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 03 그리기 전에 마음에 예수님을 담은 사람 –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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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이름 짓는 법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우리의 이름은 단순한 데 비해 서양인의 이름에는 세례명이 있는가 하면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이나 성공한 가문의 이름을 덧붙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름이 길고 동명이인도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도 다른 레오나르도와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빈치(Vinci)’라는 동네 이름을 첨가한 듯하다. Da는 ‘~의’, ‘~로부터’이므로 ‘빈치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이 되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특별한 예술가였다. 통계학자 데이비드 뱅크스(David L. Banks)는 「천재 과잉의 문제」라는 논문에서 인류 역사에서 나타났던 세 위대한 천재 집단을 추려냈다. BC 440~380년의 아테네와 1440~1490년의 피렌체, 그리고 1570~1640년의 런던을 뽑았고, 이 셋 중에서 가장 화려했고 풍부한 기록을 남긴 곳이 피렌체라고 했다. 당시 피렌체는 인구 7만 명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했다. 그런 도시에서 어떻게 그리 많은 천재가 짧은 기간에 우후죽순처럼 배출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신비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천재 중 한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집을 안다는 P의 안내로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가 태어난 토스카나 지방은 낮은 구릉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림 같은 풍광이었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이 이곳 풍경을 담기 위해 즐겨 찾는다고 한다.

레오나르도가 태어난 ‘빈치’(Vinci)는 감람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이스라엘의 감람산에 있는 감람나무는 수령(樹齡)이 2천 년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곳의 감람나무들도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얼마나 감람나무가 많은지 가로수조차도 감람나무로 구성될 정도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감람나무 가지들을 헤쳐 가며 구릉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어느 건물 하나가 오른편에 고즈넉하게 서 있다. 그 건물이 바로 레오나르도가 출생한 곳이라고 한다. 다른 집은 없나 고개를 돌려보니 500여 미터 떨어진 저편 구릉에 한 채가 있을 정도로 아주 외딴 곳이었다. 그 건물을 보더니, 동행한 이들 중에서 장성의 깊은 시골에서 왔다는 K가 말한다. “내 고향 시골보다도 더한 곳이군요.” 이런 시골의 작고 외딴곳에서 세상을 감동케 하는 천재가 태어났다니 놀랍다. 아주 허술한 표정의 그 건물은 수리 중인지 일부를 판자로 가려 놓았다. 부끄럼을 타는 소녀처럼.

안내를 위해 앉아 있는 아가씨의 말에 따르면 레오나르도의 아버지는 공증인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 살 때 조금 떨어진 아랫마을 빈치(Vinci)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14세 때 피렌체로 이주하여 베로키오(Verrocchio) 공방에 들어갔고 28세 때부터 유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땅의 수많은 예술가가 당대에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하고 가난한 길을 걸어가는데, 그런 면에서 레오나르도는 행복한 예술가가 아니었나 싶다. 빈치는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 레오나르도로 인해 유명해진 곳이다. 그의 이름으로 된 식당이나 가게들도 여럿 있고 말이다. 약삭빠른 상인들은 성공한 이름을 상호로 사용하는 데는 항상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우리가 아는 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천문학자, 과학자, 음악가 등… 한 가지만 잘해도 세상의 대접을 받는데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하였으니 그는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 다양한 재능들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다. 그의 대표작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의 교회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리고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던 것을 팔아버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암굴의 성모〉(Madonna of the rocks)와 〈모나리자〉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 중에서 〈모나리자〉를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긴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이 〈모나리자〉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또한 철학자였다. 그가 말하기를, ‘대상의 내면이 없다면 그 그림은 죽은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표면적인 그림으로 만족하지 않고 대상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예술가였다. 그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받침대 위에 올라가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며 종일 서 있곤 했다고 한다.

그는 그림의 윤곽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희미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창안했는데 그것을 ‘스푸마토’(sfumato)라고 한다. 이것은 석회를 바르고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면서 형성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보는 이가 상상할 수 있도록 희미한 윤곽선과 스며든 부드러운 색채의 조화로움으로 여운을 남게 했다. 모나리자의 눈과 입의 모습에서, 보는 이마다 해석을 달리하게 하는 신비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런 현상 때문이다. 그때까지의 그림은 무엇인가 딱딱한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대상이 살아있고 영혼이 존재하는 것 같은 생생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사물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남다른 고뇌를 겪어야 했다. 그는 부드러운 색조와 명암을 십분 활용하여 그림에 반영했다. 그의 대표작 〈모나리자〉 속 은은한 미소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천재에 열광한다. 그렇다면 천재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그가 탄생한 평범한 시골집, 벽난로가 있고 아주 단순하고 질박한 그 모습에 천재의 탄생과 관련된 특이한 점은 없다. 다니엘 코일(Daniel Coyle)은 그의 책 『탤런트 코드』(The Talent Code)에서 연구 결과에 대해 언급했는데, 천재는 뇌의 미엘린 층이 두꺼운 특징이 있으며 미엘린 층을 두껍게 만드는 것은 스킬의 심층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그 심층 연습을 위해서는 동기가 요구되고, 인정과 격려, 칭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피렌체에는 예술가들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그들은 예술가들을 존중했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래서 당시의 젊은이들은 출세를 위해 너도나도 공방에 들어가 그림이나 조각을 배우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도 있었다. 과연 그들이야말로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조선 시대 장영실은 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세종이 그의 재능을 높이 사 발탁함으로써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곳곳에 숨어있는 천재들을 발굴하여 재능을 꽃피워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마찬가지로 좋은 시절에 태어나 코드가 맞는 후원자를 만났기 때문에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환쟁이 취급을 받다가 천재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한 사람의 천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빛나는 영향력을 끼치게 됨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유감없이 하고 싶은 일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의 그런 삶이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가 그린 그림 속 중심인물의 은은한 명암을 통해 그가 강조하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가 언제나 드높여야 할 그분을 향한 신앙의 표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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