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주객이 전도된 예배를 회복하십시오 – 이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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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2학년 시절, 내 삶의 주제는 ‘인생무상, 삶의 회의’였다. 교회는 15년이 넘게 다녔지만, 정작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처치 고어church goer’에 불과했다. 주일 예배 참석은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에 철저히 지켰지만, 예배 시간 내내 내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당시 내가 선택한 현실 도피 수단은 당구였다. 당구를 칠 때만큼은 영혼의 자유를 누렸다. 덕분에 예배 시간에 앞에 앉은 성도의 머리가 당구공으로 보일 정도로 거의 중독 수준이었다. 몸은 예배 현장에 있지만 마음은 ‘쓰리쿠션’을 묵상하는, 당시의 나는 예배의 관객이요 방관자였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해서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후 예배가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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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적 예배에 대해 경박하고 의무감 없이 배교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등록한 교인들의 수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로 적은 숫자만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나아가 예배를 하나의 문화행사 정도로 여긴다. 생명력을 잃고 습관적인 의식, 또는 타성에 빠져 있거나 싫증을 느끼는 현대 성도들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구경하고 평가하는 관객

그들은 예배 시간 내내 수동적인 관객을 자처한다. 예배실에 들어오면 설교자가 잘 보이고, 성가대 소리가 잘 들리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고개를 들고 그날 예배실의 분위기를 살핀다. 실내 온도는 적당한지, 강단은 잘 정리되었는지, 주보에 틀린 글자는 없는지 확인한다. 성가대의 옷매무새와 귀고리, 머리와 화장을 체크한다.

예배가 시작되면 인도자의 차림새와 말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찬양인도자의 멘트가 길어지면 슬며시 불평이 흘러나온다. 싱어의 마이크 음량이 조금만 커도 눈살을 찌푸린다. 연주자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연습도 안 했나?’ 비판의 화살을 겨냥한다. 모르는 찬양이 나오면 관심 끄고 주보를 읽는다. 찬양 중에 손을 들거나 일어나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은혜 받는 걸까? 혹시 쇼하는 거 아냐?’, 찬양팀이 기뻐서 뛰기라도 하면 ‘앞에서 너무 나대는 거 아닌가?’, 눈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 ‘감정에 치우친 신앙은 위험해’ 판단하고 메마른 지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쓴다.

대표 기도가 3분만 넘어도 자기도 모르게 시계에 눈이 간다. 성가대가 선곡을 잘했는지, 음정이 틀리지 않는지, 화음은 잘 맞는지 여부로 ‘오늘 연습 안 했구먼. 사람은 왜 이렇게 적어?’라며 지휘자와 성가대의 점수를 매긴다.

설교가 시작되면 설교자의 목소리 톤과 마이크 음량, 의상에서부터 설교 제목과 기승전결 논리 전개가 주도면밀한지 평가한다. 썰렁한 유머와 부적절한 예화를 못마땅해 하거나, 설교의 문제점을 적어 ‘예배 끝나면 전해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구경하고 평가하는’ 관객으로 앉아있지는 않은가?

 

회복의 화두는 회중

예배에 대한 구도자적 갈증과 지역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갱신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지 10년,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공부하고, 지역교회에서 전임 예배디렉터로 사역했다. 도미하기 전, 전국 방방곡곡 찾아다니던 찬양사역을 뒤로하고, 이제는 한 교회에서 예배사역 모델을 세우기 위해 내 40대를 걸었다. 부임 당시 400명 주일출석 교회에서 오직 찬양과 예배에만 집중하는 전임사역자로 섬겼다. 그 결과 중형교회에서 평신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예배사역을 경험케 되었다.

예배사역 7년째 되던 2009년 어느 날, 섬광 같은 깨달음이 왔다. “예배갱신의 화두는 회중이어야 한다.” 이 자각은 내 사역의 기반을 뒤흔드는 지각변동 같은 사건이었다. 7년 동안 뛰어온 예배갱신의 주체에 회중이 빠져있었던 것이다. 예배의 형식과 행정, 미디어, 음향, 이벤트, 그리고 무대 위에 서게 될 찬양인도자와 싱어, 연주자, 편곡 등에 몰두하는 동안, 회중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동안 나는 평신도 예배 인도자와 예배팀을 세우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인도자들과 회중 사이를 가르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드는 오류였다. 모든 성도가 예배의 선수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회중은 7년이 지나도록 예배의 객체요 손님이었다. 여전히 수동적으로 따라오는 관객에 불과했다. 목회자와 예배팀은 뜨거운 열정으로 달려가지만 회중은 소극적으로 끌려오는 노새와 같았다.

