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49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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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송’은 미사 중 계단에서 부르는 가장 오래된 화답송가

레퀴엠 고유문‘층계송’(層階頌, Graduale)도 ‘입당송’과 같이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로 시작합니다. ‘그라두알레’는 라틴어의 ‘층계’(gradus)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본래의 명칭은 제단이나 기도문 낭송단의 계단에서 불려지는 ‘레스폰소리움 그라두알레’(responsorium graduale) 인데, 번역하자면 선창자(先唱者)와 그룹이 주고받는 ‘응창(應唱) 층계송’입니다. 미사를 드리는 중 ‘제1독서’(讀書) 순서에 제단 밑에서 복음서를 읽었는데 이 순서를 마치면 그 독서에 대한 응답으로 불러서 화답송(和答頌)이라고도 부릅니다. 화답송을 제단을 거쳐 사제에게 가면서 부르기 때문에 층계송이라 부르고요.

층계송은 미사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성가로서 모든 전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래 층계송은 시편 한 편을 선창자가 노래하면 모인 사람들이 후렴으로 응답송을 부릅니다.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et lux perpetua luceat eis.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In memoria aeterna erit iustus: (언짢은 소식에도 그는 놀라지 않으리니) ab auditione mala non timebit. (주께 바라는 그 마음은 든든하도다)

음악형식의 ‘레퀴엠’ 작품엔 대부분 ‘층계송’이 없습니다. 예컨대,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14악장 중 1 Requiem 2 Kyrie 3 Dies irea(진노의 날)…, 포레는 7악장 중 1 Requiem-Kyrie 2 Offertorium(봉헌송) 3 Pie Jesu(자비 예수)…, 베르디는 7악장 중 1 Requiem 2 Dies irea 3 Tuba mirum(곳곳 무담 진동하여) … 이런 식 이죠.

곡명 WHERE THE GATES SWING인 이 찬송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집회 음악가이며 8천여 편의 복음성가를 지은 가브리엘(Charles H. Gabriel, 1856-1932)이 작사·작곡하였 습니다.

이 시가 나오기까지엔 마음 저린 일화가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6년, 가브리엘이 프랑스 전선으로 떠나는 아들을 전송 하려고 부두로 나갔을 때 선실 문을 들어가려던 아들이 돌아다보며 아버지 가브리엘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아빠, 만약 살아 돌아 오지 못하게 되면, 이 세상에선 결코 열리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 집에서 뵈어요.”라고. 송영 후 시카고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아들의 마지막 남긴 말, ‘문이 세상을 향해 열리지 않는 곳’(Where the gates swing outward never)을 상기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네요. 이 찬송의 곡명도 이 대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찬송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잠시’와 ‘영원’입니다. 처음의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Just a few more days)와 마지막의 “주와 함께 길이 살리.”(And with Jesus reign forever)로 이 세상과 하늘나라의 대비입니다. 이는 절마다 나타납니다. 2절의 “눈물 골짜기” 와 “주님 품 안”, 3절의, “험한 산”과 “복된 날”, 4절의 “한숨”과 “기쁨”, 그리고 후렴의 “세상 짐”과 “빛난 면류관”입니다.

Just a few more days to be filled with praise, And to tell the old, old story;
Then, when twilight falls, and my Savior calls, I shall go to Him in glory.

Chorus:
I’ll exchange my cross for a starry crown, Where the gates swing outward never;
At His feet I’ll lay ev’ry burden down, And with Jesus reign forever.

관련 성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입니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10-11)

김명엽

연세대학교 성악과 및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추계예술대학교 성악과,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서울시합창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한국합창지휘자협회 이사장, 언더우드기념 새문안 음악교육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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