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손을 들고 찬양합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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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찬양인도자들의 비전을 물어본다면 대부분 비슷하게 답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안에서 천국의 예배를 지금 이 자리에서 경험하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거창하고 멋진 그림말고, 실제로 찬양인도자들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저는 “회중의 자발성”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찬양과 함께 예배가 시작되면 인도자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손을 들고,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주변 시선 아랑곳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손뼉을 치고,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그런 자발성 말입니다.

바로 몇 주 전에 한국에서 드렸던 유명한 주중예배의 실황을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 인도하던 분과 메인 보컬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성전 안은 예배가 시작되기 전부터 꽉 차게 앉아서 준비하는 예배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10분 20분… 안정감 있고 완성도 높고 선곡도 훌륭한 나무랄 데 없이 자연스러운 좋은 찬양이었는데. 카메라가 회중들을 비출 때마다 정지화면이 된 줄 알았습니다.

섬기는 본교회도 아니고 주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갈 정도의 열심 있는 예배자들이지만. 피 속에 한국인의 정서가 숨어있는 한 “찬양과 경배의 자발성”을 기대하기가 이렇게 어려울까? 가벼운 회의까지 잠시 생기더군요.

이번 달 예배음악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화두는 그래서 “자발성”으로 삼아보았습니다. 예상컨대 많은 찬양인도자 양성과 훈련과정에서는, “일어서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등의 지시 언어로 회중들의 자발적 예배를 방해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그것이 조금 더 무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인도라고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교회 성도들과 이런저런 다양한 자리에서 함께 찬양과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조금 다른 생각도 듭니다.

‘물꼬를 터준다’는 표현이 어울릴까요? 손을 들고 싶고 일어서고 싶고 무릎을 꿇고 싶을 때, 아직은 개인적인 경험과 성격 그리고 문화적인 제약 때문에 주저하는 회중들에게는 인도자의 한 마디가 오히려 자발적 찬양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 달 글에는 다소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떤 경우에는 세련됨보다는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것이 정답일 때도 많더군요.

 

정유성사진변경

정유성

감리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유다지파’와 ‘부흥한국’에서 사역했으며 〈물가운데 지날때에도〉, 〈하나님 눈 길 머무신 곳〉을 비롯하여 여러 곡을 작곡했고, 미국 얼바인 소재의 베델한인교회에서 9년째 사역 중이다. 2009년부터 프뉴마 워십(www.pworship.com) 사역을 시작하면서, 찬양과 예배의 현장을 유튜브와 무료 발송사역을 통해 활발하게 나누고 있다.


찬양인도자를 위한 한마디 강의(지난 호 보기) ? 클릭하면 기사로 이동합니다.

[9월]철저하게 준비하고 부드럽게 열어놓으라
[8월]비켜서라
[7월]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말라
[6월]찬양팀원 선발의 다섯 가지 기준
[5월]찬밥 더운밥 가리지 말자
[4월]찬송가 (편곡)에 집중하라!
[3월]건물은 사라져도 예배는 남고, 문화는 변해도 예배는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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