 

하나님이 실종되다?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 2:9). 회중은 예배의 현장에서 최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야 할 선수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예배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회중은 관람객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마치 공연장에서 표를 사고 입장한 청중이 최고의 연주를 기대하듯이, 회중은 교회에 와서 헌금을 내고 안락한 의자와 쾌적한 환경, 고품격 서비스와 양질의 예배를 제공받기 원한다. 세파에 찌들어 지친 자신의 영적인 만족과 종교적인 흥분, 이왕이면 정서적인 즐거움까지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는 ‘의식(ritual)’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에 젖어있다. 일주일 동안 정신없이 살다가 예배에 지각하지 않고 나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모르는 곡이 나오면 주보를 샅샅이 뒤지고, 조금 오래 서 있기라도 하면 불평이 흘러나오는 등 예배를 관망하는 ‘구경꾼’으로 남아있다. 찬양인도자와 찬양팀은 변화를 추구하며 예배의 ‘고수’로 훈련받는 동안, 회중은 이들과 점차 멀어지고 있다.

한 가지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다. 예배의 유일한 관객이신 하나님 자리에 회중이 앉아서 예배를 평가하거나 점수를 매기고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이 실종된 것이다.

교회음악교수이자 워십리더인 배리 리츠는 회중 예배를 풋볼 경기장에 비유하여 예배인도자와 청중, 하나님의 역할을 설명했다.그는 전통적인 예배에서는 하나님이 코치요, 예배인도자가 선수, 회중은 관객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수정된 개념의 예배 모습은, 하나님이 유일한 관객이요, 예배인도자가 코치, 그리고 회중이 선수의 자리를 되찾는 것이다. 미국 유학 시 예배학 수업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그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배리 리치 자신도 이 개념에 그리 큰 무게를 실어 다룬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교회 음악가로서 ‘예배가 연주인가?(Is worship a performance?)라는 질문을 갖고, 무대 위의 연주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회중과 하나님의 상관관계를 풀어가다 보니 처음 이 주제를 다룬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비유를 인용하여 이 개념을 설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역하면서 이 원리가 현대교회에 주는 메시지의 거대한 무게를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예배의 선수는 회중이다

한 예배심포지엄에서 예배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반응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었다.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이시기에 하나님보다 앞서면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한쪽만 강조하면 인간편의 책임이 약화된다. 그 결과 우리의 예배는 과도하게 강요된 수동적 예식으로 침몰되고 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세기에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으나 수동적인 구경꾼 예배자를 양산해 내었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이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의 직분을 적극적으로 감당해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신자로 살아간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 4:23). 그래서 예배는 회중석에서 넋 놓고 앉아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주도하시는 신적 제의가 아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찾는다고 하셨을 때 그것은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선심 쓰듯이 대충 드려서야 되겠는가? 수동적으로 구경만 해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영과 몸을 포함한 전인격을 사용해서 전심으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한다(대하 16:9, 막 12:30, 렘 29:12-13). 예배의 선수는 회중이다. 이는 21세기 교회를 향한 혁명적 선언이다. 선수로 뛰어야 할 회중이 관객의 자리에 앉아 평가하고 있다. 하나님 자리에 자신이 앉아서 설교를 비판하고, 찬양에 점수를 매기는 전횡을 일삼고 있다. 회중이 관객의 위치에 나태하게 안주해 있는 것은, 종교개혁 이전으로 회귀하는 대재앙이다.

이유정 저, <잠자는 예배를 깨우라>(예수전도단, 2012) 발췌


7-justinlee_sss이유정

연세대학교(BA), 총신대원(M.Div.), 리버티침례신대원(Th.M., D.Min.)을 졸업하고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로 10년을 섬겼다. 현재 리버티대학교 예배학 한국과정 주임교수와 예배사역연구소 소장으로, 현대 예배현상의 신학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듀오 ‘좋은씨앗’이며, <오직 주 만이> 의 작곡가, 『잠자는 예배를 깨우라』와 교재 『성령의 지배를 받는 4일 예배훈련』을 집필하는 등 음악과 글로 예배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크리스천 아티스트이다. yjlee@libert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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