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 교회음악의 복음주의적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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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angelical Standards of Church Music

복음주의 교회의 삶 속에서 음악을 성숙하게 사용하기를 바라며 관심을 갖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1. 그 기준은 복음이 대상으로 삼은 문화 공동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과 글과 음악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해야 합니다.
  2. 예배드림의 경험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훌륭한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그들 자신의 최선의 것이어야 합니다 ㅡ 예배에 참석한 대부분의 회중이 공유하는 가장 의미있는 가사와 음악을 그들의 최고의 기량으로 연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겸손과 감사와 그리고 은혜로 드려져야 하며, 같은 문화권이나 다른 문화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것에 비해, 자신의 것에 대한 오만이나 혹은 수치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3. 각각의 특정한 문화 또는 소문화(subculture 소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독교 신학을, 그 신앙의 모든 신조를 적절히 균형잡고 지지하면서, 표현하고 강화해야 합니다.
  4. 예배, 선언, 교육, 목양, 친교와 같은 공동체의 신념에 관련된 모든활동을, 각각의 음악적 필요를 충분히 고려하여 표현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5. 감상적인 (the sentimental) 피하면서 신체적, 지적, 그리고 정서적 균형을 조심스럽게 맞추어서 전인격(the whole person) 전인격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6. 엘리트주의자나 난해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사람들을 피하면서 진실로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일부 독자들은 이 진술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고 실망할 것입니다. 당연히, 다양한 종류의 말씀과 음악적인 의사소통에 대한 회중의 잠재적 반응을 평가하는 기준을 개발하기 위한 무거운 책임감이 목사와 음악가 개개인에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더군다나, 기독교 예배의 본질과 교회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모든 예술을 훈련시키는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휘튼 칼리지의 음악원(the Conservatory of music) 학장이며, 기독교 예술에 대한 접근을 위한 복음주의의 선도적 옹호자인, 해롤드 베스트(Harold M. Best) 교회음악의 우수성을기대하지  못한 밖의 것에 대한 추구와 갈망(stretching and yearning for the unexpected)”이라고 정의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데, 우수성(excellence)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완벽(perfection)과 혼동하고 결국 좌절하게 된다. 이 사고방식을 극복하는 데 실패하면, 우리는 그것을 우월 의식과 동일시하거나 우리보다 더 잘 훈련된 누군가의 유일한 속물로 추정한다. 아니면, 이 무가치의 시대에, 탁월성은 과거의 일로 완전히 상관이 없는 부적절한 가치라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의 관점에서 보면, 간단히 말해서, 탁월성(excellence)은 계명이다. 그것은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다; 절대적인 이유는 그것은 관리(stewardship)의 규범이기 때문이며 피하거나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대적인 이유는 그것은 시시각각으로 그리고 성취에서 성취로 분투와 씨름과 배고픔과 갈증과 압박의 맥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는 동등하지 않게 재능이 있고 동등하게 이룰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예술가는 다른 예술가보다 낫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들은 각자 예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잘하는 것이고 뛰어난 것이며 탁월한 것이다.”

우리는 X, Y두 종류의 회중 모두에게예상치 못한 뜻밖의 것에 대한 추구와 갈망이 있는 한, 별로 안좋은 예술(bad art)을 선호하는 “Y” 회중에 질겁하는 것보다 위대한 예술(great art)을 선호하는 “X”회중에 더 이상 감명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취향 자체는 쓸모가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종종 우리를 사로잡는 우상숭배의 한 형태입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work)에서 믿음을 감지하시면 ㅡ 우리를 창의적으로 불만족하게 하고 창조의 놀라움 속에서 살기를 열망하게 하는 믿음 ㅡ 당시의(at the time) 성취수준에 관계없이 그분은 우리에게 미소를 지으십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단어는 당시에는(at the time)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잠재력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 계속 이동하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기대하셨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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