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호]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0
114

시20편 2
성소와 시온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시20:2)


번역)
<직역> 성소에서 그에게 도움을 보내고 시온에서 그에게 힘 주시기를 빕니다


<의역> 성소에서 네게 도움을 보내시고 시온에서 네게 힘 주시기를 빕니다


1절에서는 삶의 정황에서 특별히 야웨의 모든 창조물인 인간, 그들의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원 창조자이신 분의 도움과 특별히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길을 맡은 야곱의 후원자 하나님을 구한다
2절은 야곱의 행로에서 야웨의 현존재로 계신 성소에서 (왕상6:16) 그 분의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지파 가운데 택하지 않으시고 오직 다윗을 택하여 주의 백성을 통치하게 하였다는 전래에 의해(왕상8:16) 그리고 그 분이 계시고 기름부으시고 곤고한 백성을 피난케 하시려 세우신 (사14:32) 시온의 터에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한다.


줄기
다 하나님 한 분 같으나 하나님의 아래 계열에서 보면 한 줄기, 외줄기다. 한분이지만 그 분의 지배를 받는 자는 큰 줄기에서 선택한 공동체의 작은 줄기로 그리고 외길 한 영혼에게로 머문다. 야웨께서 선택하시고 물적 토대가 된 성소와 시온의 땅이란 선택한 한 줄기에서 난 자다.


정치적으로, 공동체적 정체성으로는 그렇다. 영적으로는 그 한 길을 꾸준히 가면 대세는 하나님의 중심이 머무르실 거라는 확신이 있는 길이다. 그 길을 가는 민족 백성 모든 지파 그 길을 인도하는 선지자 정치가 방백 백성들까지 하나님은 그 길을 합당히 여신다는 것이다.
올림 방향과 관계성

실은 이 기원의 목적적 방향은 내림방향이 아니라 올림방향이다. 하나님이 그 위에 계심을 강화시킨다. 때문에 한줄기 위에 계신 하나님이 강화되면 될수록 한줄기 내림 또한 강화된다.이는 커다란 흐름이 또한 하나님과 공동체의 신앙 이정표와 깊은 관계성을 드러낸다
한 마음으로 달려가는 과정


아래 구절은 아래방향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과 나누는 독점적인 기원문이다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왕상8:44-45)


특별히 삶의 정황과 정치적 공간 공동체적 보호처인 성소와 시온이 그들의 호소와 믿음의 중심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때때로 이러한 신앙은 간구와 기도 없이 장소와 건축물 자체가 보호막이 되는 것 처럼 왜곡된다 그 건물이 속하는 민족이 또는 지배자가 보호막 안에 속한 것처럼 왜곡된다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대하20:8-9)


하지만 원문을 보면 성소와 시온이 곧 이 모든 환난으로 부터 구원하는 부적이 아니라 악이 백성 가운데 임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네가지 종류인 칼과 심판과 전염병과 기근이 닦칠 때 주의 이름이 성전에 있으므로 그의 이름으로 부르짖을 때 이를 돌이키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성소에 있을 때 이것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성소신앙이란 회개와 정결이 작동하는 행동을 통한 구원이지 건물(성소)이나 장소(시온) 자체가 구원의 직접 원인이 아니다


가능성을 필연회득의 정수로 여기는 구원 속죄 교리들은 어찌보면 다 미신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무조건적인 치유와 보호와 회복과 구원을 이끌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 분과의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정결이 전제된다.


먼 거리 가까운 거리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으로 부터 지정학적인 먼 거리로 갈 때에는 죄와 부정과 악함에 접근하는 행동이 반드시 일어나고 이는 인간을 반드시 악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예민하게 지적하고 있다.


시온과 성소를 강화하는 근본적 원인은 하나님으로 부터 그리 멀리 가지 말라는 뜻이지 그 곳에 구원의 샘이 있어서 그곳에 가기만 하면 된다 하는 것은 또한 먼거리를 가게하는 것이다


장소인 성소나 시온을 마치 날자인 토요일이 안식일이니 그 날이 부적이 되어 토요일이라는 일월성신의 날자지킴과 오직 그 이름으로 예배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난다는 먼거리 신앙을 마치 가까운 거리 신앙인 것처럼 여기고 행동에 초점을 두지 않고 행위에 초점을 두는 것은 예수가 그토록 미워하고 비판하던 위선과 거짓 신학이다.
삶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육체의 욕망과 수고의 마땅한 추구와 헛된 추구를 멈추고 단절하여 전혀 다른 역방향의 시간인 안식의 시간을 가짐(누리고 하나되고 충만해짐)으로써 하나님과의 먼거리를 가까운 거리로 좁히라는 뜻이다.
거리를 좁히면 하나님의 영이 지닌 안식이 회개의 영으로 전환될 것이니 주의 음성을 듣고 부르짖으며 정결을 이룰 때 하나님과 함께 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예배)는 말이다.
성소와 시온의 장소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날자가 뜻하는 것은 거룩히 지키라는 원의와 하나님과 가까운 친밀의 거리 좁힘 중심이 있음을 모르니 요일과 일월성신과 건축물과 예배당과 성소와 성괘가 부적이 된다 이는 토요일과 성소와 예배당에 주가 계심을 믿는 것이지 주를 믿는 것은 아니다
다윗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
우리가 구약을 해석할 때 그 방향이 잘못될 여지를 충분히 예고치 않고 분석하면 예전의 순기능만 약속하고 역기능을 무시하게 된다. 유대종족주의는 신앙과 관련이 없다. 그저 그들의 민속신앙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유산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기에 그 모든 절차와 관습에 뜻이 머물러 있다. 행위에 빠지면 종족주의에 불과하지만 행동으로 살려낼 때 신앙함에 이르는 것이다


그(앗수르)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사37:34-35)
이사야의 본문은 궁극적으로 주의 마음이 있는 곳을 말씀하신다. 주의 나라가 주의 마음 있는 곳에서 난다는 뜻이다. 다윗의 나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확장되어야 하지 유대나라로 가면 배타적 토속신앙으로 가는 것이다


(공부)

샤라흐שָׁלַח 보내다 가게하다 확대하다 풀어주다 간단히 버리다 넘겨주다 그치다 던지다 뿌리다

사드סָעַד 돕다 보조하다 보호하다 유지하다 머물다 확립하다 힘을주다 평안하게 하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