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토브와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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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의 본질과 흐름

1. 선함은 존재적 선하심과 관계적 선함이 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막10:17-18)

1-1 존재적 선하심

존재적 선하심이란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일컫는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요10:11-12)

1-2 관계적 선함

관계적 선함은 성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일컫는다.
예수에 의하면, 존재적 선하심과 관계적 선함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아버지로 부터 아들에게 아들로 부터 성령 하나님으로 그리고 이 연결은 아들 하나님으로 부터 그리스도인에게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성령 하나님이 도우신다.

이 하나됨의 흐름이 연결되고 공유하여 다시 이 하나됨의 고리는 삼위 하나님의 선하심에 있는 고도의 연결고리로 회귀하는 것이자 동시에 성부 하나님의 본체에 계신 선하심에 계신 거대한 메타포의 중심으로 순환한다

1-3 하나됨의 조건

선함은 서로 다른 존재를 하나로 하나되게하는 신비이다. 하나되는 선함의 공유는 주시는 분의 적극적인 채워주심과 받는 자의 빈 공간으로 인해 가능하다 한다. 그러나 다른 이물질이 없어져야 가능하다. 다른 이물질은 또 다시 서로 다름의 자리로 왜곡되고 변색되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은 선하심만을 공유하는 같은 선함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이물질이 없는 선하심이 공유되는 이물질이 없는 관계의 조건은 온전한 하나됨으로 각자의 선함으로 충만하다.

1-4 삼위일체의 신비

본체의 존재적 선하심이 새로운 본체의 관계적 선함이 연결될 조건에서만 하나이다. 그 선함은 주시는 자와 받는 자의 선의 경지가 같다 그 선하심의 종류는 주는 자의 것과 받는 자의 것이 다르지만 하나의 선함의 톤을 가지고 같은 성질이며 같은 행동을 일으킨다.

1-5 비움, 선함으로 하나됨의 전제 조건

그런데 이것이 연결되어 그 존재적 선하심에서 비롯된 채워진 관계적 선함이 순환하려면 (선함에 참여하여 주고 받으려면) 관계적 선함을 지닌 성자 하나님의 마음공간이 완전히 비워 본체인 성부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 빈 공간을 채우신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막10:19-21)

1-6 하나님됨은 이물질이 없을 때 가능

관계적 선함을 받을 자격을 얻으려면 성자의 하나님이 지닌 관계적 선함을 따라야 하는데 그를 따른다 함은 관계적 선함을 받는 자가 자기 안에 있는 존재적 공간에 다른 이물질을 비움으로만 가능하다 한다.

1-7 재물보다 큰 선하심

그에게 많은 재물이 있어 이를 버리지 못함은 선하심이그것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보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선하심이 장래에 끼칠 어마무시한 보물을 상회하는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8 선함은 위임되고 위탁하여 선순환한다

하나님은 선하심의 본체로 계신다 아들 하나님께서 선하심의 관계를 위임받으심으로 관계적 선함의 주체가 되시고 이는 또 아들 하나님께 위탁받은 인간은 관계적 선하심의 주체가 되고 다른 인간과 성령 하나님과 하나됨의 신비를 만난다. 이웃들은 관계적 선하심의 또다른 주체가 되고 또 다른 이웃들에게 관계적 선하심을 선순환시킨다.

1-9 선함은 신뢰의 하나됨을 이룸

다른 이들의 마음 변경에 있는 신뢰의 신비을 이루시고 이를 선순환하게 하신다.예수는 자신은 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선한다 하신다. 또한 자신은 선한 목자다 라고 하셨다.

도대체 선함이 무엇이길래 자신은 결코 갖고 계시지 않은 것일만큼 고유하고 위대한 것이라 칭하고 또한 자신의 성육신에 깃든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선한 인자와 그렇지 않은 삯군의 배타적 행동과 비교해 자신은 선한 쪽에 계시다 말씀하셨는가 ?

1-10 두가지 비밀, 선하심과 영생

영생을 구하는 신실한 한 청년에게 특별한 사랑을 느끼시고 두가지를 암시한다 선하심과 영생의 비밀에 속한 땅에서의 거듭남이다

신실한 청년이 예수께 대하여 선한 마음에 계시겠다 우러르며 그를 선한 분으로 호칭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 선함은 오직 성부 아버지께만 계시다 이르신다. 자신의 선함으로는 아버지의 선함에 도달할 수 없으니 선함은 오직 그 분에게만 붙여야 맞다고 하신다.

언뜻 선함의 독립성과 그 깊이의 신비를 강조한 듯 하지만 그 후에 예수의 어록을 통해 보면, 선함의 순환에 대하여 그 선함이 위임되고 위탁되고 있음을 가르친 것이다.

1-11 위탁의 조건, 비움

자신도 선함의 본체가 아니라 위임받아 수용되어 받은 것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신실한 청년에게도 자기에게 수용된 선함이 그에게 위임될 수 있기 위해 그 선함이 놓여질 마음 그릇 안에 이물질을 비우라 가르친 것이다.

1-12 오직 선하심만으로만 채워질 마음 그릇

그렇다면 그에게 제안한 물질에 대한 집착은 마땅히 선하심이 차지해야할 공간에 놓여진 이물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선함을 받을 공간에 있는 이물질을 버리는 것으로 선하심을 준비할 수 있음을 가르치시고 과연 지금 이 이물질을 버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묻고 계신 것이다

또한 예수는 자신의 선함이 있는데 그건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신실하고 헌신된 사랑의 행위를 일컬어 그렇게 예수 자신의 부분적 선함을 스스로 일컫는다.

자신이 선함을 추구하는 이요 삯꾼은 목자가 아니니 그 마음에 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마음이 없는 관계에서 온 것이면 거짓 관계요 악한 것이라 한다

앞의 성구는 본질적 선함에 관한 것이라면 뒤에 것은 관계적 한마음과 배타적 두 마음에 올바른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한 준거를 적용할 때 유비적 선함에 관한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4-15)

1-13 비움으로 하나됨

아버지가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은 둘이 하나됨에 있다 하신다 하나됨에 있지 않은 사랑은 거짓 관계라 한다. .그것은 선한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와 하나됨을 추구하시고 그의 선함을 아들에게 함께 공유하게 하신 거라면 신실한 청년이 예수께 찾아와 그의 선하심을 엿보고 이 땅의 것이 아닌 영생을 추구하고자 한 마음을 보였을 때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 하신 것은 자신과 하나됨으로 들어오라 하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일체화되기를 아들 예수의 일체화된 행동을 모본으로 보라하시고 우리에게도 일체화 될 때 그 구원이 하나됨으로 가능하다 알린 것이다.

예수의 논법은 두 단계로 서로 닮았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선하시고 가장 아름다운 유일한 본체이시다 그리고 예수는 그 본체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에게 권한을 주셔서 그 본체에 머물기를 허락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예수가 자신의 양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마음에 공감하시고 이를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들어오게 하사 예수가 취했던 목자로서 양을 속하게 하여 자신의 신뢰와 양의 신뢰를 하나되게 함 같이 예수를 하나님께 속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에게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믿고 그 문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선하심의 한가지 본체로 일체화할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도 예수처럼 하나님이 예수께 그리 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선한 목자로 대할 때 예수로부터 우리에게 선한 본성으로 일체화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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