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소통을 위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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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선교팀들과 여러 사역을 하며 전도하고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선교팀들의 복음을 향한 열정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은 이미 절정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주일에는 중국의 지하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들의 예배도 한국의 예배와 무척 유사한 모습이었습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찬양 후에는 기도와 말씀을 봉독하는 시간이 있었으며 성가대의 찬양과 설교가 뒤를 이었습니다. 새신자를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이미 본당에는 자리가 없어서 팀원들은 각기 다른 방에서 화면을 통해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께서 저는 특별히 본당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는 ‘특례’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과의 시차 문제도 있었고 이미 여러 사역을 하느라 몸이 많이 곤한 상태였는데, 하필이면 제 자리가 강대상 바로 정면 첫 줄이었습니다. 우리말이나 영어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 예배에서, 그것도 강대상 정면에 앉아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서 참석한 예배는 정말 제게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멍이 생기도록 온몸을 뜯어가면서 겨우 겨우 예배시간을 버텼습니다.
팀원들 모두 비몽사몽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예배당을 나오면서 예배에서의 소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새신자들도 다 이렇지 않을까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성경 단어들의 나열과 인물들의 연구
모르는 찬양들의 반복
옆 사람과의 어색한 인사
찬양할 때 손을 들거나 박수하고 뛰는 익숙지 않은 행동들등…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좀 더 캐주얼화 하고자 했던 노력들도 새신자들에게는 넘기 쉽지 않은 문턱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신자뿐일까요?

익숙지 않은 곡조와 리듬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더 크게 부르고 더 높게 손을 들라고 요청하는 찬양인도자들의 요구에 억지 춘향격으로 따라가는 ‘오래된 기존신자’들도 같은 경험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6년 반 전에 지금의 교회에 처음 왔을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먼젓번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쉽게 따라 부르던 곡이 새 교회에서는 넘지 못할 높은 벽처럼 느껴졌는지, 성도들에게서는 원래 기대했던 반응대신 ‘진정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예배 속에서의 소통을 위해서 음악목회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내게는 쉬운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어노인팅, 마커스와 같은 전문 예배팀에게는 멋지고 화려한 곡이 우리 교회에서는 부자연스럽고 부담스러운 곡이 될 수 있다는 조심성 있는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게는 모국어처럼 느껴지는 리듬과 곡조가 기성세대들에게는 외계언어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새신자의 경우는 ‘난 새신자니까…’라는 자세로 열심히 배우려고 하겠지만 기존의 기성세대 성도들은 ‘왜 나도 모르는 곡을 계속하는 거지?’라는 의문과 함께 ‘거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선곡 때문에 예배 안에서의 소통과 연합이 깨지는 일이 쉽게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인도자들은 ‘새 노래’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곡을 많이 하지 않으면 스스로 나태하다고 여겨지고, 오래된 곡을 꺼내들면 청중들이 지루해 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다보니 인도자들은 매주 다른 곡을 선곡하여 열심을 내려고 하고, 성도들은 매주 익숙지 않은 곡들의 나열을 만나게 됩니다.

이 경우 처음에는 조금 따라하다가 안 되면 끝내 ‘거부’하게 되는 원치 않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예배의 열정이 뜨겁다고 해도 외국어가 남발되는 곳에서는 그 지겨움을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의 만지심으로 새로운 곡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와 같은 영적인 신선함도 기대할 수 있지만, 이것은 영적인 문제이지 단순한 열심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자들은 선곡을 할 때에 음악적인 완성도와 선곡의 신선함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성도들의 음악적 언어수준을 고려하여 때로는 ‘하향평준화’라고 느껴지는 정도까지도 눈높이를 낮춰야 할 때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최고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배를 하나님께 맞추어야지 사람에게 맞추면 안 된다는 뜻으로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면 아마도 ‘좋은 음악, 좋은 수준은 따로 있다’라는 편견도 가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왕 되신 하나님께서 드셔야 할 음식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그럴까요? 요리사에게 익숙지 않은 메뉴를 강요한다면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을까요? 기쁨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요구당하면 흉내는 내겠지만 진짜 맛은 낼 수 없고 그 요리를 먹는 왕도 참 맛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맛은 어떤 맛일까요? 흉내가 아닌 자기의 맛을 내는 예배자의 예배가 아닐까요? 다른 교회나 선교단을 그대로 베끼고 겉모습만 치장한 ‘소통이 어려운’ 선곡으로는 하나님께 참 맛을 전해드릴 수 없고 성도들에게는 거부당하는 ‘낭비된 열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알고 성도들을 배려하는’ 원활한 소통이 일어나는 참맛 나는 예배를 기획하도록 눈높이를 재조정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진정한 맛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그 예배자로 먼저 거듭나고 또한 다른 이들을 도울 수도 있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음악(수정)21-2윤진현
장로회신학대학교 및 동대학원에서 교회음악작곡을 공부하고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주최 제30회 서울음악제에서 입상한 후 미국으로 유학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에서 예배음악학을 수학한 윤진현 목사는 특별히 중형교회에서의 음악목회 현장을 세워가길 원하며 현재 콩코드침례교회에서 예배/음악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작업했던 편곡집으로는 새노래7, CCM성가합창3,4,5집(칼라뮤직) 남궁송옥1집(합창편곡)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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