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분명한 교회음악철학의 중요성 – 김영준목사(기쁜소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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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살 때 함께 교회를 다니던 자매가 여자의 화장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캐나다의 보수 기독교인들 중에는 화장이 경건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의 의견이 어떤가 물어본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매우 단순했다. 여자가 화장을 해서 더 나아보일 수 있다면야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문제를 왜 복잡하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교회 음악에 대해서도 비슷한 실용적인 견해를 갖고 접근한다. 교회 음악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많은 철학이 있지만 목사로서 나의 입장은 이렇다. 예배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것이든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고전적인 음악이든 CCM이든,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든 밴드로 연주하든 간에 예배에 도움이 되어서 교인들에게 은혜가 되고 은혜로운 예배를 진행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 일단은 다 환영을 하고 싶다. 다만 그것은 목회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하여는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지만, 예배의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은 그 교회 담임목사이다. 그 이외에 음악 순서를 담당하는 이들은 그들이 맡은 파트를 우선으로 생각할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개별 연주자들이 자기 파트를 우선 생각하지만 지휘자는 곡 전체를 생각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파트는 전체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 음악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최종적 결정권은 담임목사에게 있다. 만일 담임목사가 이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버린다면 그것은 교회의 예배와 신앙교육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목사가 교회 음악을 전공해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배의 일환으로서의 교회 음악에 대해서는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목회를 해보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 음악의 레퍼토리와 깊이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신앙적 정서와 메시지를 담은 음악이 없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러한 정서적 빈곤이 가장 많은 장르가 찬양과 경배 음악이다. 찬양과 경배곡들은 단 한절이나 두 절의 가사로 되어있는 곡들이 많고 그 내용도 지극히 단순하다. 그저 집회에서 분위기를 잡고자 할 때는 적당할 수 있으나, 한없이 다양한 인간의 정서와 신앙의 사연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믿음이든 의문이든, 신앙인에게는 말하고 싶은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데 비해서 그것을 말해주지 못하는 곡들이 많다는 것이다.

클래식이라고 해서 나은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나 바흐는 작사를 하지 않고 기존의 가사에 음만 붙였을 뿐이다. 미사곡이든 진혼곡이든 이미 정해진 형식에 곡만 붙이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들도 그들의 천재적 창의성을 가지고도 다양한 신앙적 정서를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음악적 소질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오랜 세월동안 외국에서 만든 곡들을 도입하여 가사만 번역하여 사용하다가 근래에 와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신앙을 표현하는 곡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역시 우리에겐 교회 음악에도 된장국 냄새가 나는 것이 어울리는 면이 있다. 굳이 예를 든다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든가 “주님은 한 번도 나를” 같은 곡들을 들고 싶다. 약간 가요풍의 노래라는 것이 좀 불만이지만 그래도 그 정서의 깊이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러한 곡들이 우리의 마음에 어필할 수 있는 이유는 아픔을 겪어본 이들에 의해 작사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불가피한 아픔이 있으며 신앙인이라고 예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형식적이고 진부한 해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염려하지 말고 믿으라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염려를 극북하고 믿음을 가져본 사람이 그 말을 했을 때 거기에 힘과 호소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교회 음악은 결국 그 나라의 신앙 수준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신앙적 정체성과 위치를 찾기 위해 방황하였다. 기복신앙, 부흥회, 찬양집회, 제자훈련, 소그룹 운동, 세계선교 등 이런 모든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한국의 기독교는 많이 성장하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당연히 교회 음악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미 다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이 부족한 것이고,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야 된다.

유럽에서 나오는 교회 음악은 대개 수백 년 전 작품들이지만, 미국이나 남미, 호주에서 나오는 교회 음악은 동시대적인 것이 많다. 그 이유는 이런 나라들에서 기독교 신앙이 꿈틀거리며 융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럽 대륙에서는 이 시대에 내놓을만한 작품이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신앙이 융성하고 발전할수록 한국의 교회 음악도 더 풍성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S__2703362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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