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호] 질투는 자신을 사르는 지옥불이다 – 콘스탄틴의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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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란 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행복하게 보이는 가정이라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곳이 많다. 세상 대부분 가정에는 외부인이 모르는 아픔과 가슴앓이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이곳이 불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콘스탄틴(Constantinus, 272~ 337) 황제의 가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는 그에게 ‘대제’(Constantinus Magna)라는 칭호를 붙여 그를 칭송하지만 말이다. 그는 적그리스도 라고 생각할 정도로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했던 디오클레 티아누스(Diocletianus, 245~305)의 후임으로, 정치적 배려로 공동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폰테 밀비오(Ponte Milvio) 해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막센티우스를 기적적으로 물리친 후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런데 그의 가정사는 질투를 절제하지 못하면서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 당시 출세의 유일한 지름길은 군인이 되는 길이었다. 콘스탄틴의 아버지 콘스탄티누스는 막시미아누스 황제(공동 황제) 의 근위대장으로 있다가 그의 양아들로 입적되어(293.03.01) 부제로 올라간 사람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이 독실했던 그의 아내 헬레나는 본래 귀족이 아닌 여관 주인의 딸이었다. 하급병사였을 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항상 흔한 일이었으며 지금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의 지위가 높아져 부제가 된 상황에서 그 결혼은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런 신파극 같은 상황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영부인이 이런 부분에서 이야깃거리가 된 예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흔한 예로, 공부 잘하는 가난한 청년이 산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하는 중에 외로움 때문에 시골 아가씨를 사귀게 되었고 아가씨는 고시 공부를 하는 애인을 지극정성으로 도와 결국 남자가 시험에 합격했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그때부터 시골 아가씨에게는 역풍이 불어 닥치게 된다. 그‘스펙’(요건)이라는 문제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펙은 무시할 수 없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역시 아버지 콘스탄티누스는 조강지처 헬레나와 이혼(292년)하고 황제 막시미누스의 딸 테오도라와 결혼했다. 그 후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콘스탄틴은 부하들의 추천으로 아버지를 이어 공동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절대권력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손댄 일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 드리는 것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일인자의 자리에서 한 일치고는 속이 좁다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권력 지향에 대한 욕망 때문에 내쳐졌던 어머니였다. 지극 정성으로 남편의 근무지인 최전방을 따라다니며 보필했던 충직한 아내이기도 했다. 때때로 구석진 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보았던 콘스탄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누구든 콘스탄틴이 되어 힘을 지니게 된다면 먼저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겠다는 동물적 소망을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눈엣가시 같던 계모 테오도라와 그가 낳은 이복동생들을 한꺼번에 처형해 버렸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콘스탄틴 역시 아버지처럼 아내와 이혼 하고 가문 좋은 파우스타와 다시 결혼(307년)했다. 파우스타는 황제 막시미누스의 딸이요, 후에 콘스탄틴과 싸워 패한 막센티우스의 친동생이었다. 그런데 콘스탄틴에게는 첫째 부인 미네르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뛰어난 아들 크리스푸스가 있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정적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 모든 정적을 물리치고 아버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도록 하는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콘스탄틴은 이 믿음직한 큰아들을 부제(Caesar)로 삼아 일찍부터 후계자로 키웠다. 그리고 갈리아 사령관에게로 보내 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경험을 쌓게 했다. 그래서 아들 크리스푸스는 일찍부터 수업을 통해 훌륭한 황제의 자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안개처럼 피어올랐으니 그것은 의붓어머니 파우스타와 장자 크리스푸스와의 불륜에 대한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정략적인 결혼으로 아내와 남편의 나이 차이가 컸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사실 콘스탄틴은 아내 파우스타와의 관계가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슬하에 이미 6남매나 두었고, 콘스탄틴이 친정 식구들(막센티우스)과 불화를 겪을 때 언제나 아내는 남편 쪽에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소문은 콘스탄틴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권력자는 항상 의심에 취약한 법이다. 그리고 불륜에 대한 소문처럼 고약한 것은 없다.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로 넘어가자니 찜찜하고 묻어두려고 하니 계속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결국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게 된 콘스탄틴 황제는 전선에 나가 있는 사령관 아들에게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독약을 마시라는 명령을 내렸다.

