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호] 노래로 가르치며 권면하며 TEACHING & ADMONISHING IN SONG By Larry Demp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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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에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고 주님께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하므로 노래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 가운데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거하도록 하십시오” (3:16 저자가 택한 원문 번역)

바울이 우리에게 준 대단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예배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그 일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놀라운 계시이며 도전이며 책임입니다! 제가 예배자로서 본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권면을 공급하는 지체의 멤버가 되어야 한다면, 저는 제 안에 풍성히 거하는 말씀을 소유해야 합니다.    

내재하는 말씀

말씀의 풍성한 내재는 여러분이 성숙한 예배 어휘(worship vocabulary)를 갖게 해줍니다. 지역교회의 회중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난 새 신자들을 주목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할렐루야, 고맙습니다 예수님, 하나님께 영광을같은 두어 개의 기본 찬양 구절을 알아차리고, 공동예배 시간에는 이 정도가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할 때 그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의 예배 어휘는 예배 때마다 늘어납니다. 그들의 손이 높이 들리고 그들의 입에서 아름다운 찬양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당신은 나의 머리를 드시는 분, 존귀한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영광의 왕이시며 열방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말씀이 그들 가운데 풍성히 거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찬양이 그들 가운데 쌓인 말씀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배리 그리핑(Barry Griffing)의 말대로 말씀은 안에서 노래는 밖으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며

우리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통하여 가르치고 권면합니다(자발적 찬양과 주님의 예언적 노래(새노래)의 회중찬송을 뜻함). 예배 가운데 존재하는 이 교육 요인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주 본의 아니게 하나님과 천국과 그리스도인의 삶, 성경 주요 교리의 다양한 요점들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가르쳐왔습니다.

오랫동안 대부분의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은 주로 천국을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로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과 그와 같음으로의 변화가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임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우리의 음악을 통하여 우리는 믿는 자들에게 언제인가는 즉각적으로 천국으로 휴거해서 모든 고난이 지나갈 때까지 분투하며 견디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후엔 천국에서 수정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고, 진주 문의 궁전에서 살며, 온종일 구름 위를 떠다니며 비파를 연주하는 등등 그 음악은 대체로 숭고한 나태함의 기쁨에 도취한 상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노래를 통해 자니 캐시의 가스펠 송(daddy sang bass and mama sang tenor)의 가사대로 천국에 대한 것들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는 언덕 위의 궁전을 갈망하고 울먹이며 간구했으며 우리의 목표는 영화스러운 땅에 세워진 오두막을 갖는 것임을 음악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오순절 교파의 젊은 세대들은 감상적인 울음의 돌출(간혹 그것을 성령의 운행으로 오해하고), 혹은 때때로 비명과 격렬한 전율과 절제되지 않은 몸의 경련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덕을 세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표현들을 조성하는, 이런 유형의 종교음악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저도 이런 교회의 환경에서 자랐고 이 교파의 신도들은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신실하고 정직했습니다(저의 오순절 유산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전에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영적예배의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개념은 성령이 강타(hit)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구도 움직이거나 춤을 추거나 기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on the Mainline)의 예수”,  당신이 무얼 원하는지 그분께 말씀드려요”,  또는 그런 비슷한 소울(soul)지향적인 노래를 반복한 후에야 감정의 영역 안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진리가 거의 없는 노래들을 부름으로써 그 개념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이 다시금 노래로 불리고 있음이 이상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놀라운 능력으로 운행하셔서 성경, 특히 시편이 교회에서 새롭게 약동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예배 코러스로, 성가 찬양곡으로 불리고 있으며, 심지어 음악 작품 전체가 성서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순수한 어떤 교리를 얻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음악으로 가르침과 권면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건전한 교리를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훌륭한 믿음의 옛 찬송가 작시자들은 이 진리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면류관 가지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만입이 내게 있으면”, “시온성과 같은 교회”, “주 예수 이름 높이어”,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찬송시를 썼습니다. 이런 항상 새로운” (always-current) 찬송가들은 좋은 교리를 가르칩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은 1800년대에 미래주의가 도래하기까지 건전한 교리 가운데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정통 교리가 기독교의 교파들에 스며들었고 노래들은 곧 이 미래파신학을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천국, 궁전, 황금 길, 휴거 그리고 금방이라도 날아 올라가는 것 등등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능력과 존귀와 통치와 영광에 대한 노래는 무시되었습니다.

그러나, 할렐루야! 지금은 하나님의 주권적 시편이 불리고 장엄한 찬송가가 들리며 시온이 다시금 기뻐하고 있습니다. 주의 전이 시온성과 같은 교회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기에 맞추어 춤추고 기뻐하고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찬송을 불러 우리 왕의 영화로운 임재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도의 즐거운 원리를 배우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섬김의 심령을 창조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있습니다.

지금은 역사적인 때입니다. 사도행전 2:4에서 주님께서 홀연히 그의 성전인 교회에 오셨습니다(말라기 3:1참조).  그리고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권능을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백성입니다. 우리는 예언적 목적의 백성입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계속합시다. 우리의 입에는 아낌없는 찬양과 두 손에는 말씀의 양날의 검을 들고 머리에는 은혜의 늦은 비와 이슬방울을 맞으며 시온성으로 올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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