 곡들은 눈을 감아도 건반이 보이듯이, 귀가 닫혀도 소리가 들리는 단계에서 작곡되어진 것이다. 그는 그의 작품을 내면의 귀로 완전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볼 수 없다는 것`은 ’들을 수 없다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만큼 ‘예민한 음악적 귀’는 필수이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악보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진실로 그 음악에서 요구되는 이미지 톤이 무엇인지 예측, 상상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귀로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음악에 알맞는 톤 컬러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한 화가가 어떤 독특한 하늘의 빛깔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파란 빛깔 중 그 하늘에 가장 적합한, 즉 꼭 마음에 드는 단 하나의 정교한 빛깔을 찾아내는 과정과도 같다.

‘피아노’라는 악기를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인 양 노래하고 호흡하며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것. 이때 연주자의 타고난 것들이 빛을 발한다. 명민함, 순수함, 예민함, 감정의 풍부함과 표현력, 상상력, 창조력 등 연주자의 심성이나 성격이 연주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마치 보이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쓴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읽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연기자를 훌륭한 배우라고 칭찬하지 않듯이 음악 또한 연주자가 악보를 단지 정확히 치기만 했다고 해서 그를 좋은 연주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무엇’ 못지않게 ‘어떻게’ 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연주자의 표현 방식, 소리, 음악적 동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과 어우러져 최대한 자연스러워야한다.

끝으로, 연주자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스스로 감동할 수 있을 만큼 음악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 감동을 듣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연주자와 듣는 이가 동시에 무아지경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 그러면 드디어 득음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나는 그 이상의 세계가 있음을 안다. `진정한 음악`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음악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에게 속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음악을 통해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더더욱 행복한 일이다. 그 찬양 중에 감지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그 행복감은 음악자체가 주는 그 어떤 희열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지상에서 천국을 맛본다고나 해야 할까. 우리에게 음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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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음악(수정)13-1김준희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음대 졸업 후 도미하여 시러큐스 대학원에서 피아노 석사를, 피바디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오르간, 하프시코드로 석사 후 과정을 수료하였다. 2000년에 귀국하여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교회음악 실기과정)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온누리교회와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피아니스트와 오르가니스트로 사역하였다. 현재 백석 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반주자를 위한 찬송가 즉흥연주곡집 1,2, 3 』, 『생생 피아노 반주법 -대화로 배우는 교회음악반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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