확인되지 않은 뜬소문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떡두꺼비 같은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 헬레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헬레나는 이 모든 농간이 며느리 파우스타가 꾸민 것임을 직감적으로 간파했다. 그래서 며느리 파우스타가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문을 걸어 잠그고 온도를 높여 질식사하게 했다. 한 달 사이에 콘스탄틴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질투로 인해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불륜의 소문에 대해 후대 역사가들은 이러한 의견을 제시한다. 즉 콘스탄틴의 총애를 입고 자식을 6남매나 둔, 실질적인 힘이 있는 아내 파우스타가 자신의 열 살 된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거짓으로 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전처의 아들이 후계자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할 목적으로 말이다. 마치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그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처럼 말이 다. 그 후 시어머니인 헬레나가 자초지종을 밝혀내게 되었고, 누명을 씌워 손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며느리 파우스타를 죽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설이 많은 역사가에게 설득력 있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 가려진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이런 일로 사랑하는 아내와 믿음직한 아들을 한꺼번에 죽음에 이르게 한 콘스탄틴 대제가 냉정함을 되찾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고통으로 괴로워했을까? 더구나 질투 때문에 죽인 아들에게는 이미 귀여운 손자까지 있었다. 손자 사랑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하지 않나. 귀여운 손자가 방실방실 웃으며 할아버지를 찾을 때 얼마나 큰 후회로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까? 느지막이 태어난 손주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아내는 말한다. 손주는 그런 존재인데 말이다.

콘스탄틴은 질투로 자신의 이성이 마비되게 한 수도 로마에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로마를 떠나 저 먼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겨버렸고 다시는 로마를 찾지 않았다. 짧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그는 너무나 파란만장한 여정 을 걸어가야 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세례를 계속 미루다 죽기 전(337년)에야 겨우 받았다고 한다. 한 가지 첨가할 부분. 아내 파우스타는 콘스탄틴과 결혼 한 후에 자신이 살던 저택, 라테란 성당(Lateran Basilica,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 터를 당시의 감독 실베스트르 1세에게 헌납한 바 있다(324년). 그가 살던 정원 일부분이 지금도 라테란 성당 뒤편 에 공터로 남아있다.

그리고 324년에 콘스탄틴은 이곳에서 제1차 세계 공의회를 개최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치열하게 일어난 도나투스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런 일들로 종교회의를 주재하며 공동체의 화해를 위해 힘쓴 것도 아픈 경험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속죄를 위한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일까? 우리는 지극히 단편적인 안목으로 상대방을 질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질투심을 행동에 옮기고는 평생을 회한 속에서 살기도 한다. 복수심에 침잠될 때 상대방을 잔인하게 공격할 수 있으나 그것은 순간적인 쾌감을 줄 수는 있어도 곧 캄캄함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게 된다. 콘스탄틴 황제는 죽인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의 잔영이 따라다녀 죽을 때까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교회는 그를 축복하고 칭송하였지만 말이다.

용서하는 삶은 잠깐은 힘들어도 평생을 노래하게 한다. 질투심으로 괴로울 때, 기도하고 찬송함으로써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 자에게 주님의 평안함이 깃들게 된다. 고로 이를 악물고 복수심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콘스탄틴 대제의 삶을 통해 교훈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질투심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님은 현재 로마 한인 교회 담임목사로 35년째 시무하시고, EMI 유럽 목회자 연구원 창립및 원장, 유럽 Koste 후원회장, 디모데 선교회 회장및 디모데 로마 선교 아카데미 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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