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호]천국을 소망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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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걷던 중 한눈에 보아도 오랜 풍상을 겪었을 한 건물 앞에 이르자 교우는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이 건물이 바로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생가예요.” 피렌체 시내 중심가에 있는 5층 정도 높이의 아담한 옛 건물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집의 크기나 높이로 지위나 부를 과시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중세 도시인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에서는 상대방보다 더 높이 올리려는 탑 높이 경쟁이 치열하였으니 말이다. 인간의 유치한 발상이란 헛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인간의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은 전혀 변하지 않는 원초적 본능이 아닐까 싶다. 단테는 이곳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대에 와서 가문이 기울게 되었다. 양반이 가세가 기울면 체면 때문에 더욱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단테도 그랬을 것이다.

교우는, 단테의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작은 성당을 가리키며 “이곳은 단테가 아홉 살 때 평생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곳입니다”라고 말한다. 들어가 보았더니 나무 의자를 두 줄로 놓았고 여유 공간이 없는 작은 성당이었다. 세월은 흘러도 역사는 과거의 어떤 지점에 멈춰 서서, 그 안에서 나오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변함없는 교훈을 주기도 하고, 단테의 전 생애에서는 아홉 살 때 만난 베아트리체가 사상의 동반자이자 이상을 형상화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게 했다. 글을 쓰든 무엇을 하든지 말이다.

이상하게도 르네상스 시대의 불을 지폈던 문학가들에게는 이런 공통점이 있다.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Giovani Boccaio, 1313~1375)의 작품에는 언제나 피아메타(Piameta)라는 여인이 등장하고, 《칸초니에레》(Canzoniere)를 쓴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의 작품에는 라우라(Laura de Sade)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이 여인들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그들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늘 바라보고, 닮기를 소원하며 언젠가 만나기를 소망하는 영원한 대상이었다. 그 대상을 그리며 현재의 고난을 참아내고 또한 자신의 결핍을 보충하려고 발버둥 치게 된다. 그것은 곧 기독교의 성화를 연상케 한다. 그 대상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단테는 그 영원한 주님을 바라보며 영적 안목으로 세상을 관조하였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끊임없는 고난의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젊어서 피렌체의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35세에 도시국가의 최고 지위에 올랐다. 그 정도로 재능이 탁월했고 학식과 지도력도 갖추고 있었다. 임기는 2개월 동안이었는데, 그 당시 피렌체는 당파 대립이 극심하던 때여서 나라 상황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가 상대편 당파가 실권을 잡게 되자 이내 숙청되고 말았다. 정치에서 패한 자는 항상 그렇듯 그는 반역자로 기소되었다. 1302년에는 2년간 나라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 결국, 체포될 경우 화형에 처한다는 무서운 선전포고와 함께 국가에서 영구추방을 당했다. 나라라고는해도 사실 작은 지역인 피렌체 도시국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 이후 단테는 자신의 추억과 향수가 묻어있는 고향 피렌체 땅을 다시는 밟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쓰라린 심정으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신곡』은 단테의 이상을 기록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신곡』은 당시 서민들의 언어이자 라틴어의 사투리인, 이탈리아 방언으로 쓴 최초의 작품이었다.

1315년에 단테가 개심의 뜻을 보인다면 사면하겠다고 피렌체 당국이 제의했지만,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가 제의를 거절하자 그의 가족까지 영구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를 친절하게 영접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라벤나의 공작이었다. 단테는 라벤나를 위해 베네치아와 관계 개선 목적의 사절로 다녀오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 후 조국 피렌체는 단테의 위대함을 뒤늦게 깨닫고는 그의 유골을 모셔가기 위해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해마다 단테가 죽은 날을 기념하여 등을 다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천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해 『신곡』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국가적인 배려를 함으로써 단테에게 속죄하려 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눈을 감을 때까지 잊을 수 없었던, 영원한 구원의 여인이었다. 절대로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만날 수 있었다 해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상이 현실화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단테는 그녀를 자신만의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여인’으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그녀를 『신곡』에, 캄캄함 속에서 갈 바를 모르는 자신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여인으로 등장시켰고 그의 영적 인도를 받는 것으로 형상화했다.

오래전에 어느 목사님께서 ‘천국에 다녀온 경험’을 책으로 엮었는데 그 내용이 『신곡』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또는 두 분의 영적 경험에 대한 표현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일치하게 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피렌체의 중심부에 있는 5층짜리 높은 집에 살던 단테가 고난을 통하여 영원히 기억될 작품을 남긴 것으로 보아, 그는 고난을 능동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테는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인 중에 하나로 인정받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세계 3대 시성을 ‘호머, 베르길리우스, 단테’로 생각하니 말이다.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신곡』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이라고. 또한, T.S.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은 “근대 세계는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나눠 가졌으며 제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테의 업적을 극찬했다.

단테의 『신곡』 한 구절을 언급하고 싶다. “하나님의 계시를 벗어나면 무지, 환영(幻影), 그리고 감성만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인생은 오직 하나님이 계시한 성서의 말씀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단테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고난이라는 이름 앞에 자학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이다. “나도 고난을 아름답게 승화하였으니 당신도 그렇게 살라”고 말이다.

한평우 목사님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님은 현재 로마 한인 교회 담임목사로 35년째 시무하시고, EMI 유럽 목회자 연구원 창립및 원장, 유럽 Koste 후원회장, 디모데 선교회 회장및 디모데 로마 선교 아카데미 학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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