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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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란 물체의 진동에 의해 청각 작용을 일으키는 공기의 파동이라고 정의된다. 여러 소리들이 하모니를 이루면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는 소리엔 감동이 있다.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 말이 통하는 사이이면 울림이 있는 사이이다. 대화란 소리의 전달이 아닌, 마음의 소통이다. 찬양도 마음과 영혼의 울림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열대야를 경험하면서부터, 서늘한 바람이 그리워진다. 공기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 모두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 절실히 깨닫게 되면서 새삼 울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웨스트 민스트 소요리 문답서에 보면 인생의 주요한 목적을 묻는 질문이 있다.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소요리 문답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라고 가르친다.

이사야 43장21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찬양’은 ‘노래한다.’ ‘감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감사로 주께 노래하는 것이 찬양’이다. ‘찬양’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기리며, 그분이 행하신 일을 높여 경배하는 행위이다.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존재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영적 울림통이 있는 성도의 마땅한 반응이 아닐까?

시편 150편에서 시인은 성소에서, 그리고 별들과 은하계들이 있는 광활한 우주에서 주를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위대하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고, 전능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트럼펫과 트럼본, 바이얼린, 첼로, 피아노와 오르간으로 주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고 싶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한다.

태양의 일몰과 일출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장엄한 광경에 사로잡혀 다음과 같이 읖조린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편8:1)시인은 지금 광활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조우한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8:3-4)거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이 지렁이 같은 인생을 생각하시고, 흙덩어리인 죄인들을 눈 여겨 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어찌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주목하시고,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호흡이 있는 동안, 여호와를 찬양하고 싶지 않을까?

죄인이 갖는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 두려움과 수치심이다.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고통, 증오와 배반, 실수와 허물이 있다. 과거의 수치스럽고, 억울한 삶의 경험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린다.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수치심으로부터 자유,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린다. 이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위대하시다. 그분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광대하시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듣고, 경험해서 안다면 어떨까? 마른 막대기 같고, 꺼져가는 심지 같은 연약한 죄인들을, 마른 풀처럼 어쩌면 뿌리 한 조각, 가지 하나 남기지 않고, 풀무 불에 타버릴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까닭 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어떨까? 그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뇌성마비를 앓았던 송명희씨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일본의 미즈노 겐죠씨도 뇌성마비로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몸을 가지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금 들은 것, 느낀 것, 잊기 전에 위대한 주님의 업적을 찬미하는 시를 썼다고 한다.

어떤 이는 말 하지 않아도, 표현 다 못해도 주님 사랑해요.”고백하고, 또 어떤 이는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구원의 은혜를 찬양한다. 각각 자신만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각각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흐르는 사람에게는 노래가 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입술에 찬양과 고백이 있다.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고, 그 풍성함을 맛보아 아는 사람의 영혼에는 늘 신선한 울림이 있다. 그래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여호와를 찬양하고 싶다.

찬양의 메아리가 골짜기, 골짜기 마다, 바싹 말라버린 마른 뼈들에게로, 울려 퍼져, 생명을 회복시키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는 그날, 목 놓아 찬양하는 예배자들 가운데 있는 우리 모두를 보고 싶은 것이라면 지나친 욕심일까? 의미 있는 소리, 영적 울림이 있는 소리로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울려 퍼지게 하지 않을까?

김재봉목사김재봉
캐나다 위니팩 중앙교회 담임목사 역임 현 신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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