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호] 지성소로의 여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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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의적용

   저드슨 콘월은 찬송 인도자가 예배의 모든 과정에서 “지성소로의 여정”을 반영하는 예배의 여정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 패턴의 적용을 위한 성경적 뒷받침으로 시100편을 인용합니다. 

   인도자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으며, 그들을 어디로 안내하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언제 도달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콘월은 말합니다. 콘월의 “예배 진행”은 5단계 입니다.   

첫 단계: 성문 밖에서의 개인간증의 노래

    처음의 목표는 성전문 밖, 캠프에 있는 예배자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예배자들은 사람들과 장소와 주위상황과 개인적 필요에 관심이 있어서 아직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예배 인도자는 부드럽게 그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에게 동일시할 만한 것을 제시합니다. 개인적 간증의 찬송, 복음 성가, “나”로 시작하는 노래들, 개인적인 상태와 경험에 대한 노래 등등은 모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역자 주: David Williamson은 feature song즉 기능성 노래를 추천한다).

“회중이 충분히 연합할 때까지 간증의 노래들을 즐기며 부르게 하십시오”라고 콘월은 말합니다. 존 윔버의 5단계 예배곡선의 초청단계와 비슷하게 들리지요? 그렇습니다, 콘월은 복음성가를 분명하게 언급한 것 이외에는 다른 바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생각입니다(회중친송의 범위를 확장시킴).ㅡ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내 주가 주신 이 노래는”, “Bless That Wonderful Name of Jesus” 같은 복음성가에 속한 노래들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역자주: 새로운 생각이기 보다는 콘월과 윔버의 선곡의 취향과 선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단계: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콘월은 말합니다:

동쪽문을 지나 성전의 바깥뜰 (the outer court)로 들어가는 행렬은 즐거운 행진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결코 슬픔에 잠기거나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하나님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드림에 중점을 둠으로서 그들의 사고방식의 대부분을 그들의 하나님에게 두게 될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의 찬송을 흔히 찬양의 초기단계라고 할지 모르지만, 경배 (adoration)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중들은 아직 예배의 적절한 반응을 표현할 만큼 하나님의 임재에 충분히 가까이 이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Cornwall, Let Us Worship, 156).

   시24:7은 노래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찌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이 문들은 우리의 마음의 문들입니다. 우리의 왕께서 우리의 마음의 보좌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째 단계: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중점이 하나님의 사역에서 그의 속성으로 바뀌는것은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욱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콘월은 자아에 촛점이 맞추어지는 혼적예배 (soulish worship)는 성전문 밖이나 성전뜰 안에서 예상된다고 솔직하게 시인합니다:

혼적예배는 느낌 (feeling)이 동기가 되며 외적 자극에 의존한다….만약 “예배 순서”가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감상적인 이야기들과 심리적 자극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혼적 예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당히 많은 미국의 “복음주의적 예배”와 “영가적 음악” (gospel music)은 근원과 결과에서 모두 혼적(감상적 soulish)이다.

하지만 콘월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멈추게 하지 않고,  성소 안에서 일어나는 더 순수한 예배를 향해 밀고 나갈 것입니다.  

네째 단계: 성소 안에서의 엄숙한예배; 그리고

다섯째 단계 : 지성소 안에서

   이 단계에서 모든 관심은 이제 오로지 하나님께, 예수님께, 또는 성령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콘월은 설명합니다: “거기서는 인간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나타내심) 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소 안에는 고요한 경건의 기운이 공간을 감싸고 있습니다: 깜박거리는 등잔의 불꽃, 향내, 그리고 경애의 체루빔 (수호천사)의 쭉 뻗은 날개가 그 분위기에 기여합니다. 콘월의 성소에서의 회중의 예배드림의 묘사는 이와 같은 경건을 반영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예배 인도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를 지적합니다.

예배인도자가 사람들을 성전 뜰로 차근차근 잘 인도하여 성소까지 이르렀다면 사람들의 영적 반응에 도약이 있을 것입니다.단순한 혼적이며 감정적인 반응 대신에, 그들 안에 깊이와 헌신을 지닌 인간의 영혼으로부터의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손벽을 치고 기뻐하며 찬양을 하다가 이제는 얼굴이나 손을 들고 눈시울을 적시며 감격으로 목이 메이는 경건한 반응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 왔다는 인식이 있으면 가벼움과 경솔함에서 진지함과 냉철함으로 들어설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너무 많은 인도자들이 감상적인 감사의 코러스로 회중들을 다시 성소의 바깥뜰로 갑자기 잡아당기는 심각한 실수를 합니다. 예배 (경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회중을 재촉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찬송하게 하십시오: 어떤 코러스든 어떤 가사의 찬송가든 그때 그들이 느끼며 행하고 있는 바에 진솔하게 표현하는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게 하십시오. 마음은영혼보다훨신빠르게하나의개념에서다른개념으로옮길있습니다. 영혼이 주님의 임재하심을 인식하고 음미할 시간을 배려하십시오.

   그저 경배하십시오. 영리함과 재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반응을 위한 지시는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경배하게 하십시오. 침묵은 인도자에겐 위협적일지 모르나 예배자에게는 황금과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지속되는 올간 코드와 인도자의 입술에서 읍조리는 성령의 노래 (신령한 노래)는 오랫동안 온 회중의 경배의 반응을 나르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역자 주 : 성만찬 기획에 참조). 

   예배 인도자에 관하여, 콘월은 이렇게 말 합니다, “인도자가 성공한다면 그(녀)는 송 리더이기 보다는 예배자들의 인도자 일 것입니다.”

마무리

   두 가지 선택이 이 경건한 예배 (경배)의  마무리로 부각됩니다. 지성소 단계가 끝나고 경배의 경건의 시간을 가진 후에, 회중은 “주의 임재 안에서” 자리에 않거나 혹은 설교 사역을 위한 축하의 찬양을 하며 성소의 바깥뜰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김영국 목사
김영국 목사님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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